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인간 - 두번째 이야기
2006년 1월,
기숙사로 향하던 전철 안에서 내 인생 첫 공황발작을 겪었다.
박사과정을 위해 도쿄로 건너온 지 5개월 남짓 지났을 때였다.
'이대로 타국에서 객사하는 건가…'
덜컥 겁이 나서 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원장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진이자 과잉진료였다는 사실은 2주 뒤 상급종합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작 내가 진짜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혈전용해제를 링거로 맞으며 꾀죄죄한 몰골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때, 예전에 다니던 교회 분들이 문병을 왔다.
바쁜 담임 목사님을 대신해 50대 여성 전도사님이 무리를 이끌고 오셨는데,
내가 떠난 뒤 부임하셨기에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나를 본 그분의 첫마디는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 탤런트 하셔도 되겠어요. 얼굴이 참 잘생기셨네요."
나는 내 외모에 대해 자기객관화가 아주 잘 되어 있는 사람이다.
더욱이 며칠 감지 못한 떡진 머리에 헐렁한 환자복 차림은
그런 찬사를 듣기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날이면 일부러 꺼내 보는 '부스터' 같은 말이 되었다.
그분의 그 한마디는 칭찬이었을까, 위로였을까, 아니면 아부였을까.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큰 장벽은 단연 발음이다.
문법을 익히고 단어의 뜻을 알면 독해는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내뱉을 때, '머릿속의 이상적인 소리'와
'내 혀끝에서 나오는 실제 소리'의 괴리에 좌절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내 발음을 지나치게 의식(self-conscious)하게 되고,
결국 '소통의 도구'로서 외국어를 멀리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뭣이 중헌디, '내용'이 중헌디.")
비슷해 보이지만 한·중·일 세 나라의 한자 발음은 의외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다 문득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세 나라가 같은 한자(漢字)를 쓰는데, 발음까지 완벽하게 동일한 글자가 있을까?'
이 단순한 호기심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인터넷 검색과 AI를 아무리 돌려봐도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나는 전략을 바꿨다.
"내가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 후보군을 좁히고, 각 경우의 수를 AI에게 검증받자."
우리말의 모음(중성)과 받침(종성)은 중국어나 일본어보다 훨씬 다채롭다.
중국어 받침 발음은 'n(언)'과 'ng(엉)'이 전부이고, 일본어는 '응(ん)' 딱 하나뿐이다.
게다가 일본어 'ん'은 우리말 받침과 달리 한 박자를 온전히 차지하는 독립된 음절이다.
모음 역시 일본어는 '아, 이, 우, 에, 오' 다섯 개뿐이고,
중국어는 복모음이 발달했으나 우리말만큼 다양하진 않다.
'그렇다면 정답은 받침이 없는 홀소리(모음) 중 하나이거나,
그 모음에 '니은' 받침이 붙은 글자일 거야.'
나는 이 가설에 따라 후보를 좁혀 나갔고,
그렇게 찾아낸 한자가 바로 '언덕 아(阿)' 자다.
(참고로 '편안할 안(安)'자도 세 나라 발음이 동일하다.)
阿자는 뜻을 나타내는 '언덕 부(阜)' 변에
소리를 나타내는 '옳을 가(可)'가 합쳐진 형성자(形聲字)다.
현대 한국어에서 '언덕'을 뜻하는 단어는 대부분 사라졌지만,
'아부(阿附)'나 '아첨(阿諂)'처럼 '비위를 맞춰 알랑거림'의 뜻이나,
'아미타불(阿彌陀佛)' 같은 불교 용어의 음차(音借, 소리만 빌려 쓰는 것)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일본에서 '阿'는 주로 성씨나 지명에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아베(阿部)다.
일본 성씨 순위 25위를 차지할 만큼 흔한 성씨다.
阿部(아베) 성을 가진 유명인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아베 히로시(阿部寛)가 있다.
그는 한국 드라마로도 리메이크되었던 《결혼 못하는 남자》의 주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아부하다'를 뜻하는 동사 '오모네루(阿る)'가 있지만 문어체적인 느낌이 강하다.
구어체로는 주로 '오세지오 이우(お世辞を言う, 치켜세우다)'를 쓴다.
더 재미있는 표현은 '고마오 스루(胡麻を擂る)'다.
직역하면 '참깨를 갈다'라는 뜻인데,
이 말을 할 때는 주먹 쥔 손을 다른 손바닥에 비비거나
양손을 싹싹 비비는 제스처를 곁들이곤 한다.
80년대 한국 코미디 프로에서 아부하는 캐릭터가 손을 비비며 굽신거리던 모습이 유행했는데,
이 제스처가 일본의 '고마오 스루'와 묘하게 닮아 있다. 우연일까, 아니면 문화적 영향일까?
중국에서의 '阿'는 문맥에 따라 발음과 뜻이 달라진다.
먼저 '아부'를 뜻하는 '아유(阿谀, ēyú)'에서 '阿'는 '아'가 아닌 '어(ē)'로 발음된다.
그러나 같은 발음 '阿'를 포기하긴 이르다.
중국어에서도 '阿'를 '아(Ā, 1성)'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친근한 사이에서 이름이나 호칭 앞에 붙이는 접두사로 쓸 때다.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阿Q, Ā Q),
그리고 이모를 뜻하는 아이(阿姨, Āyí)가 대표적이다.
흥미롭게도 고모는 '구무(姑母, gūmǔ)'라 하면서,
이모만은 유독 '阿'를 붙여 '아이(阿姨)'라 부른다.
식당에서 종업원을 "이모님~" 하고 부르듯,
'아이'는 아줌마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으로도 널리 쓰인다.
한국의 '언니'부터 '아줌마'까지를 폭넓게 아우르는 단어인 셈이다.
다시 '아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 나라의 관용구 비교도 흥미롭다.
우리는 아부 떠는 것을 속되게 '알랑방귀 뀐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파이마피(拍马屁)', 즉 '말 엉덩이를 치다'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구치구루마니 노세루(口車に乗せる)',
직역하면 '입 자동차(감언이설)에 태우다'라고 한다.
말 엉덩이, 입 자동차, 그리고 방귀….
말 엉덕이를 찰싹, 참깨를 드득드득, 방귀를 뿡….
세 나라가 '아부'에서 공통으로 떠올린 건 '소리'와 '냄새'다.
요란스럽지만 실속은 없다는 뜻일까
친한 사람일 수록 아부하자
한국에서 '아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상하 관계에서, 혹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건네는 '영혼 없는 칭찬'이나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치부된다.
하지만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나는 일본의 '칭찬 문화'가 좋았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지만,
칭찬에 유독 약한 나는 춤을 넘어 비보잉을 출 기세였다.
사소한 일에도 "박 상, 스고이 데스네!(박 씨, 대단하네요!)"라고
건네는 그들의 말은, 의도가 무엇이든 내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었다.
물론 그들의 '다테마에(겉마음)'와 '혼네(속마음)' 사이의 괴리가
내 공황장애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는 건 아이러니다.
어쨌든 나는 심각한 '칭찬 성애자'임이 분명하다.
칭찬과 아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대가를 바라는 순간 칭찬은 아부가 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무조건적 칭찬', 혹은 '무맥락적 아부'의 힘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보통 칭찬할 때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타당한 근거를 찾아 '정당한 칭찬'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논리 따위 필요 없는, 무조건적 칭찬이 필요하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네 편"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그런 칭찬 말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아내가 가끔 내게 섭섭해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이솝우화 <여우와 까마귀>를 보라.
깃털이 예쁘다는 칭찬에는 꿈쩍도 않던 까마귀가,
"목소리가 천상의 노래 같다"는 여우의 아부에 넘어가
입을 벌리는 순간 물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린다.
아부에 취해 실속을 잃으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이런 꾐을 일본에서는 '간겐(甘言)',
중국에서는 '간옌미위(甘言蜜语, gānyánmìyǔ)'라 부른다.
세 나라 모두 이를 '달콤한 말'에 비유한다.
달콤한 말, '단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영어로 위험은 danger(데인저).
우리말로 읽으면 '단 거'다. 언어유희치곤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너무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
하지만 충치 예방은 칫솔질과 치실로 관리해야 하는 '듣는 사람'의 몫이지,
달콤한 말을 건네는 사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일본어로 '아부하다'를 뜻하는 관용구 '胡麻を擂る(고마오 스루)'를 직역하면?
① 기름을 바르다
② 참깨를 갈다
③ 꿀을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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