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없는 주말을 설명하지 않게 된 날

비어 있는 시간이 편해졌다

by JH


비어 있는 시간이 편해졌다


주말이 다가오는데

일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비어 있다는 사실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한때는 휴대전화가 늘 손에 있었다.

연락처는 계속 늘어났고,

어느 지역을 가도 아는 사람이 있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넓었고,

그 넓음이 나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약속은 늘 겹쳤다.

하나의 만남을 마치고 나면

다음 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삶의 기본 형태처럼 굳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약속의 표정이 비슷해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의 시작과 끝이 거의 같았고,

안부는 정해진 순서대로 오갔다.


나를 찾는 건지,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를 찾는 건지

경계가 흐려졌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보다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더 또렷하게 남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그날의 말들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과의 거리도

그 무렵부터 달라졌다.


누군가는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변화를 설명 없이 받아들였다.


서로를 향해 있던 방향이

조금씩 어긋난 채로

시간이 흘렀다.


주변의 삶의 형태도 바뀌고 있었다.

누군가의 자녀였던 친구들이

누군가의 부모가 되었고,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나는 그 이동을 따라가지 못했다기보다

굳이 따라가야 할 이유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틈을 내어 만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나는 그 시간을 배려라고 여겼지만,

그 마음이 같은 방식으로 닿지는 않았다.


각자의 일상이 달라진 뒤에는

같은 말을 하고 있어도

비슷한 지점에 머물지 않았다.


그렇게

약속이 없는 주말이 하나둘 늘어갔다.





처음에는

이유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왜 비어 있는지,

왜 먼저 연락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말을 붙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주말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미리 꺼내지 않았고,

설명하지 않는 쪽이

조금 더 편해졌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결국 가족이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말도

가까워질수록

당연해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 당연함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싶었다.


거주 공간을 나누고

생활의 리듬을 달리했다.


하루 안에

오롯이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생겼다.


그 시간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연락처를 옮기지 않았다.

메신저 친구도 백업하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오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나는 따로 무언가를 채우지 않았다.


조용한 화면을 바쁘게 넘기지 않았고,

그대로 두었다.

이상하게 그 시간들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약속이 없는 주말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상태가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휴대전화가 조용한 시간이 늘어났다.

그 조용함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은

끝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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