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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Sungho Kim Feb 01. 2021

일년간 밥집사장으로 살아보기

2011년 중순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CFO이자 상무라는 직급으로 아쉬울 것이 없는 위치였기에 주변의 지인들이 내가 한 선택을 이해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엔 내 상사였고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동갑내기 대표가 극구 만류하면서 집까지 두어번 찾아왔고 그 중 한번은 내 연봉을 훌쩍 넘는 싸이닝 보너스 제안을 하며 퇴사하지 말것을 권했다. 그럼에도 퇴사를 단행했다. 한번 뭔가 하고 싶으면 눈이 도는게 나란 인간이었던 것이지. 암튼 밥집 한곳을 인수해서 그렇게 장사를 하게 되었다. 혹시라도 이전에 해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이 있어서 그랬을것이란 상상은 마시기 바란다. 일도 경험이 없었다. 경험이라면 식당사업관련 책들을 열권 읽은 간접경험이 다였으니까


 식당을 열자마자 식당 동선과 조리도구와 메뉴구성을 재편하는 작업을 했다. 몰랐지만 그냥 상식으로, 평소 봐둔 느낌으로 한 것이지. 그럭 저럭 한달이 지나지 않아 정비작업이 끝나고 성수기로 접어들면서 이전 주인시절 평균매출을 현저히 뛰어넘기 시작했다. 주변 상인들 사이에 그 동네 돈은 우리 식당이 갈고리로 긁어간다는 쑥덕거림이 돌기 시작했다. 바쁜 날은 점심시간 1시간 삼사십분 동안에 3회전을 했는데 그때 육체노동의 지옥을 맛봤다. 밖에 마련해둔 비취파라솔과 휴게공간까지 손님들이 앉아서 떼창으로 밥줘 밥줘를 하는데 평소 내가 한적은 있어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동시에 수십명이 밥죠~를 외치면 정신이 가출함을 깨달았다. 


그러다 지금 일하는 기업오너께서 이태리로 건너가 회사관리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오셨다. 놀기 좋아하던 내가 하루 열여섯시간의 노동을 쏟아붓던 차에 틈만나면 도망갈 생각을 하며 괜히 밥집을 했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던 처지였기에 제안을 받고 2주뒤에 난 이태리로 갔다. (식당은? 아내를 매니저로 세워두는 임시조치를 했다가 몇달뒤 팔았지)


그렇게 일년간 밥집사장으로 지내며 비로서 알게된 내 정체가 있었는데,,,


1.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사람 잘 못사귀는 줄 알았던 내가 알고보니 아니더라


단골 중 유난히 형님뻘, 삼촌뻘이신 분이 많았는데,, 저녁이면 이분들이 슬금슬금 오셔서는 푸짐하 안주에 쏘주한잔 찌끄리며 날 앞에 앉혀두고는 무슨 할말이 그리 많으신지 안주의 반은 내가 먹고 술병의 반도 내가 비웠지만. 내가 이태리로 오고나서도 날 찾는 할아버님들이 제법 많았다는 후문이고, 그 중 한분은 내 이메일 주소를 알아가셔는 메일까지 보내셨다. 하기는 식당을 할때 식당까지 40분을 걸어 오시는 할아버지가 계셔서 그분께 걸어오시지 말고 전화주시면 차로 모시러 가겠다 말씀드리고 모셔오고 모셔다 드리길 반복했을 만큼 노인분들께 각별히 하긴 했다


2. 난 일하는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16시간 노동을 해보니 노는게 역시 최고였다


말해뭐해,,,,,  역시 노는게 최고다. 맛난거 먹고 맛난 와인 마시 며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수다도 떠는게 제일이다. 이걸 모르고 내가 일만 하고 살았어. 역시 난 놀아야 한다  이땅에 놀려고 태어난 것이다  나는!!!


3. 인생,,, 모퉁이 뒤에 뭐가 있는지 알게 모람~ 


인생에 장기 방향은 있지. 일종의 살고 싶은 그런 기준내지 목적. 하지만 디테일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련다. 오늘 뭘 꼭 해야하고 이번주에 꼭 뭘 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닥달하는거 더이상 안하겠다는 거지. 식당을 하면서 비로서 내가 그러면서 너무 오래 살아왔다는 것을 안거지. 그러면서도 스스로 아끼고 위하며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한거지. 내가 나에게 여유와 빈공간을 주겠다 다짐했어  동동거리지 않아도 된단다 아재야.


4. 팀웍은 같이 노니 생기더라


식당에 나 말고 대여섯명의 직원들이 있었어. 처음엔 밥집사장을 처음해보는 거라서 이 세계에선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가나하고 좀 당황했어. 지금껏 내가 이끈 화이트칼라와는 다르잔아..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며 점심 장사 후에 매일 내가 직원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어  매일 다르게.  어떤날은 인삼볶음밥, 어떤날은 떢볶이, 어떤날은 순대볶음, 닦도리탕, 각종의 찌개종류,,, 등등 그리고 막걸리 한잔씩 수고했다고 줬지. 그러다보니 하루는 어떤 직원이 동네 맛집이라고 특별식을 사오고 또 하루는 다른 직원이 그러고,, 그렇게 우린 매일 점심만찬을 즐긴거지.  어색하던 사이가 넘 친근해지고 직원들이 외려 사장인 날 걱정해주기 시작하대...  이런 일 일도 모르는 천지분간 모르는 우리 사장님 망하면 안되지,,, 우리가 저 불쌍한 냥반 돌봐줘야지,,, 그러면서 지냈다구.  난 한거라곤 동막골이장님 처럼,,, 그저 멕인거 밖에는 없거든 사실. 


밥집에서의 일년은 지금 돌아보면 나름 재밌었어. 


인생이 참 얄궃은게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그때의 경험이 턴어라운드 전문 경영인(어려워진 기업을 살리는 전문가)으로 살아가는데 거름이 되어준 것이라는 것... 그 작은 식당에서 난 숫자로서의 기업정보가 아닌 살아있는 실적의 흐름, 매출, 비용, 직원관리, 손님과의 관계 등등을 다 배운거지. 


설마 내가 그럴줄 알고 식당을 뜬금없이 했겠어? 몰랐지... 그냥 어느날 가슴이 하고 싶다고 했고 천지분간 못하고 덜컥 했는데 그런 결과가 생겨버린 것이지. 


여기까지가 내 밥집사장 이야기 ~


아,,,  요즘 어디서 한달 살아보기 일년 살아보기 같은거 많이 하고 좋아들 하던데

해보고 싶은 분들 밥집 또는 술집 사장으로 일년살아보기,,,,  비추해요~~~~  못 논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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