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자음, 사람의 소리
잠자리가 날아다니던 처서 무렵,
카페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안구를 움직이니 플래시가 터진 것처럼
한쪽 눈에 번쩍번쩍 빛이 보였다.
'책 보느라 눈이 피곤했나?'
짐을 싸 일찍 집에 갔다.
그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눈 안에 검은 점들이 둥둥 떠다녔다.
바로 반차를 내고 안과로 향했다.
"빨리 오셔서 천만 다행이에요."
유리체가 망막을 잡아당겨 구멍이 났고,
그 구멍으로 흘러나온 피가 떠다니는 것이라 하셨다.
일단 레이저로 구멍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막았다.
내 몸인데,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아서야 되겠나.
* 광시증(光視症) : 눈이 어두울 때 마치 번개나 전기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빛이 번쩍이는 증상.
레이저 치료 후 2주가 지났다.
추석 연휴를 앞둔 목요일 저녁
눈 속에 먹물을 뿌린 듯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온다.
동료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퇴근을 했다.
연휴에 의정 갈등으로 인한 응급실 대란,
치료라도 제때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동네 안과 선생님이 ‘高診善處’ 의뢰하여,
다행히 전문병원에 다음날 진료를 잡았다.
그 날 밤 “아빠 이거 몇 개” 하는 딸에게
“아빠 정말 안 보여 ㅠㅠ” 하니까,
콜라캔을 앞에 두고,
“걱정마, 오늘 배웠는데 이 점자는 ‘음료’라고 읽어.”한다.
불행 속 웃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완충제.
* 의정갈등이 한창인 24년 9월.
수술대에 누웠다.
선생님이 현미경을 보며
눈 안의 출혈을 제거해가자,
점점 빛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망막박리는 없는데,
몇 군데 레이저 치료를 해야 합니다"
초록색 레이저 불빛 사이로
혈관이 나목(裸木)가지처럼 비쳐 보였다.
의사는 내 눈을 들여다보지만,
내게 보이는 것을 알 수는 없다.
그가 보는 물질계로서의 내 망막과,
내가 보는 망막에 비친 흐릿한 상(像).
수술 내내 그 얇은 막(膜)에 대해 묵상했다.
이어령 선생 어릴 적,
아들의 열 끓던 이마를 짚으시던 어머니.
닿아있지만 닿지 못하는 그 앵프라맹스처럼,
타인과 나를 가르는 얇디얇은 무한대.
* 이어령 <이마를 짚는 손>
* 수술이 잘 되어 지금은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