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미루는 이유를 굳이 찾지 않게 되었을 때

혼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던 하루

by JH


혼자가 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였던 하루



연락을 바로 확인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상태를 떠올리고 있었다.


세상과의 연결이 느슨해지면

마음도 같이 가라앉을 거라고,

혼자가 되면

그에 맞는 감정이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을 미루는 선택은

어쩐지 외로워지는 쪽으로

한 발 옮기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를 완전히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하루를 보내기 시작하자,

예상했던 감정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울려도 바로 손이 가지 않았고,

메신저 알림은 가끔 환각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어졌다.


어느 순간 내 휴대전화는 무음이 되었고,

그 상태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었다.

일부러 고립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알림이 줄어든 만큼 하루는 조금 더 조용해졌다.





연락을 씹는 건 아니었다.

다만 확인하는 빈도가 줄었고,

답장은 몰아서 보내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답했을 메시지들을

한참 뒤에 확인하면서도

마음이 급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답장이 늦어졌다고

관계가 틀어지지도 않았고,

내가 잠시 빠져 있다고 해서

하루가 어그러지는 일도 없었다.


주변에서도 점점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갑자기 연락을 받고

저녁 약속을 잡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고,

어지럽게 흘러가던 하루는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무계획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하루의 흐름이 예측 가능해졌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생활의 질을 바꾸고 있었다.





시간을 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무의미하게 쇼츠를 넘기던 시간 대신,

의식적으로 화면을 켜고 의식적으로 끄게 되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언제 멈추는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마음도 덜 흐트러졌다.


그 여백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대화는 특별한 사유나

깊은 질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잘 살고 있는지, 괜찮은지

스스로를 점검하지도 않았다.

다만 생각이 떠오르면 그대로 두었고,

감정이 스쳐 지나가면 붙잡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예상했던 ‘혼자만의 시간’과

실제로 도착한 시간이

조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외로울 줄 알았다.

적어도 마음 한편이 비어 있다는

감각 정도는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가장 많이 느껴졌던 것은

공허함이 아니라 안정감에 가까운 상태였다.


누군가와 계속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모든 연락에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씩 체감되었다.


나는 혼자가 되면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 느낌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연락을 미루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세상 안에 있었고,

다만 조금 덜 반응하고

조금 늦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즉각적인 반응에서 한 발 떨어지자,

세상과 나 사이의 거리가 무너지는 대신

오히려 또렷해졌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이미

나와 함께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위로도 아니었고,

대단한 깨달음도 아니었다.


그냥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상태,

하루가 갑자기 멀어지지 않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외로움은

예상만큼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 감정은 머릿속에만 있었고,

실제의 시간 속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연락을 미루는 선택은

세상과 단절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에

더 가까웠다.


모든 연결에 즉시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먼저 살펴봐도 괜찮다는 여유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세상에 혼자가 될 줄 알았고,

그래서 쓸쓸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그 상태에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계도, 하루도, 나 자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조금 더 조용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연락을 미루는 이유를

굳이 찾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선택이 나를

혼자로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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