ㅗ : 옷깃에 스친 인연

2부 모음, 짐승의 소리

by 박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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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설계도


실내에서 아이와 여러 동물을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이름만 알고 처음 본 핀치.

190년 전,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은 부리가 제각각인 새들을

서로 다른 종인 줄 알았다.

수백만 년 동안 각자의 섬에서

먹이에 맞춰 부리가 달라진 것이다.

단단한 씨앗을 부수려 뭉툭해진 부리.

벌레를 잡으려 가늘어진 부리.

제 몸을 고쳐 쓴 생존의 기록이다.

동화에서나 보던 장면.

모이를 들고 있는 우리를 보며

어깨며 손바닥이며 노래하는 작은 새들.

어떤 녀석은 내 머리에 실례(?)를 하고

깔깔깔 웃으며 생명의 위대함을 새겨본다.

부리 끝 수백만 년이 새겨 놓은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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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색 부리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토코투칸이었다.

태양을 통째로 베어 문 듯한 오렌지색 부리.

암수 모두 같은 부리를 가졌다.

성선택의 압력 바깥에서 내재화된 미학.

하윤이가 덧소매를 끼고 모이를 내밀자

거대한 부리가 성큼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크고 딱딱했다.

옆에 있는 물그릇은 납작했다.

납작한 접시에 담긴 국물을

긴 부리의 두루미는 끝내 먹지 못했다는데.

토코투칸은 달랐다.

머리를 휙 돌려 부리를 기울이더니 물을 떠 올렸다.

부리가 크다고 불편한 게 아니다.

쓰는 법을 아는 몸은 어떤 그릇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여우의 납작접시도 비웃어낸 큰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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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jpg 아래 콜덕(call duck) 성체 사진 출처 <도시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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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보고 싶은 오리


노란 솜뭉치가 집에 왔다.

뒤뚱뒤뚱 뒷태와

도널드덕처럼 부르르 떠는 작은 부리.

사료를 온 사방에 퍼뜨려놓고,

흘린 것을 다시 총총 쪼아 먹었다.

하윤이 방에서 갑자기 다급한 부름이 들렸다.

뛰어가 보니 오리가 심상치 않았다.

일단 놀란 아이를 아내와 함께 밖으로 내보냈다.

제발 살아달라 간절히 빌며

작은 가슴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하지만 내 두 손안에서, 가냘픈 숨결은 끝내 멎었다.

짧게 스쳐 간 인연이지만, 우리 가족은 오랫동안

이 꼬마를 그리워할 것 같다.

하늘 어딘가에서 별빛을 쪼아 먹으며 뒤뚱거릴 너에게.

내 손끝 남은 온기가 너의 별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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