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갛고 뽀얀 얼굴을 사랑이다 말할 것이다

by 성화

몇 년 전 하객룩을 갖춰 입고 단정히 화장을 한 뒤 총총 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어떤 할머니가 찐하게 쳐다보시기에 의식이 되었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었으나 분위기상 그건 아니다. 그의 눈빛은 어여쁜 것을 지켜보는 눈빛. 음, 오늘 괜찮군. 차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가던 길을 마저 갔었다.


교회 청년부에 갓 20살이 된 친구들이 청소년부에서 올라왔는데, 그중 친구의 동생이 눈에 띈다. 친구와 친구 동생은 얼굴형도 키도 차림새도 비슷한데 몇몇 특징만 다르다. 싱그럽다. 학생 때 화장품 따위를 뒤적이고 있으면 안 해도 예뻐! 안 한 것이 더 예뻐!하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이 꼭 되돌아오곤 했다. 아, 나는 그 말을 듣는 때를 지나 하게 되는 때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 너무 물끄럼했던 것이 아이의 신경을 건드린 듯해 할머니 같은 시선을 거둔다. 아이, 예뻐서 본 거양…


들꽃처럼 말갛고 생긋한 것들에 시선을 뺏긴 뒤에는 그 애들에게 내 지난날을 꼭 겹쳐보게 된다. 나는 20대에 취업준비로, 코로나로 너무 많은 시간을 방 안에서만 보냈다. 마스크 속에서 숨이 차오르는 답답한 나날들이었다. 잘못된 선택, 부족한 용기, 일을 망치는 허영심이 어찌나 많았는지 돌이켜보면 후회할 것투성이다. 그렇게 오만해선 안 되었어, 미움은 소용이 없었어, 더 열심히 해야 했어, 더 기다렸어야 했어… 답을 아는 지금 복기해본다 해도 기회는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재확인하는 순간이 너무 아리다.


20대의 시간은 어쩐지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라 불타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이럴 수가, 그 고점을 지난 지금도 출근해야 할 월화수목금요일과 사람들 앞에 앉아 우정을 나누어야 할 날이 산더미보다 더 남았다. 쒯이다. 나는 그 정도의 에너지를 예상하여 비축해 두진 않았는데. 원동력의 배터리가 깜빡깜빡하다가 괜히 편한 이들에게 짜증이 새어나갈 때가 있다. 입시니 취업이니 안달복달하다 나름의 성취를 한 뒤 권태가 주는 안정이 너무나도 어색하다. 나보다 어린 아이돌 가수가 나왔던 때가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오늘은 몇몇 내 또래 연예인들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너희는 잘살고 있어?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됐어.


조금만 더 솔직하자면, 일하는 나날이 조금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온도가 아주 느리게 올라가는 물속의 개구리. 어깨 위에 느리고 지치는 일상이 한겹씩 쌓여간다. 차갑고 지루하며 끝도 없는 수영장 레인에 갇혀버린 건지도 몰라! 내가 꿈꿨던 게 이거였나, 내가 바라고 준비했던 게 이런 거였나.


주말마다 헉헉대며 물 위로 올라와 잠깐 서서 생각한다. 아… 주름은 한 번 생기면 되돌이킬 수 없는 거라는데 눈가에 몇 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창때의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 예전과 같은데, 이제 그들과 나이 차가 나기 시작한다. 한평생 가장 귀여운 시기를 지나는 여동생들을 볼 때면 회한이나 조급함이랄게 불쑥 솟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애들을 미워할 순 없다. 그 시기의 나에게 가장 후회되는 것이 그 어여쁜 시간을 미움으로 날려 먹어서라서 그렇다. 예쁜 것이 너무 좋아서, 예쁘다는 이유로 싫어하고 싶지 않다…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 말할 용기가 아직 남았다.


그래, 어리고 뽀얀 것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유리장 안에 남겨둔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오월처럼 매년 차오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랑이다 말하려 한다. 옷장 가장 깊은 곳에 보관해 둔 나의 하객용 치마를 언제까지나 아이고 예쁘구나, 꼭 껴안아 줄 그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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