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필로그–글의 앞과 뒤, 당신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건네는 글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맑은 겨울 하늘 아래,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강릉 사천해변의 푸른 바다와 모래사장]
안녕하세요? 순간의 기록자입니다. : )
<페이지 너머의 풍경 2> 에필로그의 기회를 빌려 방학이지만, 연재 날도 아닌 수요일 이렇게라도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잠시 접속했습니다.
글을 쓰는 오늘은 2026년을 이틀 앞둔 12월 30일 강릉의 어느 사천해변 앞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그런지 2025년을 살아내며 찌꺼기처럼 남은 얕은 마음들을 잘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자는 생각에 강릉으로 여행을 왔습니다. 강릉의 깊고 푸른 겨울바다를 보는 순간, “아.. 내가 이러려고 여기를 왔구나” 싶었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숨통이 트였습니다.
저에게는 지역이 달라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삶의 깊이를 나누는 친구가 있습니다. 분명 웃고 떠들었는데 안녕을 고하고 나면 언제나 나눴던 주제에 여운이 남아 깊은 침잠을 하게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그렇더군요.
연말이라서일까요.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죽음을,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어떤 질문지를 작성해야 했었는데, 그 질문 중 하나가 ‘만약 죽는 날을 안다면 하고 싶은 일’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예기치 않은 사고나 병으로 죽는 죽음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을 미리 알 수 있는 죽음이라면.. 사는 동안 자유로움을 느낄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보다는 해방감을 느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질문했습니다. 너는 어떤 생각이냐고.
친구는 웃으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사후 세계가 있으면 어쩔 거냐고. 그래서 이승의 죄를 짊어지고 그 끝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면 무섭지 않냐고 하더군요. 함께 다양한 상상을 나누며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말하더군요. “죽음 이후는 인간이 알고 싶어도 절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말 또한 맞다 생각되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으로 옮겨갔습니다.
친구는 물었습니다.
죽음을 해방감이라고 말했는데 그럼 네가 생각하는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거냐고.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태어났고, 이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속박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친구는 세심하게 짚어주었습니다.
삶에는 여러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도 있고, 행복한 순간들이 알알이 숨겨져 있는데 왜 하필 ‘속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냐고 하더군요.
그 질문 앞에 저 스스로에게도 같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게, 왜 하고 많은 단어 중에 굳이 ‘속박’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친구와의 즐거웠던 만남을 뒤로하고 저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삶이라는 것은 때때로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지루함이 섞여 이루어지는 건데, 나는 왜 이토록 그늘진 언어를 떠올렸을까.
혹시 무언가가 버거운 걸까.
사는 게 재미가 없는 걸까.
왜지... 왜일까.
명쾌한 답은 찾을 수가 없었지만, 생각에 다다른 것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확신은 없어도,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건강을 위한 선택들이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길 바라며 애를 씁니다.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진실함을 담으려 노력합니다.
물론 인간이기에 게으르고 흐트러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더 좋은 방향을 향하여 살고 싶다는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떠올린 ‘속박’이라는 단어는 삶을 부정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삶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주어진 시간을 함부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무의식 중에 선택한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했듯, 최초의 나의 시작은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그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살아낸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떠올릴 때, 공포보다는 해방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명쾌한 결론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주어진 삶을 외면하지 않고 오늘도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태도만큼은 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연말이라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2025년은 어떠셨나요? 계획하신 대로의 한 해였나요? 즐거우셨나요? 혹은 아쉬움이 남는 한 해였나요?
그 마음들이 무엇이었든, 이 글을 보고 계신 지금, 우리는 2025년의 마지막 날을 함께 맞았다는 겁니다. 제가 여러분께 건네고 싶은 진심은 2025년도를 열심히 살아내신 여러분께 마음 다해 너무도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페이지 너머의 풍경 2>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