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오랜만에 글을 지어 보냅니다. 누군가의 살과 일상에 글이 가서 닿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옵니다. 작년부터 나를 아프게 하고 나을 것을 소망하게 했던 질병은 저를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괴롭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쓰는 것은 당신과 나 사이의 소통이, 지난하지만 고통스러운 치료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불가항력적인 우울감이 있었습니다. 생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몰아내는 방법은 감정의 처절함에 비해 간단했습니다. 사장님이 몸이 아파 문을 닫는다는 서점에 가서 중고 책 두권을 구입하고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따듯한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타이탄의 도구들⟫과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건져 왔는데, 둘 다 사장님의 밑줄과 사색이 가득합니다. 지저분한데 괜찮냐는 물음에 친구들끼리 책을 돌려보는 느낌이죠, 라고 웃어 보였습니다. 조금은 바쁘게 움직이며 사람들을 지나치는 것, 그들에게 친절함을 조금씩 조금씩 베푸는 것.
혼자 있게 되면 외로움이 몰아치고,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려 하면 불안감이 구토처럼 올라옵니다. 이것은 나의 죄일까 병일까, 나는 불행한 게 맞을까 헷갈리며 멍해집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에도 오늘은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낮에 친절을 베풀었다는 근거가 있으니까요.
4개월 정도 한 짐에서 PT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사업이 망해 재판을 받으러 다닌다더군요. 약을 챙겨 먹느라 호르몬이 요동치는 회원, 관리를 해도 몸이 관리되지 않는 저, 그래서 마음 놓고 먹으며 운동만 겨우겨우 나오는 나를 선생님은 많이 응원해 주셨습니다. 이 아저씨가 저에게 지금의 모습도 예쁘다, 너의 몸을 보고 부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격려하시는데 전혀 변태처럼 들리지 않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진심이셨나 봅니다. 저는 반 정도는 진심으로, 반 정도는 수업 중간중간의 침묵을 무마하려 선생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떨어지기 직전인 눈물을 삼키며 사이클을 타는 날도 있었습니다. 몸을 단련하면 마음도 나아질 거야, 되뇌면서 울음을 참았습니다. 일상 중에 드는 위험한 마음 헬스장에 와서 몸을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진정했습니다.
임시 대피소 같은 그곳을 모종의 이유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를 이곳에 해명하다 약간 민망해서 지웠습니다… 아직 저에게 글 쓰는 솔직함은 부족한가 봐요.) 재등록 없이 관두겠다는 말을 카톡으로 겨우 전달한 저에게 선생님은 장문으로 감사를 전해주셨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힘든 시기에 응원하는 사이란 정말 절박하게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아픈 시기가 몰래 알려주는 겸손하고 간절한 기쁨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낮에 베푼 잠깐의 친절처럼 독자를 격려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사랑에 대해 많이 많이 쓰고 싶습니다. 아프다고 울기만 하는 글은 당신에게 위로가 되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존재적으로 읽히고 싶어 마구잡이로 내면을 털어놓던 글은 그만두려 합니다. 서로를 안음이 있는 글이란 어떤 걸까요? 간직하고 싶은 편지를 지어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의 여력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아픈 분들을 환영해 보겠습니다. 글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꼭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어 보겠습니다… 저를 많이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