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인간 - 세번째 이야기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나의 결혼식과 묘하게 닮아있다.
영화 속에선 신부 쪽이 대가족이었다면,
나의 결혼식에선 신랑인 우리쪽이 대가족이었다는 점만 다를 뿐.
아버지는 아홉 남매의 장남, 어머니는 일곱 남매의 장녀다.
결혼 전 아내에게 '우리집 친척들 많아'라고 언질은 줬지만,
식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한 아내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다.
식이 끝나고 가족·친지 사진을 찍을 때 우리 뒤를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
폐백 때는 작은아버지들을 일일이 모실 수 없어
오형제 부처(夫妻)가 한꺼번에 절을 받는 진풍경까지 연출됐다.
지금까지도 매년 추석이 되면 아버지 쪽 형제들이 함께 모인다.
올해는 사촌들과 그들의 자녀까지 한 펜션을 빌려 놀았는데,
총 인원이 30여 명 이었다. (사정 상 못 오신 막내 작은 집을 빼고도!)
예전부터 고모나 이모들은 명절이 되면
각자 자신의 시댁에 가야 했기에 자주 뵙지를 못했다.
기껏해야 경조사 때나 마주치는 정도였다.
양쪽 다 자주 못 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나는 항상 고모들보다 이모들을 더 가깝게 느꼈을까?
물론 이모들이 상대적으로 젊기도 했고,
어릴 적 이모네 가족과 함께 여행한 추억들 때문일지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친가와 외가의 분위기 차이였다.
이럴 때 쓰는 말 '가풍(家風)'은 한중일 모두 같은 한자를 쓴다.
중국은 '쟈펑(家风)', 일본은 '가후(家風)'라 발음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분위기와 가치관을 뜻하는 이 말은
구성원들의 기질이 만든 결과이자, 그 원인이기도 하다.
아버지 쪽 친가는 대개 말수가 적고 신중하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평화롭고 차분하며,
인내심이 강한 '점액질(phlegmatic)'에 해당한다.
반면 어머니 쪽 외가는 시끌벅적하고 충동적이다.
술을 좋아하고 크게 웃으며,
쾌활하고 낙천적인 '다혈질(sanguine)'에 가깝다.
나의 활달함과 자유분방함은 외가로부터,
성실함과 약간의 강박은 친가로부터 물려받았다.
내 성격과 기질의 절반 이상을 물려준 곳.
그곳을 우리는 '외가(外家)', 즉 '바깥집'이라 부른다.
정서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 말로는 '바깥'이라는 역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사람을 일컫는 말인 '지칭(指稱)'과 '호칭(呼稱)'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그 자리에 없는 제3자를 가리킬 때를 말하지만,
후자는 눈 앞에 있는 상대를 직접 부를 때 쓴다.
예를 들어 '당신'은 2인칭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면서,
3인칭 '그'나 '그녀'를 높여 가리키는 지칭이다.
유독 한국의 친족 호칭은 복잡하다.
특히 배우자의 형제자매와 형제자매의 배우자를 부르는 말은
지칭과 호칭이 서로 다를 뿐더러 체계도 복잡하다.
예를 들어, 남자는 누이의 배우자를 부를 때,
누이가 언니일 때는 자형(姉兄),
누이가 여동생일 때는 매형(妹兄) 또는 매제(妹弟)로 세분화해 부른다.
여자 역시 오빠의 아내는 형부(兄夫),
남동생의 아내는 제부(弟夫),
언니나 여동생의 남편은 매부(妹夫)라 부른다.
문제는 이러한 지칭을 호칭으로 쓸 때 느껴지는 심리적 거리감이다.
'처남', '자형' 이렇게 부르거나 불리우면 뭔가 굼슬겁게 느끼는 건 나뿐일까?
이렇게 '일컫는 말'이 관계의 온도를 결정한다.
더욱이 남편 쪽과 아내 쪽 호칭에는 명백한 위계가 존재한다.
남편의 형제인 시백(媤伯), 시숙(媤叔)에게는
'아주버님', '도련님'과 같은 극존칭을 쓴다.
시누이(媤嫂)에게도 '형님'이나 '아가씨'라 부르며 예우한다.
반면 아내의 형제들에게는 처형(妻兄), 처남(妻男), 처제(妻弟)라는
지칭을 그대로 부르거나 상대적으로 격이 낮은 표현을 사용한다.
같은 관계인데도 시가(媤家)와 처가(妻家)를 대하는 언어의 높낮이가 다르다.
시가를 향한 언어에는 높임이 가득한데,
처가를 향한 언어에는 그에 맞는 예우가 없다.
이는 가부장적 전통이 언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한국, 중국, 일본은 모두 '친척(親戚)'이라는 같은 한자어를 공유한다.
중국어로는 '친치(qīnqi)', 일본어로는 '신세키(しんせき)'라 발음한다.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단어라 그 속뜻을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한자를 뜯어보면 흥미롭다.
'친(親)'은 부계 혈연인 '친족'을,
'척(戚)'은 혼인을 통해 이어진 모계나 처가 쪽인 '외척'을 뜻한다.
'친척'은 이 둘을 합친 말이지만,
'친'을 '척'보다 앞세운 순서에서 이미 친가가 외가보다 우선이라는 위계가 드러난다.
순서는 우연이라 쳐도, 호칭에 '바깥 외(外)'자를 붙이는 방식은 의도가 명확하다.
외할아버지, 외삼촌, 외손자….
지칭에서부터 어머니 쪽 핏줄을 '주류(主流)' 바깥으로 밀어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유교 전통에 따라 부계 중심 질서가 언어에 고착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친할아버지는 '예예(爷爷)', 할머니는 '나이나이(奶奶)'라 부르지만,
외할아버지는 '와이공(外公)', 외할머니는 '와이포(外婆)'라 하여
여전히 '바깥(外)'을 명시한다.
(한국도 그냥 '외'자 빼고 할머니, 할아버지 부르듯이
중국어도 姥姥 (lǎolao, 외할머니), 姥爺 (lǎoye, 외할아버지)라는 호칭이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조부모는 친가와 외가 구분 없이 모두
'소후(祖父, 오지이상)', '소보(祖母, 오바아상)'로 부른다.
삼촌이나 고모, 이모 또한 남자는 '오지상(おじさん)',
여자는 '오바상(おばさん)'으로 통칭한다.
구분이 꼭 필요할 때만 '어머니 쪽(母方の)',
'아버지 쪽(父方の)'이라고 덧붙일 뿐이다.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을 부를 때도 차이가 난다.
일본은 영어의 'in-law'처럼 '의(義)'를 붙여 관계를 설명한다.
시부모나 장인·장모 모두 '기후(義父)', '기보(義母)'라 하고,
형제자매 역시 '기케이(義兄)', '기시(義姉)' 등으로 부르며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다르다.
남편의 집은 '시댁(媤宅)' 혹은 중국어로 '포지아(婆家)'라 하고,
아내의 집은 '처가(妻家)' 혹은 '위에지아(岳家)'라 부른다.
한국의 경우 시댁은 높임말인 '댁(宅)'인데 반해,
처가의 경우는 평칭인 '가(家)'로 쓴다는 것이 흥미롭다.
말 속에 숨은 차별이 여기에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사회 속 호칭의 변화다.
한국 사회에서 혈연 호칭인 '이모'는 가족을 넘어
타인에게도 쓰이는 '사회적 언어'로 확장되었다.
식당에서 낯선 종업원을 향해 "이모!"라 부르는 건,
상대를 순식간에 '내 쪽 사람'으로 끌어당겨 정서적 경계를 허무는 한국 특유의 장치다.
격식보다는 친밀함을 통해 '정서적 공동체'를 만들려는 본능이다.
중국도 비슷하다.
'아이(阿姨, āyí)'는 가사도우미나 점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중년 여성을 아우르며 따뜻한 돌봄과 존중을 담은 호칭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일본은 다르다.
타인에게 가족 호칭을 쓰는 걸 실례라 여겨,
그저 "스미마센(실례합니다)"이라 부를 뿐이다.
오히려 '오바상(おばさん)', '바바(ばば)'는
나이든 여성을 낮춰 부르는 멸칭으로 쓰인다.
타인과 섞이지 않는 '거리 두기'가 일본의 예의라면,
한국과 중국은 호칭을 통해 관계를 잇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모'가 열린 세계라면 '고모'의 세계는 여전히 닫혀 있다.
고모의 한자인 '고(姑)'는 한국의 특수한 '시월드'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고부갈등(姑婦葛藤)'이라는 단어부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姑)가 더 밉다'는 속담은,
이 내밀하고도 냉혹한 권력 관계(family dynamics)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겉으로는 말리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며느리의 입지를 좁히는 시누이의 존재.
검색해 봤지만 이런 속담은 중국과 일본에는 없다.
물론 중국에도 '포시마오둔(婆媳矛盾, póxí máodùn)',
일본에는 '요메-슈토메 몬다이(嫁姑問題)'라는
고부갈등을 가리키는 말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한·중·일 모두에서 이런 문제는 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여성의 경제력 향상으로 시댁 권위가 약해졌고,
핵가족화와 별거 선호로 물리적 접촉이 줄면서
철저한 거리두기로 갈등을 피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姑)' 자에 들어 있는 '옛 고(古)'처럼,
이제는 사어(死語)가 되어야 하는 문화 아닐까?
최근 한국 사회는 딸의 육아를 친정이 돕는 '신모계 사회'로 빠르게 이행 중이다.
물리적, 정서적 교류의 중심이 이미 모계로 이동했고,
아이들은 외조부모 또는 외삼촌, 이모들과 깊은 유대를 맺는다.
정서적 실체는 이미 변했는데,
호칭에만 여전히 '바깥(外)'을 붙이는 건 명백한 시대착오다.
게다가 저출산으로 인해 이제 한 자녀가 한 자녀를 낳으면
삼촌도, 이모도, 고모도 없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것이다.
실제 우리 딸은 고모는 있지만 이모는 없다.
그런 다음 세대에게 복잡한 지칭/호칭을 강요하고,
'친'과 '외'를 구분하게 하는 것은 너무 부조리하지 않은가?
나는 여전히 이모가 편하다.
내 스토리텔링 능력과 웃음의 뿌리는 어머니를 포함한 외가에 있다.
그 소중한 곳이 왜 계속 '바깥'이어야 할까.
우리는 이제 '외가'에서 '외(外)' 자를 떼어내야 한다.
혈연을 넘어선 중국의 '아이(阿姨)'가 보여준 따뜻함처럼,
그리고 친가·외가를 구분하지 않는 일본처럼,
한국도 언어적 위계를 해체하고 정서적 친밀감을 호칭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복잡한 한국의 호칭 체계는 관계를 규정하기보다,
역설적으로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관계 소멸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부르기 어려운 이름은 부르지 않게 되고, 부르지 않는 관계는 서서히 사라진다.
관계는 불릴 때 존재하고, 따뜻하게 불릴 때 비로소 깊어진다.
호칭 속에 담긴 '바깥(外)'의 벽을 허물고 '이(姨)'의 따뜻함을 확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미래 가족에게 남겨야 할 유산이다.
우리에게 친가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작 이름에는 '바깥'이라는 뜻의 한자가 붙어 있는 이곳은 어디일까요?
① 처가 (妻家)
② 외가 (外家)
③ 시가 (媤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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