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모아 한 글> 3
어릴 적부터 유난히 한자(漢字)를 좋아했습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며 한자에 더 많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한자 한␣자씩 모아 크고 으뜸가는 '한␣글'을 써보겠습니다.
2006년 2월, 기숙사로 향하던 전철 안에서 내 인생 첫 공황발작을 겪었다.
박사과정을 위해 도쿄로 온 지 5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렇게 타국에서 객사하는 구나...' 무서워서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결과를 살펴보시던 원장님이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하셨다.
— 이것이 과잉진료였다는 것은 2주가 지나 상급종합병원에서 MRI와 정밀 검사를 받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또 반 년이 지나서였다.
혈전용해제를 IV로 맞으며 꾀죄죄한 몰골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때, 내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몇 분이 문병을 왔다.
바쁜 목사님을 대신해 50대의 여성 전도사님이 무리를 이끌고 계셨다.
내가 떠난 뒤 부임하셨기 때문에 서로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본 그분의 첫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와, 탤런트 하셔도 되겠어요. 얼굴이 참 잘생기셨네요."
나는 나의 외모에 대해 자기객관화가 잘 되어있다.
더욱이 그날의 떡진 머리와 헐렁한 환자복은 그런 말을 듣기엔 부적합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한 마디가 잊히질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끔 자존감이 떨어진 날이면 일부러 끄집어 내보는 '부스터' 같은 말이다.
그분의 그 한 마디는 칭찬이었을까, 위로였을까, 아니면 아부였을까.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단연 발음이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의 뜻과 소리를 알면 문장을 읽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말할 때, '머리 속의 이상적인 발음'과
'내 혀를 통해 나오는 실제 발음'과의 큰 괴리에 좌절을 느껴본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본인 발음에 대해 심하게 의식(self-conscious)하게 되고
종국에는 '발화(發話)의 도구'로서의 외국어 공부를 멀리하는 우(愚)를 범한다.
('그럴 필요 없는디, '내용'이 중헌디')
비슷할 것 같지만, 한·중·일 세나라의 발음은 의외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세 나라가 같은 한자(漢子)를 쓰는데, 발음까지 동일한 자(字)가 있을까?'
이 단순한 호기심은 며칠동안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인터넷 검색'과 '챗 GPT'를 동원해도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전략을 바꿨다.
"내가 가진 지식을 모두 활용해서 답안을 좁혀가고, 각 경우마다 GPT에게 확인받는 거야."
우리말의 모음(중성)과 받침(종성)은 두 언어보다 더 다양하다.
중국어 발음은 현재 '은'/n/과 '응'/ng/이 전부이고,
일본어 발음은 딱 하나, '은'/ん/이 있다.
일본어 ん은 중국어 '은'과 '응'의 중간 발음이고, 읽을 땐 한 음절로 온전히 발음한다.
일본어는 /아/이/우/에/오/ 다섯 가지 모음밖에 없다.
그나마 중국어는 여러 복모음(複母音)들이 있지만 우리말만큼은 아니다.
'그래 그렇다면 정답은 받침이 없는 홀소리(모음) 소리 중에 하나일거야.'
그렇게 찾은 '유일한' 한자는 '언덕 아(阿)'자이다.
阿자는 많은 한자가 그렇듯 형성자(形聲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언덕 부(阜)'변에 소리를 담당하는 '옳을 가(可)'가 붙어 있다.
하지만 현대 한국어에는 언덕을 뜻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사어(死語)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쓰이는 우리말에는 '아부(阿附)'나 '아첨(阿諂)'처럼 '비위를 맞춰 알랑거림'의 뜻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처럼 외래어(특히 불교용어)의 음차(音借)로 쓰인다.
옆나라는 어떨까?
일본에서 阿는 성씨나 지명에 쓰인다.
성씨에 사용된 대표적인 예가, 아베(阿部)로, 성씨별 인구수 순위에서
1위 사토(佐藤), 2위 스즈키(鈴木), 3위 다카하시(高橋)에 이어 25위에 올라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총격 피살로 유명을 달리한 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安倍晋三'로 한자가 다르다.
아베(阿部)성을 가진 유명인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결혼 못하는 남자 (원제: 結婚できない男, 2006)」에 출연한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가 있다.
일본에서 '아부하다'는 표현은 阿る(おもねる, 오모네루)가 있지만 보통 문어체이고
구어체로는 주로 'お世辞を言う(おせじをいう, 오세지오 이우)'라고 말한다.
더 관용(慣用)적인 표현으로는 '胡麻を擂る(ごまをする, 고마오 스루)'가 자주 쓰인다.
직역하면 '참깨를 갈다(또는 빻다)'는 뜻으로, 그 표현을 말로 하면서
주먹 쥔 손을 다른 손에 비비거나 양손을 펴서 비비는 손동작을 같이 하기도 한다.
80년대 한국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손을 비비며 굽신거리는 모습이 크게 유행했는데,
손동작으로 표현된 일본식 관용표현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이 아닐까?
중국의 阿는 문맥에 따라 발음과 뜻이 다르다.
먼저 아부를 뜻하는 阿谀[ē yú, 어위]는 '아'가 아닌 '어'로 발음된다.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중국어서도 阿를 '아'로 발을 할 때가 있다.
바로 친밀감의 표현으로 가까운 사이에서 서로 이름의 첫 글에 '아(阿)' 붙여 사용하는 경우이다.
이전 글에서 다룬 루쉰의 『아큐정전』의 아阿Q[Ā Q],
이모를 뜻하는 阿姨[Ā yí, 아이]가 대표적인 예다.
신기하게도 고모는 姑母[gūmǔ, 구무]라고 하면서 이모는 姨母가 아니라 阿姨라고 부른다.
우리가 식당에서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것 처럼 '아줌마'라는 뜻이지만 그것 보단 좀 더 친근한 느낌이다.
심지어 젊은 여성 항공승무원들이 어린 승객들에게 본인을 지칭할 때도,
또 반대로 아이들이 그들을 부를 때도 阿姨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언니'부터 '아줌마'까지 커버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스펙트럼인 것 같다.
우리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아부한다는 뜻으로 '알랑방귀'를 낀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비슷한 관용어구로 拍马屁 [pāi mǎ pì, 파이 마 피],
일본에서는 口車に乗せる(くちぐるまにのせる, 구치구루마니 노세루)라고 말한다.
각각 직역하면 '말 궁둥이를 치다', '입 자동차를 태우다'라는 뜻으로
우리말의 '방귀'가 연상되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한국에서 '아부'는 대체로 부정적인 느낌이다.
상하관계에서, 혹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건네는 무맥락적 칭찬을 떠올린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 '가벼운 영합', '감언이설(甘言利說)' 같은 단어로 묘사된다.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일까?
나는 일본의 '칭찬의 문화'가 좋다.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하는' 걸 넘어 '비보잉'하게 할 만큼
나는 유독 칭찬에 약하다.
사소한 일에도 "パクさん、すごいですね!" (박상 대단하네요!) 라는 칭찬은
그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켰다.
지금 와 돌아보니 '칭찬이 꼭 진심일 필요는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다테마에(建前, 겉모습)와 혼네(本音, 속마음)의 표리부동(表裏不同)이
나의 공황장애의 1차적 원인이었다.
그래도 나는 심각한 '칭찬 성애자'이다.
칭찬과 아부는 닮았지만 다르다.
겉모습은 비슷해도, 의도와 대가를 바라는 칭찬은 이미 아부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아부의 '무맥락성'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칭찬을 할 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근거를 찾아 '정당한 칭찬'을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비이성적'이고 '무논리'의 '무맥락성' 칭찬이 필요하다.
친한 사람일수록 그런 '아부'는 꼭 필요하다.
'무조건 내 편'인 칭찬!
이 글을 쓰며, 아내가 가끔 내게 지적하는 불만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이솝우화의 〈여우와 까마귀〉를 떠올려 보라.
깃털이 아름답다는 말에는 가만히 있던 까마귀가
목소리 좋다는 여우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물고 있던 고깃덩이를 땅에 떨어뜨린다.
아부에 취해 어리석은 실수를 하면 안 되겠다.
감언이설을 일본에서는 줄여서 '甘言(かんげん, 간겐)',
중국에서는 '甘言蜜语[gānyán mìyǔ, 간옌미위]'라고 부른다.
세 나라 모두 이런 칭찬을 '달콤한 말(甘言)'에 비유한다.
달콤한(단 거) 말은 언제나 danger(단거)*하다.
너무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
하지만 그건 듣는 사람이 조심할 일이지, — 올바른 칫솔질과 치실 등
달콤한 말을 쏟아 붓는 사람의 잘못은 아니다.
다음 이야기의 제목은 '姑 : 고모보다 이모가 왜 편할까?' 입니다.
* '위험하다'는 뜻의 danger를 정직하게 읽어서 한 언어유희입니다. 제대로 된 발음은 /deɪndʒər/ '데인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