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 狀 : 생물, 형상에 빗대다

2부 과학 - 네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Rock 'n' Roll (로큰롤)


지금은 소위 나이롱 신자가 되었지만,

한때는 꽤 열성적으로 교회를 다녔다.

중고등 시절에는 금요일 저녁마다 심야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장소는 방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는 소예배실이었다.

그때 사람들의 몸짓에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찬양을 부를 때는 다들 몸을 좌우로 흔들며 박자를 맞춘다.

그러다 통성기도가 시작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앞뒤로 흔들린다.

지금도 일부러 반대로 움직여보려 하면 어색하다.

왜 그럴까.

중력을 거스르며 세로로 길게 자란 이 몸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진화에는 정해진 목적지도 우열의 사다리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들이 쌓인 결과일 뿐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생명체들은 좌우대칭으로 수렴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앞뒤가 구분되어야 했고,

균형을 잡으려면 좌우가 같아야 했다.

인간의 발명품도 같은 길을 걸었다.

돌고래의 매끄러운 몸이 비행기와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행기는 세 축의 회전을 제어하며 안정성을 확보한다.

pitch[피치]는 기수를 위아래로,

yaw[여]는 좌우로,

roll[롤]은 동체의 중심축을 따라 회전하는 운동이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흔들의자(rocking chair)처럼 앞뒤로 흔드는 것이 rock(=pitch)이고,

중심축을 따라 도는 것이 roll이라면,

로큰롤(rock 'n' roll)의 춤사위는

몸을 앞뒤로 숙였다 젖히고 다시 한 바퀴 도는 동작일지 모른다.

좌우대칭인 몸이 표현하는 가장 본능적인 춤인 것이다.




이 좌우대칭의 몸을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은 세 개의 면으로 자른다.

횡단면(橫斷面)은 몸을 수평으로 잘라 위아래로,

관상면(冠狀面)은 세로로 잘라 앞뒤로,

시상면(矢狀面)은 세로로 잘라 좌우로 나눈다.


횡단면은 익숙하다.

CT와 MRI가 이 면을 따라 이미지를 쌓아 입체로 보여준다.

관상(冠狀)의 冠은 왕관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corona도 표면의 돌기가 왕관처럼 보여 붙은 이름이다.

시상(矢狀)의 矢는 화살이다.

궁수자리 Sagittarius의 어원이기도 한 이 글자는,

화살을 재고 활시위를 당긴 모습을 옆에서 본 형상이다.

좌우대칭인 뇌는 특히 이 시상면의 구조가 중요하다.


우리는 낯선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익숙한 형상에 빗대어 말한다.

이 글은 우리 몸이라는 미지의 지도를, 익숙한 상(狀)들로 그려보려는 시도다.



다양한 형상(形狀)에 빗대다


현 직장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복지는 매년 진행하는 건강검진이다.

건강염려증이 심한 나는 수치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작년에 선택검진 중 하나인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경동맥은 목을 타고 뇌로 올라가는 굵은 동맥이다.

소견란에 "우측 경동맥 팽대부 죽상경화반 의심"이라 적혀 있었다.

결과를 보는 내 얼굴은 말 그대로 죽상(죽을 상)이 되었다.


죽상? 경화반은 딱딱해진 얼룩이라는 뜻일 테고.

'죽상이 뭐지? 대나무 죽(竹)인가?

아, 대나무 마디처럼 안이 좁아진 거구나.'

나름 그럴듯하게 납득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글을 쓰면서 뜻을 찾아보고 놀랐다.

죽상(粥狀)의 죽은 '대나무'가 아니라 '먹는 죽'이었다.

혈관 벽에 낀 기름 찌꺼기가 끈적한 죽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찬 바람 불 때의 제철음식인 '대게'가 클 대(大)가 아니라

대나무 대(竹)라는 걸 알았을 때만큼의 충격이었다.


우리 몸의 기관이나 미생물 이름 중에는 그 형태에 빗댄 것이 여럿 있다.

하지만 한글로만 적혀 있으면 그 뜻이 단박에 와닿지 않는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한국어(한자) / 의미(형태) / 중국어(간체) / 일본어(신자체) / 영어

갑상선(甲狀腺) / 방패 모양 / 甲状腺 / 甲状腺 / Thyroid Gland
수상돌기(樹狀突起) / 나무 가지/ 树突 / 樹状突起 / Dendrite
사구체(絲球體)/실타래 / 肾小球 / 糸球体 / Glomerulus
망막(網膜) / 그물 모양/ 网膜 / 網膜 / Retina
포도상구균(葡萄狀球菌) / 포도송이 / 葡萄球菌 / 葡萄状球菌 / Staphylococcus
사상균(絲狀菌) /실 모양 / 丝状菌 / 糸状菌 / Filamentous fungi
호상균(壺狀菌) / 항아리 / 壶菌 / 壺状菌 / Chytridiomycota



흥미로운 건 영어 어원도 형상에서 왔다는 점이다.

thyroid의 어원인 그리스어 thyreos는 방패,

dendrite의 dendron은 나무,

glomerulus의 라틴어 glomus는 실뭉치라는 뜻이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이 어원을 한자로 옮겼고, 그것이 동아시아에 퍼졌다.

상(狀)을 중국은 '좡(zhuàng)', 일본은 '죠(じょう)'로 발음할 뿐,

한중일 삼국이 같은 번역어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의학 용어는 일반인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병원에서 진단명을 듣고도 그 의미를 모른다면,

환자와 보호자는 지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중의 노력도 필요하다.

모르는 용어가 나왔을 때 한자 풀이를 찾아보는 습관만으로도 문턱은 낮아진다.

갑상선의 갑상(甲狀)이 방패 모양을 의미한다는 걸 알면,

그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숙제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의료계도 어려운 용어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미 선(腺)을 샘으로 순화하여 부르듯이,

방패(甲)와 모양(狀) 같은 본래 의미도 함께 공유되어야 한다.

지식의 소통은 전문가의 배려와 대중의 관심이 만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뇌, 미지의 지도


움직임이 생긴 초기 생명체에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곧 미지와의 조우였다.

정보를 앞서 받아들여야 했기에 감각기관은 자연스레 진행 방향의 끝단으로 모여들었다.

눈, 코, 귀, 입.

이동의 균형을 잡으려면 좌우가 같아야 했고, 그렇게 좌우대칭의 몸이 만들어졌다.

이 방대한 감각 정보를 처리하려 신경세포들이 응집되면서 비로소 '뇌'가 탄생했다.

따지고 보면 눈은 세상을 보기 위해 뇌의 일부가 밖으로 마중 나온 흔적인 셈이다.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오늘날에도,

뇌는 여전히 인류 최후의 미지로 남아 있다.


뇌의 심부에도 그 형태에 착안한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신경세포 하나를 들여다보자.

세포체에서 뻗어 나와 정보를 받아들이는 돌기는 나뭇가지를 닮았다 하여

수상돌기(樹狀突起, dendrite)라 부른다.

반대로 정보를 내보내는 긴 줄기는 축삭(軸索, axon)이다.

이들의 접점인 시냅스망을 모사한 AI 알고리즘이나,

비선형적인 신경전달 메커니즘을 반도체 소자에 구현하려는 노력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뇌 깊숙한 곳에는 아몬드 모양의 작은 기관, 편도체(扁桃體)가 있다.

납작할 편(扁)에 복숭아 도(桃).

즉 '납작한 복숭아씨(아몬드)'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영어 'amygdala'의 어원인 그리스어 'amygdale' 역시 아몬드를 뜻하니,

동서양 모두 이 작은 기관에서 같은 형상을 읽어낸 셈이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와 불안을 처리한다.

공황장애를 겪으며 나는 이 작은 아몬드가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한다.

이성으로 통제되지 않는 공포, 그 진원지가 바로 여기다.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海馬)는 그 이름처럼 바다의 말(sea horse)을 닮았다.

영어 'hippocampus' 또한 그리스어로 말(hippos)과 바다 괴물(kampos)의 합성어다.

해마는 새로운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넘기는 창구 역할을 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해마와 편도체가 바로 곁에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기억과 감정은 결코 따로 작동하지 않는다.

강렬한 감정이 실린 기억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다.


해마에는 특정 장소에 있을 때만 반응하는 '장소 세포(place cell)'도 있다.

이 세포를 발견한 존 오키프는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나는 가끔 낯선 곳을 찾아가거나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며 이 세포들을 깨우려 노력한다.

우리는 뇌의 해부학적 형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통합되어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결국 뇌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익숙함의 한계


형상에 빗대어 이름을 짓는 것은 직관적인 이해를 돕는다.

우리 뇌에는 특정 패턴에서 얼굴을 찾아내려는 본능적인 경향이 있다.

화성의 바위, 콘센트 구멍, 자동차 전면부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내려는 현상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 부른다.

우리는 이처럼 늘 '아는 것'을 통해 '모르는 것'을 해석하려 든다.


하지만 이런 습관에는 함정이 있다.

고양이과에는 사자, 호랑이, 표범이 있고 개과에는 늑대, 코요테, 자칼이 속한다.

우리가 기르는 집고양이나 개는 그 방대한 계통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왜 과(科) 전체의 이름이 고양이와 개의 차지가 되었을까?


이는 특정 브랜드가 일반 명사화되는 현상과 닮았다.

봉고가 승합차를, 스카치테이프가 접착테이프를 대표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분류학의 창시자 린네 이후 수많은 생물학자가 계통을 정리해왔지만,

인간은 늘 곁에 있는 익숙한 동물을 기준으로 전체를 정의해왔다.

이는 인간의 인식 체계에 남은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의 흔적이다.




우리 몸의 기관 이름도 마찬가지다.

방패, 실타래, 아몬드, 바다의 말.

모두 인간이 이미 알고 있던 형상에서 빌려온 이름들이다.

이런 방식은 빠른 이해를 돕지만,

한자어의 경우 어원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본질을 놓치기 쉽다.

'죽상(粥狀, 죽 같은 모양)'을 대나무(竹)로 착각했던 나의 경험처럼 말이다.


의과대학생들 사이에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밥 먹다가 동료 얼굴에 밥풀이 붙어 있으면

"야, 볼에 밥풀 묻었다"라고 하지 않는단다.

"협골궁 하방 2센티미터, 대협골근과 교근 사이 지점에 이물질이 부착되어 있다"

라고 말해야 거리낌 없이 떼어낼 수 있다고.


전문 용어는 정밀한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언어가 대중을 소외시키고 지식의 본질을 가린다면

우리는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의 경로 의존성을 깨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려면

새로운 시선과 선명한 해상도가 필요하다.


그러니 가끔은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좌우로 기울이고,

빙그르르 돌려보자.

Rock 'n' roll!


우리 몸은 이미 그 방법을 알고 있다.




[독자 참여 코너]


편도체(扁桃體)는 뇌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담당하는 기관입니다.

편도체라는 이름은 어떤 형상에서 따왔을까요?


① 복숭아

② 아몬드

③ 강낭콩


정답은 댓글로!




우리 몸을 흐르는 피는 빨갛다.

적혈구(赤血球) 속 철분이 산소와 결합하며 내는 색이다.

그런데 손목 안쪽 핏줄은 파랗게 보인다.

정맥에 흐르는 피도 분명 빨간색인데, 왜 파랗게 보이는 걸까?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