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역류 - 세번째 이야기
· 아날로그부터 AI까지 네 시대를 관통한 7080세대는 가장 노련한 기술 이주자
· 폴리(넓이)와 메타(높이)의 시대는 성장에 집착하느라 정작 곁을 보지 못함.
· AI 시대의 본질은 초월이 아닌 동행이며 이를 파라(para)의 시대로 정의.
· 기술이 범람할수록 인간의 체온이 닿는 '옆자리'가 가장 희소한 가치가 될 걸로 예상.
나는 참 운이 좋은 세대다.
어린 시절 사람 냄새 나는 아날로그의 온기 속에서 자랐다.
청년기에는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고,
한창일 때 모바일로의 전환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일상과 현업에서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네 개의 시대를 균형 있게 통과한 골디락스 세대다.
나는 그렇게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이주하며 살아왔다.
1980년대 초반, 시골에는 전자제품이라 부를 만한 것이 귀했다.
방 한구석에는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미닫이문 달린 흑백 TV가 놓여 있었다.
손잡이를 빙빙 돌려 교환원을 부른 뒤,
세 자리 국번을 대야만 간신히 연결되던 자석식 전화기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시절 우리는 늘 곁에 있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다.
놀고 싶으면 무작정 대문을 나서서 동네 친구들을 직접 찾아다녀야만 했다.
누군가의 옆자리에 있는 것, 그것이 곧 삶의 당연한 기본값이던 시대였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을 시작으로 인터넷이 일상으로 들어왔다.
거대 포털이 검색과 뉴스, 이메일을 한곳에 모았다.
사람들은 포털의 첫 화면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콘텐츠를 만드는 쪽은 여전히 소수였고 대다수는 소비자였다.
많을수록, 클수록 좋다는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이 나타나자 판이 바뀌었다.
컴퓨터가 손안으로 들어오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졌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취향대로 골라 소비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물리적 경계를 넘자 그다음은 현실을 초월하려 했다.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넘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으려 했던, 초(超)의 시대였다.
그러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
기계가 생각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다.
불과 몇 년 뒤, 생성형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2026년 지금, AI는 스스로 추론하고 도구를 골라 쓰며 과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agentic AI)로 진화하고 있다.
로봇의 몸을 입고 물리 세계(physical AI)로 나오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우리 70~80년대생은 이 시대의 원주민(native)이 아니다.
아날로그라는 고향을 떠나 네 개의 시대를 건너온 노련한 이주자(migrant)다.
이주자이기에 원주민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물음표를 던질 줄 안다.
기술 없이도 충분히 따뜻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기술이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발견한다.
나는 거대한 기술의 상승 곡선 속에서 묘한 역류(逆流)를 감지한다.
흐름이 오히려 사람 냄새가 나는 쪽으로 꺾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곁에 머물고, 같은 공기를 마시고, 성대의 울림을 함께 나누는 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각 시대에 이름을 붙여 AI 시대를 정의하고자 한다.
인터넷 시대가 폴리(Poly)였고 모바일 시대가 메타(Meta)였다면,
AI 시대는 파라(Para)의 시대다.
이 글은 네 개의 시대를 관통해 온 한 사람의 기록이자 전략이다.
폴리와 메타의 시대에 놓친 것들을 다시 되짚어 보려 한다.
그 배움을 발판 삼아 파라의 시대를 단단히 준비하고 싶다.
대학 1학년 때 동기 몇몇이 나를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MT에서 레크리에이션 사회를 즐겁게 이끌고,
무슨 일이든 앞장서던 활달한 모습에 붙은 별명이었다.
나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그때는 '만능'이라는 말 자체가 좋았다.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성격도 좋아야 하고, 악기도 다룰 줄 알아야 했으며, 운동도 빠지면 안 됐다.
그 욕망에 이름을 붙이면 폴리매스(polymath)가 된다.
여러 분야에 능통한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사람이다.
역사 속에는 그런 인물이 많다.
회화와 해부학, 건축을 넘나든 르네상스형 제너럴리스트(generalist) 다빈치가 대표적이다.
외교관이자 발명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거중기를 설계하고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도 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삶이 가능할까.
최재천 교수의 말처럼 과거에는 지식의 총량이 크지 않아
여러 분야를 섭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에 가깝다.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러 언어를 할수록 좋다고 믿었다.
영어와 일본어는 막힘없이 쓰지만, 중국어도 배우고 싶어 지금 공부 중이다.
두 개 국어를 쓰면 바이링궐(bilingual),
여러 개를 쓰면 폴리글랏(polyglot)이라 한다.
나는 폴리글랏이 되고 싶었다.
우치다 다쓰루는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 안에 타자의 회로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의 언어를 몸에 익히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는 막대하다.
실시간 통번역이 가능한 지금,
여러 언어를 몸에 새기는 일이 여전히 과거와 같은 가치를 가질지 의문이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잘하려는 집착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이를 '육각형 인간(all-rounder)'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외모, 학벌, 재력, 성격, 집안,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다.
모든 항목이 고르게 높은 상태를 이상형으로 삼았다.
그러나 다빈치식 삶에는 대가가 따랐다.
에너지를 사방으로 분산하면 어느 하나에서도 깊은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피터 드러커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큰 강점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커다란 약점도 가진다.
산봉우리가 높은 산은 계곡도 깊은 법이다."
인재의 형상으로 보면 폴리는 'T형 인재'의 가로축에 해당한다.
교육과 자기계발은 T자의 윗변, 즉 발을 걸치는 범위를 넓히는 데 치중했다.
윗변이 넓어질수록 에너지는 분산되고 전문성의 깊이는 얕아진다.
너무 넓은 T자는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쉬운 구조가 된다.
석사까지 6년을 쉬지 않고 공부했다.
머릿속엔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나 많다는 생각만 또렷해졌다.
그 한계를 돌파하고 싶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3년 안에 학위를 마치려고 한눈팔지 않고 논문 주제 하나에만 매달렸다.
하지만 학위를 받고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내 지식이 얼마나 취약한가 하는 자각이었다.
박사(博士)와 도박사(賭博師)는 같은 '박(博)' 자를 공유한다.
한글로 쓰면 한 끗 차이지만 불확실성 앞에서는 도박사가 더 강인했다.
도박사는 판세를 읽고 전략을 바꿀 줄 알지만
박사는 단 하나의 전공이라는 좁은 지반 위에 모든 것을 올려놓는다.
한계를 넘으려 쌓아 올린 바벨탑처럼 높이 그 자체가 취약성이 되는 구조였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시대의 키워드가 된 메타버스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21년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Meta)로 바꾸고 올인했다.
현실을 초월한 가상 세계에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리얼리티 랩스는 6년간 누적 84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디즈니는 메타버스 사업부를 해체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산업용 메타버스 팀을 해산했다.
그렇다고 가상 세계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몰입감은 더 깊어질 것이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좌초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방향이었다.
메타 스스로가 그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머리를 덮는 VR 헤드셋 매출은 줄고 있으나
얼굴 위에 가볍게 걸치는 AI 스마트 글래스의 성장세는 무섭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현실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옆에 서서 사용자의 눈과 귀가 되어 지각을 확장해 주는 기술이었다.
기술이 초월(meta)을 포기하고 곁(para)으로 다가오자 비로소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다.
폴리는 T자의 가로축이었고 메타는 I자의 세로축이었다.
T는 넓게 펼쳤지만 무게중심을 잃었고, I는 높이 솟았지만 홀로 서서 옆을 보지 못했다.
바바라 오클리가 주장한 π(파이)형 인재론도 결국 넓이와 높이의 조합일 뿐이었다.
셋 다 빠뜨린 것이 있었다.
바로 옆(para)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파라(para)는 그리스어로 '옆에'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다.
역설(paradox)은 '옆에 놓인 의견(doxa)'에서 왔다.
패러다임(paradigm)은 '옆에서 보여주다(deigma)'라는 의미로 본보기를 견주어 보는 행위다.
파라클레토스(paraklētos)는 '옆으로(para) 불려온(klētos) 자'라는 뜻이다.
고대 법정의 변호인이자 기독교의 성령, 보혜사(保惠師)를 가리킨다.
영어표준역(ESV)은 이를 Helper로 옮겼다.
현대 영어의 응급구조사(paramedic)나 법률보조원(paralegal)도 같은 구조다.
의사와 변호사 옆에서 돕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곁에 있었으나 보조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AI는 처음부터 이 옆자리를 자처했다.
그 이름에 정체성이 이미 드러나 있다.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는 쌍둥이를,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Copilot)은 부조종사를 뜻한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려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하겠다는 선언이다.
에이전틱 AI(agentic AI)는 이 옆자리를 실무의 영역으로 옮긴다.
스스로 판단하고 도구를 골라 쓰며 여러 단계의 과업을 수행하되,
결정적인 순간에는 사람에게 되묻는다.
인간이 방향을 잡고 에이전트가 그 명령을 수행(遂行)한다.
현대판 파라클레토스다.
피지컬 AI(physical AI)는 이 옆자리를 물리 세계로 확장한다.
공장에서는 사람 옆에서 부품을 건네고 함께 조립하는 협동 로봇이 이미 작동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노인의 보행을 보조하는 로봇이 시험 단계에 있다.
기술이 도달하려는 곳은 초월이 아니라 곁이다.
기술이 곁으로 왔다면, 나는 그 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앞으로 콘텐츠 생산자로 살고 싶다.
그래서 각 시대를 콘텐츠의 관점에서 다시 살핀다.
폴리의 시대에는 소수의 생산자가 다수의 소비자에게 콘텐츠를 보냈다.
방송국이 송출하고 시청자가 수신하는 일 대 다의 브로드캐스팅 시대였다.
메타의 시대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졌다.
플랫폼이 폭발하면서 누구나 만들고 누구나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파라의 시대에는 그 경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AI가 글과 이미지, 음악과 영상을 자동으로 생성한다.
생산 비용은 급격히 줄었고 품질은 이미 인간의 평균을 넘어섰다.
공급은 폭발하지만 소비하는 인간의 시간은 여전히 하루 24시간뿐이다.
스크롤을 내릴수록 기억에 남는 것은 줄어들고 사람 사이의 연결은 얕아진다.
생산 비용이 제로에 수렴한다.
공급 상품이 폭증하며 롱테일이 길어진다.
생산자의 소구(訴求)는 어려워지고 권력은 떨어진다.
그때 사람들이 찾는 것은 더 좋은 콘텐츠가 아니다.
물류에서 라스트 마일이 가장 비싸고 어렵듯,
콘텐츠에서도 마지막 휴먼 터치가 가장 귀한 구간이 된다.
AI가 줄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화면으로 보는 농담과 옆 사람과 함께 웃는 농담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웃음은 전염되고 옆 사람의 반응은 내 감정을 증폭시킨다.
이 생생한 증폭은 결코 화면 속에 갇히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준비하고 있는 컨텐츠는 대중 강연과 스탠드업 코미디이다.
지금 글을 쓰는 행위도 결국 이런 무대에 서기 위한 과정이다.
글로 생각을 다듬고 독자와 접점을 만들며 현장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지식은 AI가 더 잘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수백 명 앞에서 숨을 고르고 침묵을 견디며
웃음의 타이밍을 잡는 일은 AI가 할 수 없다.
그것은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현장의 공명이다.
나는 기어이 그 자리에 서려 한다.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정작 온기가 닿는 옆자리는 비어 있다.
파라의 시대가 진정으로 채워야 할 것은 정보가 아니라 사람의 자리다.
한자 '수행'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遂行(수행)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고, 隨行(수행)은 누군가의 곁을 걷는 일이다.
중고생의 수행평가를 위해 학부모가 수행하는 풍경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AI는 이 두 가지 수행을 동시에 해낸다.
우리가 맡긴 임무를 완수하면서 동시에 우리 곁을 나란히 따라 걷는다.
일을 마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는 퇴근 없는 조수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나만의 추구미를 완성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수행(修行)한다.
폴 서루는 "관광객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폴리의 시대에 우리는 관광객이었다.
명소 하나라도 더 찍기 위해 바삐 움직였지만 정작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느끼지 못했다.
메타의 시대에 우리는 여행자였다.
끊임없이 너머를 향해 걸었지만 정작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이제 관광객도 여행자도 아닌 사람이 되려 한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어디로 가는지도 분명히 아는 사람이다.
내 곁에서 함께 걸으며 길을 확인해 주는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더 많이'와 '더 높이'를 향해 달려왔다.
이제 물길을 돌려 다시 옆으로, 다시 곁으로 가려 한다.
시대의 이주자이기에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기술이 아무리 빨라져도 사람은 결국 체온이 닿는 자리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우리 옆에 나란히 앉은 AI와 함께,
그리고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과 나란히 우리는 파라의 시대를 걷게 될 것이다.
당신의 옆자리에는 지금 누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의 옆자리에 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