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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Jan 05. 2020

아쉬움과 후회

 내 첫 직장은 STX였다. 지금은 망해버린 회사라서 잘 모르는 사람도 있으나 2000년 중반에는 매우 유명한 회사였고,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순위에도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귀국하고 출장 갈 일이 있어서 서울역으로 KTX를 타러 갔다. 지금은 LG U+빌딩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분명히 10년 전에는 STX빌딩이었다. 조선업과 해운업이 주력 사업이라서 빌딩도 배 모양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곳 맨 꼭대기인 23층에서 근무를 했다. 처음 서울역에 갔을 때, 그 빌딩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거기 다가 출장간 곳이 창원이었다. STX의 지방 사업장중에 창원에 있는 계열사가 있어서 거의 한 달에 한번은 창원으로 출장을 갔다. 10여년 전의 일이 떠오르면서 아쉬움과 슬픔이 교차했다. 


 내 이력서를 보면 내가 보기에도 좀 화려한다. 온갖 업무를 다 했고, 정말 그 짧은 시간 동안 이러한 업무를 했는지 내가 보기에도 믿기 어렵다. 거기서 있으면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높은 사람은 ‘골드만 삭스’의 부회장이었다. 홍콩에 출장 갔을 때 그와 같이 차도 한잔 마시고, 그의 명함도 받았다. 그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느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가끔씩 자기전에 과거일을 회상한다. 과연 STX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곳을 2009년 초에 나왔다. 그때가 STX가 제일 잘 나가던 시기였는데, 난 STX가 망할 것을 그 때 알고 있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난 당시 STX가 3년 이내에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STX는 대주주가 2014년에 변경되었으니, 내 생각보다 2년이나 더 버티긴 버텼다. 일개 직원이 그 큰 조직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은 전혀 없었으나,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회사는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당시 STX는 너무나 돈을 잘 벌고 있었으나, 몇 년 후에는 버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내가 정식 보고서를 쓴 건 아니지만, 회사내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룹 전체의 손익과 자금사정에 대해서 추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주력 계열사의 손익과 현금을 추정해 보니 3년 후에는 다들 적자와 현금 부족이었다. 눈 앞에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고, 동료들에게도 이제 회사를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구두로 회사의 사업 축을 둘 다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둘 중 하나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계열사의 절반을 팔아서 현금을 모아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 때 본부장은 나에게 ‘대마불사’라고 했다. 우리 회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고, 난 정치도 조직도 모르고 오직 돈이 없으면 회사가 망한다는 것만 알아서, 내가 분석한 자료에는 돈이 없어서 회사가 망한다고만 나왔다. 


 결과적으로 난 STX를 떠났고, 미국에서 STX가 망하는 것을 뉴스로 접했다. 가끔, 내가 STX를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왜 STX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은 회사가 망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특별히 회사에 애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몰입하고 열정을 갖고 일한 곳이 STX였기 때문에 STX가 망한 것이 가슴 아팠다. 한편으로는 그 조직에 있던 많은 무능한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너는 망할 만해. 그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있으니 당연히 망해 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곳에 있을 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장면은 두 가지 장면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장면 모두 2008년이었다. 하나는 아내와 같이 나란히 출근하는데, 지하철역 앞에서 내가 아내에게 ‘지금 이 가방 팽개치고 회사 때려 치고 싶어. 정말 회사 가기 싫어’라고 하는 장면이다. 다른 장면은 일요일 밤 늦은 시간에 비가 오는 가운데 매우 화가 나서 그 비를 다 맞고 퇴근하는 장면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나와서 밤 늦게까지 일을 했고, 스트레스가 머리 꼭대기까지 찬 상태에서 너무 화가 나서 우산도 안 쓰고 그 폭우를 맞으며 집으로 온 기억이 있다.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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