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博 : 박사와 도박사는 한 끗 차이

1부 인간 - 다섯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박사'와 '도박사'는 한 끗 차이


2008년 가을, 공학 박사(博士) 학위를 받았다.

졸업식 날 어느 선배가 한 말이 18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박 박사, 학위는 그냥 운전면허증 같은 거야.

이게 있다고 운전을 잘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게 없으면 운전대를 잡을 수조차 없으니까."

학위라는 타이틀은 양날의 검이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권위는 오히려 독(毒)이 된다.

특히 나처럼 깊은 고민 없이 졸업 자체에 급급했던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돌이켜보면 박사 학위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것 자체가 큰 도박이었다.

처음엔 나도 학과의 다른 선배들처럼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으면 영어와 연구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교수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낮은 학부 학점때문에 지원한 모든 학교에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좌절하고 있는데, 우연히 도쿄대라는 기회가 찾아왔고

나는 2005년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박사(博士)와 도박사(賭博師)가 같은 '박(博)' 자를 쓴다는 것을.


도박(賭博)의 '도(賭)' 자는 형성자(形聲字)다.

재물을 뜻하는 '조개 패(貝)'와 소리를 담당하는 '놈 자(者)'가 합쳐졌다.

者자는 도(dū)라고도 발음이 되는데, '도읍 도(都, dū)'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옛날 화폐였던 조개껍데기를 걸고 내기하는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 모두 '걸다', '내기하다'라는 의미로 쓴다.


반면 '박(博)' 자는 원래 '넓다'는 뜻이다.

'열 십(十)'과 '펼칠 부(尃)'가 만나 사방으로 널리 펼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박학(博學), 박식(博識), 박애(博愛)에 쓰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고상한 글자에 '노름하다'는 뜻이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고대의 보드게임인 '육박(六博)'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있다.


한글로 쓰면 고작 한 끝 차이인 박사와 도박사.

이 두 단어를 겹치고 틀어보며,

박사가 가진 태생적 약함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도박사로부터 배울 점을 고민해봤다.



'사'자 직업


2024년 한국의 대학 취학률은 74.9%로 역대 최고치다.

OECD 청년층 고등교육 이수율도 1위다.

바야흐로 '고학력 인플레이션'의 시대다.

한국과 중국은 학사, 석사, 박사라는 한자를 공유한다.

여기서 석사의 '석(碩)' 자는 '크다'는 뜻으로,

덕이 크고 학문이 깊은 선비를 의미한다.

일본은 다르다.

그들은 '닦을 수(修)'를 써서 '슈시(修士)'라 부른다.

학문의 길을 닦는 수양의 과정으로 본 것이다.

박사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학위로서의 박사는 '하쿠시(博士)'라 읽지만,

무엇이든 잘 아는 사람, 즉 우리가 '척척박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하카세(博士)'라고 훈독(뜻읽기)을 한다.

미국에서는 박사를 '닥터(Dr.) 누구누구'라 부르지만,

상황에 따라 병원의 의사(M.D.)와 혼동될 수 있어 신경써야한다.


한국 사회에서 '사'자 직업은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사는 그 '사'자 대열에 끼지 못한다.

보통 '사'자 직업이라 하면 변호사, 의사, 검사를 꼽는다.

흥미롭게도 이 세 직업의 '사' 자는 모두 다른 한자를 쓴다.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써서 전문 자격을 갖춘 지식인을 뜻하고(辯護士),

의사는 '스승 사(師)'를 써서 인술을 베푸는 선생을 뜻하며(醫師),

검사는 '일 사(事)'를 써서 수사 업무를 맡은 관리를 뜻한다(檢事).



나는 의사는 한중일 어디나 같은 한자를 쓴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한국은 '의사(醫師)'라 하여 전문성과 존경을 담아 스승(師)이라 부른다.

하지만 중국은 '이셩(医生)'이라 하여 생명(生)을 다루는 사람임을 강조한다.

반면 일본은 '이샤(医者)'라 하여 의술을 행하는 사람(者)이라는 직업적 기능에 방점을 둔다.

한국은 '존경', 중국은 '생명', 일본은 '직업'을 중심에 둔 셈이다.


그렇다면 도박사(賭博師)에게조차 '스승 사(師)' 자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사에게나 붙여주던 그 귀한 '스승'의 칭호를 노름꾼에게 붙여도 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그들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일 수도 있다.

박사보다 더 강인한 생존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야성의 존재말이다.



온실 속의 박사, 야생의 도박사


나심 탈레브는 그의 책 『안티프래질』에서 충격과 무작위성 속에서

오히려 더 강해지는 성질을 antifragile로 정의했다.

이 기준에서 보면 박사는 종종 '프래질(fragile, 깨지기 쉬운)'한 존재다.

지나치게 체계화된 이론의 온실에서 자란 탓에,

현실의 무작위적인 변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통제된 실험실의 데이터는 비이성적인 현실 세계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반면 도박사는 지극히 '안티프래질'한 존재다.

그는 살아있는 불확실성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한다.

도박사에게 변동성은 피해야 할 위험이 아니라 수익의 원천이다.

그들은 잃을 때는 제한된 판돈만 잃지만,

얻을 때는 판을 키워 기하급수적 이익을 챙긴다.

이 '비대칭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건 한 판, 이를 뜻하는 표현도 삼국이 비슷하면서 다르다.

한국에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이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쓴다.

하늘(乾)과 땅(坤)을 걸고 주사위를 한 번 던진다(一擲)는 뜻이다.

초한지에서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놓고 마지막 승부를 벌일 때 쓰인 말이다.

적당한 타협 대신 목숨을 건 단판 승부, 그것이 건곤일척이다.


찾아보니 일본과 중국에도 이런 때 쓰는 관용 표현이 있다.

일본에는 '이치카바치카(一か八か)'라는 말이 있다.

주사위의 한 면(一)이 나올지 여덟 면(八)이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던진다는 뜻으로, 운을 하늘에 맡기는 결단을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더 직관적이다.

'뚜이빠(賭一把)'는 "한 판 걸어본다"는 뜻이다.

'把'는 도박에서 '한 번, 한 차례'를 세는 양사(量詞)로,

영어 도박용어 hand에 해당한다.

도박판에서 "한 번만 더!"를 외치는 심정이 담겨 있다.

결국 도박사에게 '스승 사' 자를 붙인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이 가진 '변동성을 다루는 기술'과 '결단의 미학'이,

책상물림 박사의 고착된 지식보다

더 처절하고 실전적인 생존의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탈레브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선택해야 한다.

충격에 깨지는 '프래질'한 존재가 될 것인가,

충격에 묵묵히 버티는 '강건함(robust)'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충격을 먹이 삼아 진화하는 '안티프래질'한 존재가 될 것인가.


16년 전, 나의 일본행은 분명 도박이었다.

하지만 실패한 도박은 아니었다.

미국 대학 불합격이라는 충격이 나를 도쿄대라는 새로운 판으로 던졌고,

그곳에서의 결핍이 나를 조금은 안티프래질하게 단련시켰다.

지금, 나는 다시 한번 도박판 위에 칩을 올린다.

16년 차 반도체 엔지니어라는 안정적인 궤도를 벗어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작가의 길에 베팅했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을 출판하고, 강연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박사(博士)와 도박사(賭博師).

둘 다 '넓게 펼친다(博)'는 본질을 공유한다.

박사는 학문을 펼치고, 도박사는 판을 펼칠 뿐이다.

나는 이제 인생의 두 번째 건곤일척을 준비한다.

지금 나의 위치는 백척간두(百尺竿頭)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다.

여기서 웅크린다면 나는 다시 프래질한 존재로 전락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진일보(進一步)다.

허공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결단.

노름꾼이 새벽 끗발을 기다리듯 나는 승패를 점쳐본다.

승패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며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박(博).

넓게 펼치되 그것을 비루한 노름으로 남기지 않고,

깊은 사유(思惟)의 글로 승화시키는 것.

무작위성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파도를 타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박사의 도리다.




[독자 참여 코너]


백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백척간두(百尺竿頭)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무엇일까요?


① 진일보(進一步)

② 호시우보(虎視牛步)

③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


정답은 댓글로!




공학박사 학위를 땄지만

공학(工學)에 대해 천착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공학이란 무엇인가?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