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즐겁게 하는 생활에 관해 적어본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하거나 시간을 지나며 깊어져 간다. 시간을 사랑스럽게 영위하고 디자인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을 열심히 연구하고 이름을 붙여주며 예민하게 감각하고 싶다. 남들이 보기에 좀 구린 감각일지 몰라도, 하기의 모든 것들은 나를 수시로 안위하고 힘을 불어넣기에 나는 계속 열렬할 수 있다.
난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좋아라 하는데, 그중 제일은 커피 향으로 판명 났다. 그 외에도 카페의 정돈된 모습, 공간에 흐르는 가사 없는 재즈, 수년을 수련하여 정성을 듬뿍 내린 한 잔을 동경한다. 이것도 마셔봐, 저것도 시도해 봐, 자꾸 상 위로 내미는 작은 컵들을 사랑한다. 그것의 향을 맡고 색깔을 보고 과거의 기억 이것저것을 꺼내 대조하면서 가장 비스무리했던 행복을 매칭시켜 본다. 이것은 꿉꿉한 고구마의 단맛이야, 이것은 끝맛이 시지만 부드럽게 무거워, 그때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집에 얼른 들어가서 이메일을 마저 썼었어… 마시고 평하고 수다를 나누다 보면 인생이란 것도 쓰지만은 않아진다.
강아지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쓰고 유기묘 봉사도 다녀왔는데 결국 입양은 못했다. 아직 집도 좁고 갑작스러운 출장이 있을지도 모르며 10년 이상의 계획을 하기엔 버겁다. 애견 동반 카페들이 많은 곳에 이사를 와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오늘 낮에도 그중 한 곳을 탐방하였는데, 샤워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뽀얗고 복슬한 강아지가 있었다. 승질이 드러우니 먼저 안지는 말아달라 적혀있었고 으르렁대는 걸 보니 아무렴 설명이 맞는 것 같았다. 이 귀염둥이가 너무많은 사람과 강아지를 만나며 넘치지 않는 스트레스만 받기를 바란다.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1인 가구를 먹여 살리려면 1인 가장이 굉장히 부지런해야 함을 배웠다. 청소기도 당근을 해다가 밀어야 하고 라면이나 햇반으로 때우지 않으려면 쌀도 씻어 안쳐야 하고 벌레가 생기지 않게 쓰레기도 종류별로 잘 버려야 한다. 손에 묻히기 싫은 것들도 거품이 퐁퐁 나는 것들로 박박 닦고 물로 깨끗하게 씻어내야 한다. 놀러 온 이들에게 에헴, 이 하얀 것이 나의 화장실이다 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뽀득해진다. 세상아 보아라, 나의 부지런함을. 내가 얼마나 차근히 스스로를 돌보고 있는지를!
중학생이 된 이후로 드문드문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고 있다. 아파서 간 곳이고, 물론 더 안 아팠으면 좋겠다. 말을 너저분하게 쏟아내다가도 꼭 해야 할 말을 하고 꼭 들어야 할 말을 듣고 오는 날이면 돌아오는 차에서 눈물을 펑펑 쏟는다. 흑흑도 아니고 엉엉도 아니고 왕왕 운다. 텅 빈 카카오톡 창을 볼 때나, 길거리에 하릴없는 웃음을 주고받는 사람들 속에서 때로 밑도 끝도 없는 수렁에 빠져든다. 그럴 때면 눈앞에 선생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뭐든지 토로해본다. 그렇게 정돈하고 약을 먹으면 스르르 잠에 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사람들은 다 죽어간다. 어떤 이유에서거든 끝은 냉정하게 자명하다. 수명이 늘어날수록 전반부에 꺾여버리는 체력과 아름다움이 처량해질 따름이다. 버텨내야 하고 아등바등해야 할 시간만이 길어져 버린 것 같다. 그렇기에 정 반대 방향으로 자꾸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놀랍다. 파릇한 생의 에너지, 돌아서면 자라 있고 돌아서면 커져 있는 그 애들.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우울하거나 멈춰있기를 허락하지 않는 희망이 매몰차다. 무한히도 행복하고 모든 것에 경이감을 느끼는 하루하루로 기억을 꽉 채워나가는 중일 것이다.
이젠 바깥을 차단하는 소리 기술이 일상에 완전히 녹아든 것 같다. 작은 소리로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청력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이름 모를 또 다른 기술은 내가 좋아할 만한 곡들을 지치지 않고 재생해 준다. 아직 헛발질이 많긴 하다만 노력이 가상하다. 예전에 멜론에 만들어둔 플레이리스트는 나중에 들었을 때 그렇게 좋다. 숨어서만 들어야 할 곡을이면 어떠하리. 모든 외부의 자극이 나를 공격할 때 그 목록 속으로 도피하고 안정을 취한다. 영어를 공부하니까 외국인들이 구시렁대는 소리도 조금씩 들려서 좋다. 유튜버들이 기깔나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올려서 디깅의 능력과 감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긴 하다.
우정 또한 연인처럼 나를 찾아왔다 나를 떠난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중고등학교 동창들이 평생의 우정을 책임질 것 같았던 아름다운 환상은 깨졌다. 이불을 걷어찰 실수를 하고 친구였기에 더 큰 상처를 받고 돌이킬 수 없는 양 갈래의 길로 흩어진다. 분명히 똑같은 친구인데 가치관의 틈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붙잡는대도 이미 답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파도처럼 몰려간 친구가 있고 파도처럼 몰려온 친구도 있다. 몰려온 이들에게 돌봄과 기도를 부탁한다. 이렇게 기도해 줘, 저렇게 기도해줘 서로의 안위를 살피며 선물, 편지, 카톡을 주고받는다. 눈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들의 기도를 먹으며 꾸역꾸역 수면 위로 올라온다. 폐 끼치고 싶지 않은데,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고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때도 있다. 나도 밀려오고 밀려가며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을 단련한다.
가장 어려운 장르가 나에게는 시와 미술이다. 뭔가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뭔 소린지 모르겠다. 무시한 채로 살기엔 이들이 너무 맞는 말과 너무 따뜻한 말을 하고 있기도 하단 게 참 문제적이다. 좀 알아듣고 싶어서 해독에 성공한 이들의 글을 자주 읽는다.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걱정하고 위로를 건네며 앞으로 어떻게 다정할지 고찰하는 따뜻한 흐름이 좋다. 다만 조금 더 쉽게 말해주기를 기대하며, 깊은 것들을 알아보는 안목이 나이에 걸맞게 생기기를 연습한다. 그렇게 깊은 뜻이! 그렇게 다정한 시선이! 하는 깨달음만 한 질 높은 카타르시스를 많이 찾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