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대체 텍스트: 에밀리 A. 캐스파 저서 『명령에 따랐을 뿐!?』 표지. 검은 실루엣 손 사이에 줄을 타는 사람이 보이며 중앙에 영어 제목 JUST FOLLOWING ORDERS가 배치되어 있다. ⓒ 동아시아, 애밀리 A. 캐스파]
독서모임 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에밀리 A. 캐스파의 책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을 보았을 때 오래전 품고 있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형제복지원이라는 공간은 군대식으로 운영되었다. 성인 여성, 남성, 여아, 남아로 나누고 다시 소대로 나누었으며, 한 소대 안에는 소대장과 총무가 있고 잡혀온 사람들이 소대원으로 있는 식이었다. 그 소대안 소대장과 총무는 그 소대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전두환의 비호아래 박인근 원장이 형제복지원이라는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그 제국을 돌아가게 하는 관리자 중 최하위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소대장과 총무라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도 잡혀 들어왔다가 차출된 사람들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로 비유하자면 일본경찰의 앞잡이 역할을 한 조선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그곳에서 있을 때 제일 무서워했던 사람은 바로 소대장과 총무였다. 같은 소대원 아이가 실수로 침대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귀고막이 터지도록 때렸던 사람도, 점호 번호가 틀렸다는 이유로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고는 도미노처럼 발로 밀거나 차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사람도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도 잡혀 들어왔다 소대장과 총무가 되었다는데, 왜 그렇게 잔혹했을까. 기억저편으로 멀어졌던 오래전 그 궁금증은 온라인 서점 책 제목과 소개란을 보는 순간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을 이제는 풀 수 있겠다 싶어 책을 펼쳤다.
저자는 실험을 통해 다음 4가지 현상을 발견했다. 명령을 받게 되면 인간은 스스로 행위를 선택했다고 느끼는 주체성이 약화된다고 한다. 또한 명령이 주어진 상태에서 타인에게 해를 가하고자 할 때는 공감과 죄책감이 실제로 줄어드는 신경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권위가 ‘하라’고 하면 개인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순응이 우선 작동한다. 집단 상황에서 만들어진 위계와 경쟁 상황에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복종에 더 빠르게 순응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복종의 메커니즘은 뇌의 신경 반응과 위계적 사회적 조건과 권위가 합쳐지며 발생하는 총체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변명이나 탈출구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해당 내용을 제차 강조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연구 결과를 접한 뒤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괜한 걱정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뇌 과학적으로도 명령에 취약함이 증명되었으니 나는 명령을 따른 죄밖에 없다.”라고 억지주장을 부리는 가해자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개인적 궁금증을 넘어 과학적 설명이 정당화로 변질된다면... 그럼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떻게 되는 건가 싶은 혼란스러움이 밀려왔다.
복종에 인지적 취약성을 보이는 인간이라 해도 반드시 그 대척점엔 불복종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 후반부 불복종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다루는 장에서 나는 다시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책에서는 이들을 '구조자'로 표현했다. 구조자는 도덕적 자질과 타인을 돕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고, 공감 능력이 높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을 표적 화하여 비인간화로 몰아가는 것에 휩쓸리지 않는 주체적 사고를 가지는 것을 불복종의 덕목으로 꼽았다.
나는 다시 마음이 언짢아졌다. 그 이유는 여러 장으로 나누어 복종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데 반해, 불복종의 경우는 한 개의 장으로 몇 가지 사례만을 들어 급하게 결론 지어 버린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불복종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자질과 의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책에서 길게 설명했듯,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질과 윤리만을 강조한다고 이 비극을 넘어설 수는 없다. 가혹한 상황일수록 불복종은 내가 죽고 사는 문제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 역시 형제복지원에서는 피해자였지만, 책에서 나오는 것과 같이 생존에 위협을 당하는 순간을 마주한다면. 그래서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섣불리 "네"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결국, 복종에 취약한 뇌구조를 가진 인간임에도 더 많은 사람이 불복종이 가능해지려면, 개인의 선택이 주체적일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점이 책에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사회적 위계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수록 집단 간 공감 편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극우 정당은 다른 집단으로부터 위협을 느끼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과 자신의 집단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광범위하게 이용했다. 그들의 정치 캠페인은 외집단 소수자를 향해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다른 집단에 부정적인 편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를 도덕적 의지와 공감력을 떨어뜨리는 문제들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저자는 집단학살을 했던 정권들은 폭력 이전에 항상 ‘우리’와 ‘그들’을 나누고, 특정 집단을 열등한 부류로 낙인찍는 언어를 만들어 차별과 혐오가 쉽게 들어서게 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는 이미 공공영역과 정치 담론에서 반복되고 있다.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난민 혐오, 빈곤층 혐오 등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언어는 단순한 의견이나 감정표현이 아니다. 향후 얼마든지 수많은 역사가 알려줬듯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깊은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겪었던 형제복지원 안에서의 폭력도, 저자가 얘기하는 역사적 학살도, 그 기저에는 구조적 폭력과 관계된 권력 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 이면서 또 다른 가해자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뇌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하다 해도 그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명령에 따랐다 ‘는 문장을 더 이상 면피의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먼 나라 예시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윤석열의 내란사태를 통해 상명하복의 군대라지만, 잘못된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군 복무 관련 규정에 명기하겠다는 뉴스를 접한 바 있다. 이는 개인의 양심에만 기대지 않고, 그 양심이 사회 속에서 제대로 숨 쉴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이처럼 혐오와 차별이 이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장치를 보완하고 확장해 나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은 사회는 가만히 있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작년 겨울 광화문 광장과 국회 앞에서 응원봉을 들며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순간의 기록자입니다.
오늘도 목요일이 되는 새벽에 가장 먼저 인사드리고 싶었는데요.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져 계속 고치는 과정이 이어졌습니다.
거기다 저녁시간까지 이어지는 업무일정까지 겹치다 보니, 부득이하게 아침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려 했던 저의 동기는 형제복지원의 기억이 하나의 질문이었는데요.
이번 주제를 통해 여러분께서는 어떤 기억이나 경험을 떠올려 생각해 보셨을까 궁금해지네요.
새로운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항상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작은 쉼과 따뜻함이 여유롭게 머물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