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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05. 2020

사랑에 금이 갈때

 우리 부부는 결혼한지 꽤 오래되었고, 우리 둘의 사이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사람의 반대를 뿌리치고 한 결혼이라서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직장을 다니기 전 까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했으나,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난 이후에 나에 관계된 모든 의사결정은 내 마음과 나의 이성이 시키는 대로 했다. 결혼이 순전히 100% 나의 판단에 의해서 한 의사결정이었고, 가끔 후회될 때도 있지만, 대체로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 중에 가끔 혹은 자주 둘이 싸우기도 한다. 대단히 중요한 일로 싸우는 경우는 없고, 대부분 사소한 이유였다. 내가 자주 씻지 않거나, Suna가 집안일을 하는데 도와주지 않거나, 내가 육아를 잘 도와주지 않거나, 혹은 나도 모르게 Suna에게 마음 상하는 말을 하거나 하는 정도이다. Suna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시거나, 나에게 무관심하거나, 술을 마시고 주정을 심하게 하는 경우에 우리 둘이 싸웠다. 대부분 말싸움이고, 싸우고 나더라도 당일 날 화해했고, 나에게 그러한 싸움 혹은 다툼이 우리 둘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거나 그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내 기준으로는 그러한 싸움들은 우리 사이의 관계악화에 영향을 전혀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한 싸움이 두 번 있었다. 처음에는 미국에 있을 때였다. 친구들 부부를 집에 초대했고, 너무 재미나게 놀았다. Suna가 정말 말도 안되게 다양한 음식을 정말 맛나게 잘 준비해주었고, 초대된 부부의 아이들도 다 모여서 재미나게 놀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고 놀았다. Suna도 그 어느때 보다 즐거워하며 술을 마시고 놀고,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다들 집에 갔다. 파티가 끝난 후에 뒷정리를 해야 했다. Suna가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뒷정리하다가 다칠 것 같아서, 나도 같이 도와주었다. 설거지가 정말 많았는데, Suna가 너무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아서 내일 하자고 내가 부탁들 했는데, 술기운이라서 그런지 Suna는 설거지도 혼자 다 하고, 거실의 카페트까지 전부 청소를 하였다. 내가 Suna를 도와준 이유는 큰 것들만 대충 정리하고 다음날 술이 깨서 맑은 정신으로 같이 청소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계속 그렇게 하자고 부탁했는데, 내 말은 듣지 않고, 기어이 혼자 청소를 다 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상했다. 1시간 넘게 계속 같이 정리하면서 위험한 것들은 내일 술 깨고 하자고, 몇 번을 간청했는데, 완전히 거절당했다. 내 말은 아예 듣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청소하는게 좋으면 이것도 다 해라’ 하면서 쌀포대를 거실에 쏟아 버렸다. Suna도 자기가 청소한 것들이 다시 엉망이 되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쌀을 나에게 던지면서 막 화를 냈다. 말 그대로 서로 완전히 치고 박고 싸웠다.


 그 일이 있고, 서로 아무 말도 안 했고, 그러한 냉랭한 기운이 며칠은 갔다. 어떻게 화해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우리는 다시 화해했다. 그런데, 화해를 해도 나는 Suna와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Suna는 내가 팔을 뻗고 원을 그리면 그 원 안에 있는 가까운 존재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이 싸움후에는 내 자리에서 몇 발자국을 걸어가야 Suna가 느껴질 정도로 내 스스로 Suna가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번 멀게 느껴지니까, 그 이후에도 그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 Suna는 과거 보다 더 멀리 존재하는 사람으로 느껴졌고, 몇 년이 흘러도 그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았다. 


 최근에도 한번 심하게 싸웠다. 부부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Suna로 인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내가 받은 상처만큼 Suna도 상처받으라고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Suna에게 했다. 그 말은 내가 결혼하면서 절대로 Suna에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내 스스로 맹세한 이야기였다. 내가 그런 말을 Suna에게 한다면, 이건 이혼할 때 이외에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상처를 받았지만, 그 상처를 고스란히 Suna에게도 주었다. 정말 기분이 너무 안 좋았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다시 화해를 했다. 나의 Suna에 대한 거리는 이전 보다 더 멀어져서 이제는 몇 초를 뛰어가야 Suna가 느껴질 정도로 나의 마음의 거리에서 멀어졌다. 


 부부싸움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그런 상처가 상대방만을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상대방에게 준 상처가 고스란히 나에게도 남는 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 싸울 때 난 Suna를 때렸고 Suna도 나를 때렸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내가 폭력을 쓴 것이 Suna에게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이었지만, 그 폭력의 상처가 고스란히 내 마음에도 각인되었다. 이번에도 내가 상처받은 만큼 더 큰 상처를 주려고 Suna에게 모진 말을 했지만, 그 말들이 오히려 다시 칼이 되어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데, 나에게 부부싸움은 사랑이라는 하트가 한번 금이 가면 시간이 지나도 그 금간 자국이 남아 있고, 다시 붙지 않는 것이었다. 그 상태에서 다시 마음의 상처로 다가올 정도로 부부싸움을 하면 예전의 상처가 더 벌어지고, 사랑의 하트의 가운데 균열이 더 많이 생긴다. 내가 이상한지 몰라도, 한번 균열이 간 하트는 어떤 접착제로 붙여도 다시 붙지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을 Suna에게 말했고, 하트에 더 이상 균열이 안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부부이지만 기본적으로 서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다. 법적으로 가족이 된거지, 부모와 자식처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그런 남남 관계이기 때문에 한번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이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고. 앞으로 균열이 가는 일은 더 안 했으면 좋겠다. 서로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무엇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받아 줄 수 있는지 서로가 확인하면서 상처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앞으로 수십년을 더 같이 살아 갈텐데, 더 이상은 더 멀어지지 않은 채로 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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