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KE SOMEONE IN LOVE
영화는 종종 아키코보다는 그 주변에 관심을 기울인다. 영화의 첫 장면. 우리는 한참 동안 말하는 아키코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오로지 그녀의 상대방만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의 마지막. 소리치고 화가 나 다카시 집의 문을 두드리고, 끝내는 창문으로 돌을 던지는 아키코의 남자 친구 노리아키를 우리는 끝까지 보지 못한 채, 방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아키코와 다카시만을 본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여기서 우리가 제대로 보는 것은 아키코가 아니라, 다카시라는 점이다.) 그리고 영화는 다카시에서 끝난다. 영화의 처음에도 끝에도 아키코는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의 첫 씬은 바에서 아키코가 전화기를 통해 노리아키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전화 통화가 끝나면 히로시가 자리로 와 아키코를 다카시에게 보내려 설득한다. 이 제법 긴 첫 씬 동안 카메라는 대부분 아키코가 아니라 히로시에게, 그리고 아키코의 친구인 옆 테이블의 나기사를 향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있으나, 그녀의 존재는 거기 있으나, 실체는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화면 바깥에 머문다. 혹은 밀려난다. 아키코의 영화가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아키코 주변의 영화.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점이 들기 시작한다. 어찌 되었든 관객이 처음 만나는 주요 등장인물이 아키코이고, 영화의 포스터가 아키코이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이 영화가 아키코의 영화일 것이라고 당연스레 여기고 영화를 보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초반을 비롯하여 영화 여기저기에서 아키코가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을 조금은 이상하게 바라보았다는 것. 그런데, 사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아키코의 영화가 아니라 다카시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아키코가 다카시를 만나는 순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택시 기사가 식당에 들어와 다카시를 찾는 순간부터 다카시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히로시가 아키코를 택시에 태우고, 택시는 밤 길을 달린다. 그리고 아키코가 택시 안에서 잠든 사이 택시는 아키코를 다카시의 세상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하나의 예외라면 영화의 후반부에 다카시가 약국에 간 사이 아파트 계단에 앉은 아키코가 다카시의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잠깐의 시간 정도일 뿐이다. 아키코와 다카시가 다카시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아키코가 처음 온 날 밤. 부엌으로 나와서 자신이 만든 음식을 조금 먹자는 다카시의 말을 계속 거부하며 피곤하다며 침대로 와 자자는 아키코. 우리는 이 둘의 긴 대화 동안 결코 아키코를 직접 보지 못한다. 오로지 다카시 옆 꺼진 텔레비전 화면에 반사된 희미한 아키코만을 볼뿐이다. 아키코를 직접 보는 것은 다카시가 잠이 든 아키코를 위해 침대 옆 전등을 끄기 위해 올 때여서야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아키코 주변의 영화'가 아니라 '다카시 주변의 영화' 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꼽고 싶은 한 장면. 아키코가 다카시의 집에 들어온다. 아키코가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다카시는 눈에 확연하게 부산을 떨고 어색해 보인다. 어쩌면 그의 공간에 여자가 들어온 것은 아주 오래전일지도. 잠시 동안의 대화. 아키코는 화장실로 가고, 다카시는 음악을 튼다. 그의 공간에 울려 퍼지는 노래는 엘라 핏츠제랄드의 더없이 매력적인 목소리의 영화의 원제와 같은 "Like Someone In Love"이다. 다카시가 식탁의 컵에 와인을 채우는 사이 아키코는 화장실에서 나와 그의 방으로 걸어간다. 묶었던 그녀의 머리가 풀어져 등으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다카시. 여기서 순간적으로 다카시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버렸다. (혹시, 또 하나의 장면을 꼽는다면, 그다음으로는 영화 초반 역 앞 동상 아래에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할머니를 택시를 타고 지나가며 몰래 바라보며 울먹이는 아키코의 모습을 꼽고 싶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LIKE SOMEONE IN LOVE) Dir. Abbas Kiarostami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