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 : 렌트 (Rent)

1부 자음, 사람의 소리

by 박성봉


렌트 - 미국


미국을 왜 떠나왔냐 물으면,

노쇠해가는 부모님과

아이와의 문화 장벽,

그리고 비싼 월세라 답한다.

깨끗한 2베드룸 아파트가 3,300불.

나중에 아이 학군을 생각하면

거기서 두 배는 더 비싸질 터.

하지만 가끔은 그곳이 그립다.

여름 밤 하윤이와 놀던 수영장과 따뜻한 자쿠지,

최신 기구를 갖춘 gym과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파티룸,

보리(강아지)와 어딜 가나 환영받는 pet-friendly한 분위기.

아직 한국도 월세가 아닌 전세에 살고 있지만,

소유하지 않기에 언제든 버리고 갈 수 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 하구나.


* 마지막 문구는 박경리 유고 시집 제목,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에서

* 새너제이(San Jose)의 위 아파트에서는

2014~2019년까지 5년간 살았습니다.













렌트 - 일본


'남의 나라' 육첩방에 모로 누운 시인.

땀내 사랑내 포근히 품긴 학비로

늙은 교수 강의 듣던 그는

쉽게 쓰여지는 시를 부끄러워했다.

속살거리는 밤비에도 뒤척이는 그와 달리

예순 해 뒤 같은 도시

월세 3만 엔 작은 방엔 내가 멍하니 누워있다.

창밖의 낙엽 구르는 소리에도 까무룩 잠든 채

고뇌없이 살던 나는 참 어리석다.

한 줄 시도 적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들.

우물 속에 얼굴 하나 비치듯

시인의 맑은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니

쉽게 써 내려갔던 나의 젊음이 부끄럽다.

그런 내가 미워 돌아서다 생각하니 가엾어진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사내는 그대로.


*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자화상>.

* 동경의 위 아파트에서는 2006~2009년까지 살았습니다.













렌트 - 뮤지컬


2007년 도쿄에서 뮤지컬 렌트를 봤다.

525,600분, 1년을 어떻게 잴 수 있을까?

밝은 낮, 지는 해, 마신 커피, 웃음?

사랑으로 재면 어떨까?

흰 눈 쌓인 겨울과 어울리는 뮤지컬.

소유하지 않기에 자유로운 보헤미안들.

Forget regret or life is yours to miss.

No day but today

후회없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며

소유(所有)에서 공유(共有)로 옮겨갔다.

AI 시대에는 사유(思惟)로 옮겨가지 않을까?

가진게(有) 아니라

오로지 생각(惟)으로만 잴 수 있지 않을까?


* 뮤지컬 <렌트>의 주제 넘버

'Season of Love' 가사 앞 부분


525, 600 minutes

525, 000 moments so dear

525, 600 minutes

How do you measure, measure a year?

In daylights, in sunsets, in midnights, in cups of coffee

In inches, in miles and laughter, in strife

In 525, 600 minutes

How do you measure a year in the life?

How about love?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