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과학 - 세번째 이야기
고등학교 2학년 봄이었다.
수원에서 오산으로 향하는 301번 버스 맨 뒷자리,
나는 습관처럼 영어 단어장을 펴고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소음 사이로 옆자리에 앉은 20대 남자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내가 미래에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그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진짜 시간 여행자였을까,
아니면 그저 망상에 빠진 사람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진짜 '에일리언(alien)'이었을지도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속 괴생명체 이야기가 아니다.
'보통'이라는 범주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
그런 의미의 에일리언 말이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할 때 나 역시 에일리언이었다.
취업비자나 학생비자를 받으면 non-resident alien,
영주권이 있어도 resident alien이다.
한낱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비(非)미국인은 법적 관리 대상, '타자'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라고 더 포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도 '우리'라는 '우리(울타리)'에 갇혀,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며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진 않은가.
흥미로운 점은 같은 한자 문화권인 한중일이
'외계인'을 부르는 방식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중국은 '외성인(外星人)'이라 부른다.
'다른 별(星)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물리적 출신을 강조한 명칭이다.
일본은 '우주인(宇宙人)'이라 부른다.
존재의 범위를 지구 밖 우주 전체로 확장한 표현이다.
(한국에서 우주인은 보통 astronaut을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우주비행사'라고 표기한다.)
유독 한국만이 '외계인(外界人)'이라는 단어를 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글자는 '지경 계(界)'다.
밭(田)과 밭 사이를 나누는 경계선(介)을 형상화한 글자다.
한국어 속의 외계인은 단순히 다른 별에서 온 손님이 아니라,
'우리 세계(界) 바깥'에 존재하는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주 어딘가에 외계 생명체가 있을 거라 믿으면서도,
정작 조금만 다른 사람을 만나면 경계를 긋는다.
그렇다면 저 경계 너머,
정말 외계인은 존재할까.
지적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단세포 유기물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외계 생명체가 있는지 알려면 무엇이 가장 먼저 필요할까.
우리는 밤하늘로 눈을 돌려야 했다.
칼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64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며 말했다.
"저기, 저기 있다. 저것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것이 우리다."
사진 속 지구는 햇빛에 반사된 푸른 점 하나에 불과했다.
한동안 '빅 히스토리'가 유행하며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주목받았다.
유발 하라리의 공전의 히트작 『사피엔스』로 시작된
인류사 열풍은 지질학적 스케일의 지구 탄생을 거쳐,
천문학적 우주의 시작까지 확장되었다.
빅 히스토리를 읽으면 우리가 우주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멀리 있는 것을 바라보며 큰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아주 작은 디테일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인류가 개발한 도구가 망원경과 현미경이다.
흥미롭게도 이 두 도구는 똑같은 광학 원리로 작동한다.
두 개의 볼록 렌즈로 상을 확대한다는 핵심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다만 렌즈의 배치가 정반대일 뿐이다.
대물렌즈의 초점 거리를 길게 늘려 멀리 있는 빛을 당겨오면 망원경(望遠鏡)이 되고,
초점 거리를 극도로 짧게 하여 코앞의 미시 세계를 확대하면 현미경(顯微鏡)이 된다.
재미있는 점은 두 단어 모두 거울을 뜻하는
'경(鏡)' 자를 쓴다는 것이다.
빛을 통과시키는 렌즈인데 왜 거울일까.
굴절 망원경 시대에 이미 반사 망원경의 출현을 예견한 것일까
—나만의 상상이지만.
어쨌든 본질은 '세상을 비추는 도구'라는 뜻일 것이다.
투과전자현미경(TEM)은 최대 100만 배까지 확대해
원자 하나하나의 배열을 들여다본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허블보다 100배 뛰어난 관측 능력으로
131억 년 전 초기 은하의 빛을 포착한다.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면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현미경으로 세포를 보면 우리 안의 우주가 펼쳐진다.
인간에게는 이 두 가지 시선이 모두 필요하다.
숲을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이,
나무의 결을 살피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한쪽 눈만 뜨고 세상을 본다.
멀리 있는 이상은 동경하면서도,
정작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테드 창의 원작을 영화화한 <컨택트>는 지금도 많은 영화 팬들에게 사랑받는다.
영화 속 언어학자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며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 나간다.
외계인의 문자는 원형이었고, 시간은 직선이 아닌 순환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며 미래를 보게 된다.
태어날 딸의 삶을, 그리고 딸의 죽음을.
같은 영화를 세 나라는 다르게 불렀다.
한국은 <컨택트>,
중국은 <강림(降臨)>,
일본은 <메시지(メッセージ)>.
접촉, 내려옴, 전함.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세 나라가 포착한 핵심이 다르다.
영화 속 언어학자가 깨달았듯,
결국 외계인이 존재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느냐다.
1961년, 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우리 은하 내에서
교신 가능한 지적 문명의 수를 추산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이 방정식은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즉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프로젝트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매년 탄생하는 별의 수(R*),
그중 행성을 가진 별의 비율(fp),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의 수(ne),
실제로 생명체가 발생한 비율(fl),
지적 생명체로 진화한 비율(fi),
통신 기술을 발전시킨 비율(fc).
그리고 마지막 변수 L, '문명이 존속하는 기간'.
아무리 많은 문명이 탄생해도 스스로를 파괴하면 L은 0에 수렴한다.
문명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공존 능력이다.
이 방정식은 정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생각의 틀을 제시할 뿐이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을 연결해 별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북두칠성은 실제로 국자 모양이 아니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패턴을 읽어낸다.
이것이 인간의 게슈탈트,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드레이크 방정식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계산이 아니라 우주를 이해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의 신비를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다른 문명과 조우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도쿄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때였다.
유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고,
특히 연구 스트레스는 나를 짓눌렀다.
그럴 때면 나는 도쿄의 고층 빌딩 전망대를 찾았다.
서울과 달리 도쿄의 빌딩들은 대중에게 개방된 곳이 많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바삐 오가는 행인과 자동차들이 너무나 작게 보인다.
그것을 몇 분 바라보고 나면 교수에게 받는 스트레스나
연구의 막막함도 작게 느껴졌다.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작아진다.
작아지면 견딜 만해진다.
충분히 멀리서 보면 국경선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만든 '경계(境界)'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외계인은 있을까?"라고 묻기 전에 주변을 보자.
말이 통하지 않는 동료,
이해할 수 없는 이웃,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진짜 외계인은 안드로메다가 아니라 내 옆자리에 있을지 모른다.
그날 버스 안의 그 남자처럼.
'바랄 망(望)' 자는 두 가지 뜻을 품고 있다.
바라본다는 뜻과,
바란다는 뜻.
망월(望月)이 그렇고,
희망(希望)이 그렇다.
어쩌면 바라본다와 바란다는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라보는 것을 바라게 되고,
바라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오세영 시인은 「원시(遠視)」에서 이렇게 썼다.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그리고 시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는데, 가까이 있는 것은 흐릿하다.
그래서 돋보기가 필요하다.
131억 광년 떨어진 은하를 향해 망원경을 들 수 있다면,
한 뼘 거리의 사람을 향해 돋보기쯤은 들 수 있지 않을까.
그날 버스 안의 그 남자에게,
지금이라면 한마디쯤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테드 창 원작을 영화하한 <컨택트>의 일본판 제목은?
① 이웃집 외계인(となりの宇宙人)
② 귀멸의 망원경(鬼滅の望遠鏡)
③ 메시지(メッセ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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