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 琴 : 금슬 좋은 부부, 해금 켜는 딸

1부 인간 - 네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지금, 반드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말했다.

"사랑은 지능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고,

결혼은 경험에 대한 기대감의 승리다."

그렇다면 결혼 이후의 생활은 무엇인가?

15년을 살아보니, 결혼생활은 '이상에 대한 적응의 승리'다.

결혼식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거대한 현실'이라는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그 숙제의 핵심은 결국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얼마나 적응하느냐의 문제다.

아이도, 경제도, 양가 부모도 중요하지만,

부부 당사자의 서로에 대한 '태도'가 모든 것의 '토대'가 된다.


한국어에는 사이좋은 부부를 일컬어 "금슬(琴瑟)이 좋다"고 한다.

시경(詩經)의 "처자가 화목하니 금슬을 타는 듯하다"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금(琴)'은 작은 현악기로 일곱 줄에서 맑고 고요한 소리를 낸다.

'슬(瑟)'은 더 큰 현악기로 스물다섯 줄에서 풍성하고 웅장한 소리를 낸다.

줄의 개수도, 음색도 다르지만 함께 연주할 때 비로소 절묘한 화음을 이룬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과 꼭 닮았다.

중국에서는 이를 "친써허밍(琴瑟和鸣)"이라 하고,

일본에서도 "킨시츠소우와(琴瑟相和)"라 하여 금슬이라는 표현을 공유한다.

두 악기가 함께(相) 조화롭게(和) 울리는 것()을 이상적인 부부상으로 그렸다.


각각의 한자를 뜯어보면 더 흥미롭다.

'금(琴)'과 '슬(瑟)'의 윗부분은 옥구슬 두 개가 나란히 있는 모습(珏, 쌍옥 각)이다.

꼭 커플이 나란히 앉아 있는 형상이다.

'옥구슬의 크기나 점까지 언급하는 건 너무 과하겠지?'

그 아래에 '이제 금(今)'과 '반드시 필(必)'이 받치고 있다.

형성자(形聲字)이면서도 소리를 담당하는 부분조차

'지금'과 '반드시'라니 뭔가 부부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같다.


금(琴)'과 '슬(瑟'의 형성 원리, 『안나카레니나』"행복한 부부도 제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 by 박성봉.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의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하지만 행복한 부부도 제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부부처럼 말이다.

이 글은 우리 부부의 금슬이 완벽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하기에 쓰는 반성의 기록이자 실천의 다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은 귀엽고 예쁜 딸이

해금의 선율로 우리 부부를 이어주는 이야기다.


여보, 자네


우리는 2008년 11월에 지인 소개로 처음 만나

이듬해 5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초스피드"라며 놀란다.

게다가 당시 나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은 이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장거리(長距離) 연애', 또는 '엔쿄리 렌아이(遠距離恋愛)'라고 한다.

중국어로는 '이디롄(异地恋)', 우리는 '다른 땅'에 떨어져 있었다.

시차 없는 비행기 2시간 거리라 해도

이제 막 사랑이 싹트려는 사람과 떨어져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게다가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서 계속 일을 해야 했기에

그녀에게 아무 연고 없는 일본행을 확신시켜야 했다.

아내를 설득했던 나의 비장의 무기는

이 연재의 마지막 '결언(結言)'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워낙 서둘러 결혼하다 보니 호칭도 문제였다.

'오빠'라 부르고, '○○야' 하기엔 서로가 너무 멋쩍었다.

결혼과 동시에 호칭을 '여보'로 통일했다.

한국의 '여보'는 "여기 보오"의 준말이라고 한다.

서로를 부르고, 그 부름에 응답하며 바라보는 관계.

요즘 젊은이들에겐 낡아 보이겠지만, 참 좋은 말이다.

1998년 안동에서 발견된 조선 시대

'원이 엄마'의 편지를 보면 남편을 '자네'라고 부른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옛 부부의 관계는

훨씬 평등하고 수평적이었을지 모른다.


"자네 늘 나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원이 엄마 편지 중에서>


한·중·일의 부부 호칭을 살펴보면,

먼저 한국은 오빠-이름, 여보-자기가 흔하다.

예전엔 아이가 생기면 '○○ 아빠', '○○ 엄마'로 불렀는데 요즘은 뜸하다.

중국은 '라오공(老公)', '라오포(老婆)'를 주로 쓴다.

'늙을 로(老)' 자가 들어가지만 젊은 부부도 애정을 담아 부른다.

요즘은 '친아이더(亲爱的, 사랑하는 이)'나

'바오베이(宝贝, 보배/베이비)' 같은 달콤한 말도 흔하다.

일본은 이름이나 '아나타(あなた, 당신)'로 부르다가

중년이 되면 아이들처럼 '오토상(아빠)', '오카상(엄마)'이 된다.

흥미로운 건 남편이 아내를 '오마에(お前, 너)'라 부르는 것이다.

아내는 존칭을 쓰는데 남편은 하대하는, 오래된 불균형이 여전히 남아 있다.

세 나라 모두 아이를 중심으로 호칭이 바뀌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권력의 결은 미묘하게 다르다.


끝순에서 딸바보까지


나는 예전부터 밝게 웃는 여자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젊은 나이지만 막연히 '딸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다행히 아내도 딸을 원했다.

본인처럼 끈끈한 모녀관계를 꿈꿨던 것이다.

요즘은 주변에 물어보면 대개 딸을 더 선호하는 추세다.

특히 한국에서는 딸에게 쏟는 애정과 기대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딸바보' 아빠들이 늘고, 딸의 교육과 미래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 동아시아의 문화는 사뭇 달랐다.


한자 문화권에서 연달아 딸을 낳으면

딸의 이름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음 아들'을 위한 바람을 담아냈다.

한국의 '끝순', '후남(後男)', '말자(末子)'가 대표적이고,

중국에는 남동생을 불러온다는 '자오디(招弟)',

간절히 바란다는 '판디(盼弟)'가 흔했다.

일본 역시 딸이 멈추길 바라는 '토메(留)',

마지막이길 비는 '스에(末)' 같은 이름을 붙였다.

족보에 이름 대신 '모씨(某氏)'나

'딸(娘)'로만 남기는 것도 딸에 대한 비선호를 보여준다.


국악오케스트라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하윤이.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딸과 아들이 할 수 있는 직업과 선호되는 취미활동이 달랐다.

여자아이라면 으레 따라붙는 스테레오타입

— 핑크색, 공주 인형, 얌전함, 조신함 같은 것들.

나는 우리 딸에게는 그런 틀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핑크색을 피하지도, 공주 인형을 사주지 않으려 하지도 않았다.

수영도 시키고, 특공무술도 배우게 했다.

그렇다고 반여성성(反女性性)만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딸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 선택하게 했다.

여러 취미활동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은 '해금'을 가르친 것이다.

다행히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국악 오케스트라가 있었고

마침 해금 연주자 자리가 비어 있었다.


수영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며 의기양양했던 딸이

오케스트라를 하면서는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

수영은 혼자 빨리 물살을 가르면 되지만,

오케스트라는 전체의 소리와 정해진 리듬에 맞춰야 한다.

지휘자의 손끝을 보고,

옆 친구의 숨소리를 듣고,

다른 악기 소리에 내 소리를 얹어야 한다.


해금은 한자로 奚琴이라 쓴다.

'금(琴)' 자는 여전히 동아시아 악기 이름에 널리 쓰인다.

중국어로 피아노를 '강친(钢琴, gāngqín)'이라 하고,

우리말에도 여전히 '풍금'이라는 말이 남아 있다.

해금은 고대 북방의 해(奚) 부족이 즐기던 악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내가 살았던 카자흐스탄의 '코븨즈(қобыз)',

일본의 '코큐(胡弓)'도 형태가 비슷한 현악기다.

두 악기와 비교되는 해금의 독특한 점은

두 줄 사이에 활을 끼워 마찰시켜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리가 한(恨)같은 슬픔 감정을 쏟아내는 것 같다.

딸은 이 오래된 악기를 켜며 배웠을 것이다.

나와 다른 소리를 듣고, 맞추고, 때로는 비우고 기다리는 법을.

공연을 보며 그 선율이 우리 부부에게 준 감동은 수영 대회 은메달 못지않았다.


코뷔즈, 코큐, 해금의 비교. 적당한 거리의 화음.


적당한 거리의 화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 부부는 전형적인 '잉꼬부부'와는 거리가 멀다.

닭살 돋는 애정 표현(lovey-dovey talk)은 질색이고,

감상적인 멘트(mushy comments)는 서로 참지 못한다.

손을 잡고 걸어본 지도 꽤 되었다.

다만 신혼초에는 이러지 않았다.

그때는 출근하며 냉장고에 쪽지도 붙여놓고 애정표현도 많았다.

하지만 살아오며 겪는 여러 차이들—

경제관념, 시간개념, 양육철학—이 조금씩 우리를 멀어지게 했다.


여기에 나의 수동 공격성(passive aggressiveness)도 한몫했다.

화가 나거나 마음에 안 들어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문자를 안 읽은 척하거나 일부러 늦게 답하거나

찜찜한 농담으로 불편함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결국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나쁜 성격이다.

이런 '내 거친 생각과 그걸 지켜보는 너'가 만든

불안정한 애착(insecure-anxious attachment)으로 느슨하게 묶여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스스로를 잘 알지만,

내가 아내를 고칠 수 없듯 나를 바꾸기는 너무 힘들다.

우리는 그 대신 '쿨한 관계'를 택했다.


최근 아내는 나의 집필 시간을 이해해주고,

나도 아내에게 양육과 집안 살림에는 자율권을 준다.

우리는 서로 간섭하지 않되 무관심하지 않다.

필요할 땐 기꺼이 손을 내밀지만,

혼자가 필요할 땐 조용히 물러난다.

두 악기의 줄이 엉키지 않아야 제 소리를 내듯,

적당한 거리가 오히려 맑은 화음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딸은 아내의 유전자를 몰빵 받아서, (다행이 외모까지도)

아내와 부딪히는 지점에서 똑같이 부딪히곤 한다.

하지만 아내를 존중하듯 딸도 존중할 것이다.

도움이 필요할 땐 아빠가 거기 있겠지만,

그 도움이 딸의 자립을 해치지 않도록 나 역시 '적당한 거리'를 연습 중이다.

그리고 훗날 하윤이가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엄마, 아빠 뽑기운(運) 좋았네."라고.


요즘 달리기에 빠져 있다 보니, 동네 천변을

달릴 때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다.

손을 잡고 산책하는 젊은 부부부터 노부부까지, 많은 이들이 나란히 걷는다.

가장 부러운 건 커플 런닝화, 운동복을 맞춰 입고 나란이 달리는 부부다.

언젠가 아내의 체력이 올라온다면 같이 존투(zone 2)로 달려보고 싶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손을 꼭 잡고 거리는 유지하며 나란히 걷고 싶다.

그게 15년 전, 낯선 땅으로 함께 가자며 아내를 설득할 때 쓴 나의 약속이다.

그 약속들을 '지금(琴)', '반드시(瑟)' 지키겠다.


톨스토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가정도 제각각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있다.

우리 가족처럼.




[독자 참여 코너]


금슬(琴瑟)이 좋다는 말에서 '금(琴)'과 '슬(瑟)'의

윗부분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한자는 무엇일까요?


① 玉 (옥 옥)

王 (임금 왕)

珏 (쌍옥 각)


정답은 댓글로!




우리 딸은 내가 박사(博士)라는 것은 안다.

왜냐하면 말해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