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26년 2월호 게재글
《월간에세이》26년 2월호에 게재된 제 글의 본문을 그림과 함께 올립니다.
※ 경고: 화장실 이야기라 조금 지저분할 수 있음
운이 좋게도 한·미·일 세 나라의 대기업에서 일했다.
자연스레 기업문화, 처우, 복지를 비교하게 된다.
세 회사의 화장실은 어떨까?
함께 사용하지만 지극히 사적인 공간.
이름에 '화장(化粧)'이 들어가지만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공간.
그런 모순적인 공간에서 내가 느낀 점들을 나눈다.
일본 회사 사무실은 유채색이나 화려한 장식이 없는 절제된 인테리어였다.
튀는 행동이나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 문화가 드러난다.
화장실 변기에는 '오토히메(音姫)' 또는 '에티켓 벨'이라는 기능이 있었다.
버튼을 누르면 물 내리는 소리가 난다.
사적인 소리를 감추려 일을 보며 물을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물 낭비를 막기 위한 변기 회사의 아이디어였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나라는 비말(飛沫) 공포가 생겼다.
그즈음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자는 캠페인을 했다.
세균 확산 방지를 위해서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나에게 '닫힌 변기 뚜껑'은 공포의 대상이다.
몇 번의 '서프라이즈'를 겪은 이후로는 반드시 물을 한 번 내리고 뚜껑을 연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문을 잠그고 일단 물부터 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균 전파는 막지만 오히려 물을 낭비하는 역설이다.
반투명 뚜껑을 도입하면 어떨까?
완전 투명한 뚜껑보다는 시각 보호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씩 물을 내리지 않고도 현실을 직면하려고 노력 중이다.
미국 회사 화장실에는 "We know how to make the room clean."이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반도체 '클린룸'처럼 화장실도 깨끗하게 관리한다는 자부심이 녹아있다.
미국 공중 화장실 칸막이는 바닥에서 30cm 정도 떠 있다.
마약이나 범죄 방지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틈새로 옆 칸에 있는 동료를 인지하게 될 때가 있다.
미국인들은 대개 바지를 발목까지 내리는데 바닥에 떨어진 사원증이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그들과 복도에서 마주칠 때 나 혼자 민망해하곤 했다.
회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는 2017년부터 성소수자 보호를 위해
올젠더(all-gender) 화장실 설치를 법제화했다.
공간이 부족해 각 층 남자 화장실이 올젠더로 바뀌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국과 일본은 화장실 청소를 주로 여성 미화원이 하는 반면,
미국은 꼭 남자 화장실은 남자가, 여자 화장실은 여자가 청소를 한다.
모든 성별을 포용하지만 정작 다른 성별의 청소 인력은 철저히 배제하는 딜레마가 흥미로웠다.
6년 전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 회사로 이직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식후 양치질이 필수다.
회사가 남초(男超)라서 점심 식사 후 남자 화장실은 양치질을 하는 사람,
크고 작은 일을 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뚫어지게 보지 못한다.
30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다.
일찍 찾아온 노안(老顔)을 직면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신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을 곁눈질로 관찰하곤 한다.
신기하게도 나처럼 거울 속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를 닦고 입을 헹구고 손을 닦는 동안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자리를 뜬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단체사진을 볼 때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가장 먼저 찾는다.
같이 나온 사람들에게 "어, 사진 예쁘게 나왔네" 하고
말은 건네지만 내 눈은 이미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피하면서 사진 속 내 모습에는 집착하는 모순적인 나를 본다.
아마 이런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세균을 피하려 했지만 오히려 물을 낭비하고,
모든 성에게 열려 있는 화장실이지만 정작 금녀(禁女)의 공간이고,
거울 속 나를 마주 볼 자신은 없지만 계속해서 나를 확인하려는 우리.
화장실은 나에게 이런 모순을 깨닫게 해준 공간이었다.
어쩌면 회사라는 곳은 이렇게 불완전하고 모순된 존재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 곳인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도 있지만,
동시에 '그래도 내가 저 사람보단 낫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모순 속에서도 내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이유는,
결국 화장실 뚜껑을 열듯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물을 내리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