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바람의 색이 느껴지는 시간
무심히 놓은 배낭, 힘차게 부는 바람, 거뭇거뭇한 현무암. 모든 걸 던져버리고 떠난 제주도. 맥주 한 캔 사서 바닷가 근처에 털썩 앉아버린다. 엉덩이에 묻을 모래 따위 안중에도 없다. 여기 이곳에 존재하는 나는 자유롭다. 흐르는 바람은 나를 이곳으로 불러왔다.
선글라스를 껴도 푸름이 가려지지 않는다. 헤드셋을 껴도 파도소리가 가려지지 않는다. 한 참 생각에 잠기고 깨고를 반복한 후 느긋하게 일어난다. 조심스레 다가간 파도에 발을 맡겨본다. 발끝에 느껴지는 물 내음이 머리끝까지 전달된다. 이내 바지 밑단이 젖어도 걱정 없다. 나는 자유롭다. 축축하게 젖어 있던 마음이 이내 바닷물로 정화된다. 그렇게 나는 맑아진다.
어딘지 모를 바다 한가운데에 서있다. 내가 살던 곳에서 몇 시간도 안 걸리는 곳에 위치한 지상낙원. 근심 따위는 배낭에 챙겨 오지도 않았으니 꺼낼 수도 없다. 그저 걷다가 쉬다가 누우면 흘러가는 나날들. 흔들림이 없는 시간 속 나는 굳건히 존재한다. 떠나 오기로 한 마음이 나를 살렸다.
오길 잘했다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