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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ungho Kim Feb 01. 2021

브랜드, 세 가지 얼굴

이태리에서 얻은 브랜드에 관한 세가지 단상


내가 처음 이태리로 건너온 것은 2012년 초순이었다. 직장생활 첫 7년을 패션기업에서 보냈다가 16년간 패션이 아닌 곳에서 일을 하고 필연처럼 다시 패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돌아온 곳이 이태리 였다. 이 글은 내가 유럽에서 패션 브랜드들을 운영해오며 개인적으로 품었던 질문과 답에 관한 것이다. 기술적인 글도 실무를 돕는 글도 아니다. 유럽에서 다른 문화에 적응해가며 생소한 마켓과 사람들 사이에서 생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 중 그저 혼자 묻고 답한 브랜드와 나에 대한 생각의 가지일 뿐이다.


하나, 브랜드는 소통이다


패션은 자신에 대한 표현이자 타인과의 소통이다. 해외에 나와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통에 정말 약하다는 사실이다. 이건 비단 기업 안에서 협업 시에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석구석 어디서나 보이고 나타난다. 


도로에 나가면 공격적이고도 배려없이 운전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층간 소음으로 싸움이 커지고 급기야 살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마주치는 사람 거의 전부가 웃음기 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지나간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뒤에서 빨리 끝내라고 재촉을 한다. 매달 매주 매일의 실적을 가지고 상사는 무자비하게 쫀다. 


학생시절부터 직장생활까지 언제나 시험과 경쟁 속에서 살고 있다. 친구나 동료는 결국 경쟁의 대상이지 소통과 협업의 파트너가 아닌 일상에 아동시절부터 길들여진다. 사람을 상업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브랜드를 이룩해 가는데 있어 큰 제약이 된다.


고객은 사람이고 그들 하나 하나가 스토리를 가진 인격체임을 아는 것에서부터 브랜드가 시작된다. 사람인 고객과 소통하는 것이 브랜드이기에 누구보다 사람으로서의 매력이 넘치는 이들이 브랜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우리 브랜드들이 세계시장에서 뻗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서 관계형성에 우리가 너무 미숙하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느낀다.


좋은 스토리를 가진 해외 브랜드를 인수했음에도 더 성장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앞서 설명했듯 인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 자신에 대한 성찰의 부족, 상호 소통의 결여에서 많은 부분이 설명된다.


둘, 브랜드는 질문이다


우리 세대가 어려서 어른들에게 받았던 상처 중 하나는 질문에 대한 폐쇄적 태도였다. 질문을 권장하기 보다 질문을 경우에 따라 반항이나 저항으로 간주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과 유럽인들 사이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질문에 대한 생각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질문을 할 때 많이 망설일 것이다. 몇가지 질문을 하려 들면 일단 해보고 나서 물어보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우리가 하는 질문은 많은 경우 의견이나 생각의 뿌리를 더 탐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간 결론을 속히 내리고 빨리 진행하려는 동기가 많다. 어찌보면 질문은 소통에 있어서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질문은 생각을 유도하고 소통을 촉진한다. 


좋은 브랜드는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진다. 나 스스로 나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게 브랜드를 진행하는 사람의 기본이어야 한다. 


질문의 폭과 깊이는 단기간에 만들어 지지 않는다. 


질문은 사고의 수준, 소통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 스스로 자신을 탐색해 가기 위한 질문을100개만 적어보라. 너무 어려운 일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 가치가 있다. 


나에게 던지는 질문 100개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그 질문을 서로를 향해, 또 브랜드에 대해 제시하고 구성원 모두가 함께 답을 해본다면 왜 이 브랜드가 존재해야 하고 어떤 사명 하에 무엇에 집중할지 보다 명확해 짐을 경험할 것이다.


셋, 브랜드는 촛불이다


처음 이태리에 왔을 때 가장 불편했던 것 중 하나가 조명이었다. 형광등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간접조명이 너무 어둡고 칙칙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졌었다. 사무실 뿐만 아니라 집도 거리도 전체적으로 한국과는 다르게 간접조명으로 꾸며 두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불을 켜면 너무 어둡게 느껴져 전구를 밝은 것으로 교체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도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익숙해져 갔다.


시간 날 때 마다 갤러리를 찾아 다니곤 했는데 그곳에서 본 수많은 중세의 그림들에서 난 브랜드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촛불 앞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은은히 밝은 반면 촛불과 먼 거리의 모든 것은 어둠 속에서 형체만 흐릿하게 보일 뿐 이었다. 


자세히 보면 그냥 검은 배경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형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물들이 존재했다. 어둠은 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그렇기에 촛불은 인류가 만든 가장 뛰어난 브랜드의 교재일 것이다. 


브랜드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분명 다른 많은 것들이 있지만 촛불 앞에 비춰진 얼굴처럼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조명으로 가장 친숙한 빛으로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게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오면 실내 전체가 어둡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 실내 조도에 익숙해지면 어둠 속에 가리워졌었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형광등처럼 모든 사물을 같은 밝기로 비추기에 무엇이 더 밝아야 하는지 무엇이 어둠이라는 도구 속에 담아 흐리게 만들어야 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이제 난 어둠이 고맙고 중세의 유럽에서 제작된 많은 그림들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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