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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Dec 29. 2019

나의 야동

 내가 야동, 다른 말로 하면 포르노라는 것을 처음 어렴풋이 알게 된 시기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같은 반 친구가 야한 영화이야기를 봤다고 묘사를 해주었다. 워낙 어려서, 나는 그 친구가 거짓말로 지어낸 이야기인줄 알았다. 2학년이 되었는데, 친하게 놀던 친구 4명이 근신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왜 근신을 받았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학교에는 여러가지 징계가 있는데, 경미하게 나쁜 일을 저지르는 친구들이 받는 징계가 근신이었다. 근신 1주일을 받았는데, 학교에 등교는 하지만, 수업에는 안 들어오고, 대신 그 시간에 교무실에 가서 반성문을 쓰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수준의 징계였다. 


 학교 끝나면 난 집에 오고, 보통 다른 친구집에 놀러가지 않았다. 그 친구 4명과도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나의 이런 성향 때문에 학교에서만 같이 놀았고, 방과 후에 누구 집에 모여서 놀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나에게도 왜 근신을 받았는지 감추고 있어서 좀 서운했다. 나중에 근신 기간이 끝나고 알게 된 것은 그 친구들이 포르노를 봤다는 것이다. 그때 난 포르노라는 단어 조차도 몰랐다. “그게 뭐냐고?” “도대체 그게 뭐길래 그걸 봤다고 근신이냐?” 물어도, 친구들은 나를 보호하려고 한 건지, 너는 몰라도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한참 후에 포르노가 야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당시는 주 5일 수업이 아니라서 토요일에는 4교시 수업을 했다. 반 친구가 갑자기, “야 학교 끝나고 우리집에서 놀자”라면서 나를 포함해서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갔다. 자기네 부모님이 어디 가셔서 집이 하루 종일 빈다고 했다. 부모님께서 집을 비우면 친구들끼리 놀러가서 재미있게 보내는 경우가 있어서, 그냥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친구 중에 한 명이 가방에서 비디오를 꺼내서 같이 보자고 했다. 외국 영화였는데, 말이 안 나온다. 갑자기 여자, 남자가 옷을 벗고 성행위를 하는 것이었다. 진짜 충격이었다. 내가 18살 때까지 성행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성행위 하는지도 몰랐다. 정말 우리나라 성교육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그 영화속에 남녀가 나는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저거 진짜 아니겠지, 가짜로 만든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진짜 같았다. 한 시간 정도를 같이 봤는데, 정신이 아찔해지고, 정말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은 것 마냥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내내 영화의 그 장면이 떠나지를 않고,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았다. 그렇게 나의 첫 포르노 시청이 지나갔다. 3학년이 되었는데, 또 친구들이 자기집 빈다고 같이 와서 영화보자고 했다. 당연히 포르노인줄 알고 갔다. 점심을 안 먹어서 짜장면을 시켰고, 짜장면을 먹으면서 다 같이 보는거였다. 내가 아직도 철이 없었는지, 도저히 난 뭘 먹으면서 볼 수가 없어서, 짜장면을 그대로 다 남겼다. 친구들 앞에서 약한 모습 안 보일려고 태연한척 했지만 기분이 별로 안 좋고,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무슨 대단한 범죄라고, 그렇게 많은 죄책감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지금 구글에서 검색만 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포르노이고, 이를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순화시켜서 말하고 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들은 것 같다. 윤재는 그러지 않으면 좋겠는데 어디 그게 내 마음대로 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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