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진작 읽고 작년 11월부터 방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친코는 애플티비 플러스가 아니었다면 시도되지 못했을, 미국 TV쇼의 역사를 바꾸는 드라마 시리즈이다. 다른 플랫폼들이 백인 캐스팅을 중심으로 하느게 어떻냐고 할때, 애플만 유일하게 아시아인 캐스팅을 협의했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는 기획부터 애플의 의지 같은것을 보여주었다.
애플티비는 그 어떤 프로덕션 작품보다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한국문화권 독자로서 파친코의 원작을 읽고 있으면, 일제강점기의 만행 같은것 보다는 잘 몰랐던 자이니치의 역사 등이 더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적 비극에서 외면되었던 약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티비의 파친코는 박력있는 산세리프 서체로 ‘일제강점기의 한국’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며,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한다. 이미 이 역사에 익숙한 한국관객들이 당황할 정도로 일본의 만행을 더욱 더 직설적이고 강하게 한다. 오히려 원작 책에서 좀 더 담담하게 묘사된 설정들이 더욱 더 압축적이고 강하게 표현이 되었다. 그 어떤 작품도 이렇게 역사를 직접 맞딱드린 작품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플티비 플러스의 오리지널 프로그래밍은 매 작품마다 제작물의 퀄리티가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선두를 달리는 넷플릭스도 작품의 포지션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는데, 애플은 거의 모든 작품의 매 장면장면을 타협하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파친코도, 사운드, 음악, 연기, 미술, 극의 전개, 플래시백의 사용 등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특히, 원작을 읽은 독자들이 새롭게 완성된 세계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기쁜을 주는 제2의 창작이 가능함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에피소드4에서는 강렬한 흐름의 분기점을 찍음과 동시에, 드라마 파친코의 강력한 스토리텔리의 힘을 보여주었다. 에피소드4의 이야기 진행은, 개개별 사건은 하루 정도로 짧다. 하지만, 어린 선자와 나이든 선자의 이야기를 평행으로 보여주는 구조를 완벽하게 분배하여 보여줌으로서, 지금까지의 역사를 궤뚫고 파친코라는 작품 전체를 궤뚫는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원작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는 우리를 마쳤지만. 상관없어.” 라는 의지를 향한 에피소드5에서부터의 앞을 향한 항해가 힘차게 계속된다.
파친코는 애플이 아니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 특성상 애플 친화적인 일본시장의 마케팅도 포기한 채, 한국어와 일본어를 주 언어로 한 TV드라마를 만들고, 에피소드1 전편을 유튜브로 공개까지 할 정도로 애플의 메시지가 명확한 듯하다. 타협없는 최고의 작품을 서비스하겠다. 이때까지 티비가 해내지 못한 것을 애플이 하겠다는 의지가 선명하다.
파친코 1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원작에서 해방된 드라마만의 새로운 연출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고한수의 어린시절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쓰여졌다. 원작 소설이 오히려 좀 더 담대하게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면, 드라마는 이제 사건이 튀는 방향과 등장인물들의 목소리에 각기의 힘을 실어준듯 하다. 파친코의 세계가 더 넓고 복잡한 것을 확장되는 기대감 같은 것이 생겼다.
시즌 피날레는 실제 재일한국인 여성분들의 인터뷰를 담으면서 끝난다. 이쯤에서 되면 정말 파친코의 제작진들은 브레이크를 밝을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이 이야기는 역사를 견뎌낸 살마들의 이야기이며, 애플은 그 어떤 지점에서도 처음의 의도를 흐리거나 대충 다룰 마음은 없어 보인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열아홉살때인가 까지 일본에서 사셨다고 한다. 한국에서 밀항해온 한 한국인 청년이 집에서 하던 회사에 취직을 하였고, 그리고 관동대지진 이후에 좋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함께 귀국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간혹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곤 했는데, 할머니댁 마루에서 보이는 끝없는 들판을 보며 지내셨을 젊은 시절에 대해서 자식들은 잘 알지 못했다. 쉰살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우셔서, 그 동안은 할아버지가 신문을 읽어주셨다는 이야기도 어릴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해다. 그리고 그 잊혀진 세월은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선자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원작을 읽어본 독자들은 하나같이 놀랄것이다. 아직 많은 분량이 진행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파워풀한 서사가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파친코는 애플이 스트리밍의 시대에 이루어낸 새로운 텔레비전의 혁신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