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이미지 대체 텍스트: 연보라와 연노랑이 그라데이션된 배경 위에 푸른색 수정 같은 결정체가 놓여 있는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의 표지 이미지]
누군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온다면 나는 항상 정세랑이라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꼽는다. 그의 여러 책 중『피프티 피플 』이 내 마음에 잔상을 남긴 책이었다면, 『시선으로부터』는 확실하게 그녀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 방점을 찍게 한 책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심시선이라는 미술가이자 평론가로, 깨어있는 시민이자 지식인으로 삶을 살다 간 여성이 있다. 그는 살아생전 “제사 따위는 사라져야 할 관습”이라 말하며 제사를 지내지 말라 유언했다. 이야기는 그의 사후 십 년이 되는 해 첫째 딸 명혜의 진두지휘 아래 그가 젊은 시절 살았던 하와이로 가 딱 한 번의 뜻깊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심시선 후손들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거고요.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진 않을 거예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해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요. (중략...) 엄마가 젊었던 시절 이 섬을 걸었으니까, 우리도 걸어 다니면서 엄마 생각을 합시다.”
그렇게 하와이로 모인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추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을 하나씩 찾아온다. 해당 구절을 읽을 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엄마는 나의 엄마가 되기 전 무엇을 했고, 어떤 것에 마음을 썼으며 무엇을 좋아했을까...?”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었다. 엄마와의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리자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기억이 샘솟는다. 엄마와 외갓집을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 품에 안겨 차창 너머 보이는 청보리밭에 탄성을 질렀던 순간, 겨울철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각종 과일과 구황작물을 먹으며 웃음꽃을 피웠던 순간, 절약이 몸에 밴 분이셨지만, 자식이 좋아하는 책만큼은 두말없이 책장 가득 채워주셨던 순간들.
그러나 정작 엄마를 기준해서 생각해 보면 떠오르는 게 거의 없다. 젊은 시절 양장점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 암이 깊어져 음식을 넘기기 힘들어했을 때 그나마 홍시를 먹고 싶다 하셔서 조금 드셨던 기억 정도다. 엄마가 곧잘 드셨던 음식이 엄마가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제는 절대 엄마의 시선은 알 수 없는 것인가 싶어 갑자기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시점에 와서는 나는 다른 결론에 다다랐다.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다.”
책 속에서 심시선은 질곡의 20세기를 살아낸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가족을 모두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사진신부’가 되기 위해 하와이로 건너간다. 이후 유명화가의 눈에 들어 미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나지만 정서적 학대와 폭력을 겪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도 대표적인 지식인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활동한다. 또한 두 번의 결혼을 통해 혈연을 넘어선 대가족을 이룬다. 한마디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을 따라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살아낸다.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 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 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행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
그리고 그런 심시선을 보고 성장한 그의 후손들은 그의 시선을 좇으며 21세기를 살아낸다. 시선의 자녀들은 그녀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로부터 일부분 자유롭다. 제사는 물론, 성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가 겪는 삶의 고난 앞에서 “심시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리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심시선이 남긴 유산이 가족들의 삶에 스며들었듯, 나 또한 어머니가 남긴 보이지 않는 시선들을 더듬어 봤다.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은 현생에서의 엄마와 함께한 동행의 시간은 짧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나라는 존재는 ‘손은주’라는 한 여성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낸 그 태도와 지향을 보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비록 나는 엄마가 어떤 음식을 좋아했고 무엇을 아꼈는지 영영 알 길이 없지만, 나를 잃어버렸을 때 3년이란 시간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를 찾았다. 그리고 끝내 나를 자신의 품으로 되돌려 놓은 그녀의 포기할 줄 모르는 마음을 기억한다. 집으로 우유를 가져다주는 배달 노동자에게 명절 때마다 작은 선물을 건네는 그녀의 시선을 옆에서 지켜보며 인간에 대한 존중과 노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배웠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지인의 자녀를 집으로 데려와 형편이 나아질 때까지 자식처럼 키우며 언니와 나에게는 오빠로, 오빠에겐 형, 동생으로 지내게 했다. 그렇게 대학 입학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인류애 적인 마음 또한 기억한다.
나는 엄마의 삶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삶의 흔적 중 일부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자랐다. 그렇게 나의 어머니는 내 안에 등불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불을 밝혀주고 있다.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을 때면 늘 비슷한 감각이 찾아온다.
마음이 느슨해지고 마치 내 뇌가 말랑말랑 해지는 것 같다. 막혀 있던 숨구멍이 트이는 기분이다. 아무리 마음이 번잡해도 책을 펼치면 일순간 번잡했던 마음이 어느새 물러나고, 청량한 바람을 맞는 듯한 상태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시선으로부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나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를 만든 시선들은 무엇이었는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다. 여러분들도 돌아오는 이번 주말, 따뜻한 차와 함께 이 다정한 연대기에 몸을 맡겨보는 건 어떨까?
안녕하세요. 순간의 기록자입니다.
여전히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기온이 풀리는 날도 간간이 있지만, 다시 차가워지는 날씨를 접할 때마다 “아,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추운 날 외부 일정이 있을 때면, 오래전에 사 두었던 부착 핫팩을 꺼내 요긴하게 사용하곤 합니다.
안부 인사를 드리며, 한 가지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글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긴 겨울 방학의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부족하나마 하나의 글로 옮겨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책은 계속 읽고 있지만, 한정된 시간 안에서 읽은 모든 책이 언제나 글로 모아지지는 않더군요. 그럴 때마다 업로드 날짜를 독자분들과의 약속처럼 여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쫓기듯 책을 훑고 글을 쓰게 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겨울 방학의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직 저에게는 채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넘어진 김에 잠시 쉬어 간다는 마음으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제 자신에게 선물하고자 합니다. 그동안은 여유롭게 책을 펼치기도 하고, 읽기 싫은 책은 읽다 덮어 두기도 하며, 긴 호흡으로 다시 쌓아 가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겠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마음으로, 그동안 목요일에 업로드되었던 글들은 조만간 브런치 북으로 엮고, 돌아오는 날에는 일요일에 인사드리려 합니다. 그때까지 잊지 않고 기다려 주실지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스스로를 채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겸허히 지나가고자 합니다.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