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일 작성글.
영화 ‘스티브 잡스(Steve Jobs)’에서는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리사에게 스티브가 이렇게 말해, 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그 만의 해법으로 이야기합니다. 리사는 당시의 아이콘인 큰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천 곡의 음악을 들고 다닐 수 있게 해줄게 (So I ‘m gonna put thousand songs in your pocket)’
애플 팬보이로서 그 장면을 볼때, 정말 저렇게 멋지게 대사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창피함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있었고, 지금 ‘음악’이라고 하면 하얀 콩나물 이어버드를 귀에 낀 사람들의 이미지가 심볼처럼 굳어졌습니다.
애플의 에어팟 제품들은 출시 전부터 계속되는 논란의 중심에 있습니다. 비싸고, 모양이 우스꽝스럽고, 잃어버리기 쉽고, 음질은 희생한, 흰 색 하나밖에 없는 애플팬들이나 살까말까한 제품이라는 논란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TWS라고 불리는 완전 무선 이어폰들이 정말 그 어느때보다 다양한 제품들이 나오고 있고, 저가에서부터 고가까지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을 쓰고, 그로 인해 구매한 아이패드나 맥북 제품들을 쓰면서, 부족함이 없는 이어폰을 사는 것을 정말 어렵습니다.
좋은 음질을 내고, 충전이나 보관이 쉽고, 애플기기들과의 연결 안정성이 좋으면서, 브랜드 신뢰도나 디자인 같은것들이 만족스럽고 하는 기기들을 찾다보면 에어팟이 아닌 제품을 고르기가 힘듭니다. 정말 애플을 피하고자 한다면 에어팟 프로의 자매격인 비츠 핏 프로 같은 이어폰을 고를 수는 있겠지요
에어팟 프로2가 처음 발표 되었을때는 소문만 무성한 무손실 오디오를 지원하지 않아서 그렇게 큰 관심은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길게 해외 출장을 갈 일이 생겼고, 2배 강한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에어팟 프로2를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한달동안 매일처럼 에어팟 프로2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에어팟 프로2는 정말 프로세싱이 빠른 정교한 컴퓨터 같습니다. 귀에 꽂고, 개인화 공간음향을 켜고 애플뮤직으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정말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고 음악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변의 소리는 이렇게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단단하게 차단되고, 고요한 가운데 좋아하는 음악들이 귀를 가득 채웁니다. 그 순간만큼 타협점 하나 없는 완벽한 음악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에어팟 프로2의 음질은 매우 좋습니다. 요즘에 정말 좋은 이어폰이 많습니다. 하지만 에어팟 프로2는 사운드에 대한 응답도 빠르고, 전 주파수 영역도 골고루 밸런스있게 잘 들려줍니다. 그리고 에어팟 시리즈와 비츠 시리즈 때문에 기본으로 켜고 있는 공간음향의 처리가 매우 자연스럽고 좋습니다. 개인화 공간 음향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듣는 음악도 매우 좋습니다. 인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는데, 다른 가상 3D 솔루션보다는 자연스럽고 좋은 느낌이라 이 옵션을 켜고 다니다보면 나중에는 그게 기본처럼 느껴집니다.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비츠 핏 프로보다 극저음이 좀 부족하고 고음이 조금 쏘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약간의 문제는 이어팁을 바꿈으로서 좋아졌습니다. 순정 이어폰 그대로 쓰는것도 좋지만, 에어팟 시리즈 같은 경우 관련 액세서리도 많이 나오는 편이라 이렇게 작은 커스텀을 할 수 있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이어팁에 관한 이야기는 0DB 유튜브 채널에도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물론, 안드로이드 폰들에서는 AptX Adaptive나 LDAC같은 CD음질보다 고음질의 코덱을 지원하는 폰들이 있고, 요즘에는 그 코덱을 지원하는 다른 무선 이어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음악을 들어보면, 고음부의 섬세함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사운드가 힘차고 정확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정말 좋은 음악 청취환경의 느낌이 납니다. 이렇게 조건을 맞춰서 듣는 것이 좋은 청취자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에어팟 프로2는 이어폰 사상 최고의 연산을 자랑하는 애플실리콘 H2 칩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에어팟 프로에 사용된 칩이 H1으로 아이폰4를 처리하던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정도의 칩이었다는 사실이고, H2는 그 다음세대를 책임지는 칩입니다. 블루투스 5.2를 지원하는 에어팟 프로2와 아이폰 14프로시리즈에서 아직 고음질 코덱을 지원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드로이드의 다른 고음질 코덱 환경과 비교를 하면 해상도의 차이는 분명 있어요.
하지만, 에어팟 프로2로 음악을 듣고 있자면 그런 해상도의 차이가 크게 문제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폰을 통해 전해지는 음악들이 한 치의 오차나 끊김 없이, 강력해진 노이즈캔슬링 환경에서 전해지니까요. 음악은 시간이 고정된 예술이지만, 에어팟 프로2로 듣고 있는 음악은 연산이 매우 빠른 컴퓨팅이 영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줍니다.
보통 귀로 뭔가를 들으때는 처음에 퀄리티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조금 듣다보면 귀가 그에 맞춰 적응해가면서 드는 느낌이 있습니다. 에어팟 프로2는 처음에는 괜찮은 퀄리티의 소리를 들려주고, 계속해서 듣다보면 듣기에 정말 느낌이 좋은 예쁘고 잘 정리된 소리를 들려줍니다. 특히 프로1에서 프로2로의 성능 향상이 노이즈캔슬링과 사운드 처리를 더욱 더 강하게 지원해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애플 기기에서 애플 뮤직으로 음악을 듣는 것으로 에어팟 프로2가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 거 같습니다. 음악 라이브러리와 사운드와 그 경험 모두 손끝에 붙어있는듯한 나를 위해 가깝게 케어해주는 느낌이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