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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05. 2020

처음 한 것들

 20대에 내 마음을 더욱 외롭게 만든 소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이다. 1995년 겨울에 그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 됨과 동시에 한 동안 매우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상실의 시대’는 당시 내가 갖고 있는 고민들을 너무나 잘 묘사했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여러 프랜차이즈가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던킨 도너츠’였다. 


 난 던킨 도너츠가 도너츠가게라고는 알았지만 실제 그곳을 가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직장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던킨 도너츠를 가보았다.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고, 도너츠를 사서 맛을 보았는데, 완전히 신세계였다. 도너츠를 입에 넣었는데, 도너츠가 그냥 사라졌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내가 알던 도너츠와 너무 달랐다. 내가 아는 도너츠는 시장에서 파는 꽈배기 도너츠가 전부였는데, 던킨 도너츠의 하얀 가루와 그 안에 들어 있는 딸기잼은 정말 나의 혀를 사로잡았다. 그 맛을 본 후 퇴근하는 길에는 꼭 도너츠를 사가지고 퇴근했다. 한 동안 던킨 도너츠를 입에 달고 살았다.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이 꽃등심이었다. 이 경험도 직장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 소고기는 생일날 미역국 끓일 때 넣는 것이거나, 무와 함께 끓이는 것, 혹은 소 꼬리를 하얀 국물이 나올 때까지 끓여서 밥과 김치와 같이 먹는 것이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외부 어드바이저들과 같이 회식 비슷한 것을 했다.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시청 뒤에 있는 소고기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현관에서 종업원이 아늑한 방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그 방에 메뉴판이 있는데, 꽃등심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가격표는 어마 어마하게 비쌌다. 지금도 1인분에 5만원이면 비싼데, 그 당시에도 1인분에 5만원이었다. 1인분 해봤자, 얼마 양도 안되었다. 내가 계산할 것은 아니 라서 마음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상이 차려지고, 고기가 올라가자 종업원이 계속 옆에서 구워 주었다. 


 젓가락으로 한입 먹었는데, 말 그대로 고기가 사라졌다. 내가 먹은 게 고기가 아닌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한점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는데, 그대로 입에서 녹았다. 좋은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세상에 무슨 고기가 이렇게 입에서 녹아. 마치 솜사탕을 먹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이러한 소고기를 자주 먹었지만, 처음 맛본 그 때만큼의 강렬한 느낌은 없었다. 


 직장 다니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을 다니지 않았더라면 던킨 도너츠가 무엇인지도 몰랐을 테고, 소고기는 생일날 미역국에 먹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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