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메인이미지 대체 텍스트: 선명한 빨간색 표지의 책 『오직 쓰기 위하여』 천쉐 작가의 이름과 옮긴이로 조은 이름이 중앙 좌측에 기재되어 있다. 우측엔 글쓰기의 12가지 비법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출판사는 글 항아리.
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본격적으로 우악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2019년부터 5년간이었다. 나의 뇌가 자연스레 책은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책은 좋은 것.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스승이자,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방법을 몰랐던 나는 무작정 내 사랑을 받아달라고 매달리듯 책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 창문을 바라보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하듯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 권이라도 더 빨리 다음 책을 읽어야겠다는 조바심에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강박증 환자도 이런 환자는 없었겠다 싶어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하지만 그때의 책 읽기가 백 퍼센트 온전한 자양분으로 나에게 흡수되었다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기가 있었기에 이제는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쓰기를 이제는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이런 나에게 인상 깊은 책이 다가왔다. 바로 대만 천쉐 작가의 『오직 쓰기 위하여』이다. 우리에겐 낯선 작가이지만 작가 소개란을 확인했을 때 대만에서는 95년 『악녀서』라는 책을 시작으로 30년간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온 중견 작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솔직히 나 또한 온라인 서점을 통해 우연히 책을 접했다. 강렬한 빨간책 표지에는 작가의 집필 공간인 듯 한 흑백사진이 자리하고 있었고, 미리 보기를 통해 본 작가의 문체에 호기심이 일어 책을 주문했다.
손에 받아 쥔 책은 A4용지를 반으로 접은 듯한 A5사이즈였고, 페이지도 185페이지 밖에 안 되는 가볍고 얇은 책이었다. 읽는 것에 의의를 두는 읽기라면 1~2시간 안에도 끝을 볼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쳤을 때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은 나를 끊임없이 붙잡아 밑줄을 긋게 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게 했다. 작가의 문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글쓰기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쓰기로 구현해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짧고 명료하지만 단정함과 단단함이 묻어 있었다.
‘삶 속에서 글을 쓰겠다.’ 고 마음에 아로새긴 이들이라면 장담하건대 나와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얇은 책 속에서 전해지는 작가의 문장은 오랜 시간 글을 써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확신이 느껴졌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에 실린 글쓰기에 대한 자기 믿음과 신뢰에 더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초심자들을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의 마음이 녹여져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쓰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글쓰기’라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3~4년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글쓰기는 인연이 없었다. 글쓰기와의 부자연스러운 첫 만남은 초등학생 시절 일기 쓰기부터였다. 왜냐하면 하루 중 기억하고 싶고, 마음을 담고 싶은 것을 기록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담임선생님의 ‘일기 검사’가 문제였다.
논리적으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왜 내 생각이 담긴 일기를 선생님께 보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엔 일기 검사용 일기 한 권과 비밀 일기 한 권을 따로 작성하다 왜 이래야 하나 싶었다. 결국엔 일기 쓰기 대신 손바닥을 맞거나 벌 청소를 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껄끄러운 경험은 나도 모르게 불편한 감정으로 남아 이후 편지, 메모, 기록 같은 일상의 글쓰기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글로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보다 물질적 선물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더 편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그런 나에게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게 됐다. 어린 시절 겪었던 형제복지원에서 경험은 내 개인의 상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증언되고 기록되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글쓰기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만 점철되었던 나에게 더 큰 부담감과 부채감만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다섯 편정도의 글을 겨우 썼지만 잘 써야 한다는 강박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쓰기를 멈추어 버렸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일단 쓰는 것이다.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쓴다. 계속 쓰고, 쓰면서 고치고, 쓰면서 성장한다.”
작가의 글을 통해 그 당시 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했다. 부담감, 부채감이 아니라 계속 쓰면서, 고치고, 쓰면서 성장해야 했다.
“반복해서 훈련하자. 내 스타일이 될 때까지, 내 모든 능력이 제한된 시간 안에서 무한히 자유로워질 때까지, 내가 쓰려는 것의 영혼을 찾아내 작품 속에서 탄생시킬 때까지.”
이 구절은 ‘쓰는 삶’을 다짐하며 쓰고 있는 나에게 가장 실질적 응원의 문장으로 다가왔다.
올해 운 좋게 쉼의 시간을 길게 가졌고, 그 사이 행운처럼 취향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부담감과 부채감을 얘기했을 때 그 친구가 건네준 말 한마디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요?”는 글쓰기의 본질을 바라보게 했고, 가식 없는 마음으로 비로소 글쓰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좋은 일이 찾아오든 힘든 일이 닥치든, 나는 언제나 글쓰기에 의지해 나 자신을 다잡는다. 글쓰기는 내 발밑에 있는 한 조각 땅이다. 아무리 조그맣다 해도 나는 그 땅에 의지해 일어설 수 있다.”
서술했던 것처럼 여타의 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의 나는 크기를 알 수 없는 조그만 쓰기의 땅에서 발을 딛고 서있다. 부담감, 부채감보다는 일단 쓴다는 마음으로. 고치고 고친다는 마음으로 그래서 글을 통해 지평을 넓힌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자유로워질 때까지 계속 써보려 한다. 글쓰기는 나를 더욱더 나 다운 나로 만들어줄 것이기에.
안녕하세요. 순간의 기록자입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업무 복귀 이후 처음 인사드리는 글입니다. 복귀를 사흘, 나흘 앞두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렇게 오래 쉬었으면서도 마냥 아쉽고,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지만 참 간사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근일이 되자 언제 그런 마음이 들었냐는 듯 자연스레 적응했고, 그날 이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출근할 때 저만의 루틴이 있었는데요. 1년이란 시간 동안 그 패턴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늦게 자고 9시쯤 느지막이 일어나는 생활에 익숙해졌으니까요. 그런데 첫 출근 전날 밤 정확히 10시 30분이 되자 눈이 저절로 감기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 6시 30분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습니다. 몸이 기억하는 리듬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글쓰기는 어떤 감정으로 남아있으신가요?
그리고 다시 쓰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12월이 시작되자마자 동장군이 기다렸는 듯 맹렬한 기세로 우리를 추위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올 겨울은 추운 날과 덜 추운 날이 공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감온도는 더 춥게 느껴진다고 하네요.
매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건강유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