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그 이

미수용 과제

by 성화

친구는 디자이너였다. 염불을 외던 홍익대학교에 합격해서 잘 다니는 듯 보였는데, 재능과 재력의 한계에 부딪혀 미술을 관뒀다. 아무렴 개발을 배우더니 카카오에 취업을 해서 별로 안타깝진 않았다. 야무지고 판단이 빠르고 맷집도 센 미아는 그런 말을 했다. 옆집에 디자이너가 이사를 온다면 괜찮지가 않을 것 같아. 하지 않았던 게 아니고 하지 못하게 된 건데, 인생이란 게 단 한순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건데. 그걸 극복하는 사람이나 애초에 힘들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구나. 내가 택했고 지키고 있는 일상, 평생의 낭만과 맞바꿔온 그것을 두 손에 꾹 쥔 채로 나는 어떤 표정을 감추게 되려나.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있었다. 에릭슨이었나, 생애 단계별 과업 관련이었던 것 같다. 꿈을 꾸는 나이가 있다면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시기가 있다, 달성하는 시기가 있다고 했던가? 유년기 땐 뭘 하고, 어린이들은 뭘 하고, 청년들은, 장년들은, 노인들은 뭘 해야 된다던, 한 단계라도 넘어가지 못하면 계속해서 문제가 축적된다던 교수님. 하나라도 꿋꿋이 서있으면 안 될 도미노 설화로 들렸다. 도무지 실패와 극복이 없는, 예측 가능도가 불안하게 평안한 시나리오. 청소년기 땐 정말이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던데. 아프지도, 마음이 아프지도, 엄마 아빠가 싸우지도, 이상한 친구를 만나지도 말고, 아니 그냥 이사도 가지 말고 중간고사 수행평가 기말고사 방학을 잘 지나야 한다고 했다.


일단 내 인생은 그렇게 안 됐다. 이슈가 좀 있었다. 마음이 아팠고 성적이 떨어졌고 고3 9월에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을 했다. 모두의 앞에 나가 상을 받는 어린이에서, 아무에게도 기대당하지 않는 대학생이 됐다. 적당한 무시로 자유해진 나는 하고 싶은 걸 했고 교육학을 부전공했다. 공부로 잃은 성취감을 공부가 되찾아주는 경험을 했다.


지난 가을엔 학원을 그만뒀다. 가르치는 걸 좋아했고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는데, 그 사랑의 값이 너무 비쌌다. 변명을 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자꾸 잘 관뒀다고 했다. 사람들은 잘됐다고 하는데, 내 존재의 어떤 부분은 수용되지 않고 꿍하게 가라앉는다.


교수님은 어려서 시도도 못했거나 실패했던 꿈을 물끄러미 유예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면 지금이라도 미술 동아리라도 나가야 한다고. 해소 없이 보류해버린, 인정되지 않은 꿈을 갖고 늙으면 화가 많은 노인이 된다고 했다.


집 앞 책방이 문을 닫았다. 책과 책방을 사랑하여 돈, 마음, 체력, 시간을 부어 지하에 그걸 열어버린 사장님. 그와 책을 읽고 글도 쓰고 많이 떠들었는데. 마지막 글모임은 무려 연차를 써서 다녀왔다. 서점에 가본 적도 없는 엄마가 폐업 시에 복원비가 많이 든다 한다. 마음을 복원하는 건 얼마인지는 알아? 받아치고 싶어진다. 떠밀리듯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한 나에게 아빠는 말한다. 내 낭만의 시간을 허송세월이라 말한다. 나는 또 받아버리고 싶어졌다가 울어버리고 싶어진다.


이른 나이에 어떤 일을 해야 가장 영광된 낯으로 살 수 있는지 알아버렸다. 그 소망이 나를 쉬지 못하고 연민에 빠지지 못하도록 몰아붙이더니 결국 내 발로 필드를 나가게 만들었다. 희망이 나를 희망하게 하고 직접 포기하게 만들었다. 길가의 어린이들, 즉 길가의 이모인 나에게 관심이 없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 인생이 웩웩 토해내는 앙금과도 같은 영광. 내 인생이 감당하지 못한 존재 목적의 조각. 이 글을 쓰는데 전공책에 적힌 대로 살지 못하는 또래들이 수천만 명 떠올라 대책 없는 기분에 빠진다.


나의 유튜브가 열정적으로 추천하는 잘생긴 운동선수들 사이 오타니 쇼헤이를 본다. 이 야구에 미친 놈, 옆집으로 이사 오면 안 될 사람 1위. 짜증이 났다가도, 그래도 이 또래가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앞뒤좌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초연한 진공 상태로 정진하는 한 인간. 돌아올 곳을 마련한 채, 더 멀리 날아갔으면 좋겠다. 토할 듯한 무엇도 없이 단정한 눈빛을 하고 있는 옆집의 그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을 잃었기에 지도를 펼치면서, 옆 나라 그 이를 곁눈으로 밟으면서, 다시 찾아나갈 루트를 탐색하며, 아무튼 오늘은 그렇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