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lot 시즌

따뜻한 5월을 맞이하기 위한 그들의 전쟁

by 디에디트랩

지금 미국은 Pilot(정식 시리즈로 가기 전 시험적으로 만드는 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시즌이다. 그러니까, 각 방송사가 그들이 받은 파일럿 스크립트 중에서 몇 편을 추려서 실제 제작을 오더 하고, 오더를 받은 프로덕션들은 그 제작에 들어갔거나 들어가고 있다. 대부분 4월 말까지 제작을 마쳐서 방송국에 제출하고, 그들은 모두 당연히 파일럿이 인정받아 정식 시리즈 제작 오더까지 받길 바란다. 아무리 유명한 배우 혹은 작가의 작품이더라도 시리즈 제작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탓에,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들 긴장하고 피를 말리게 되는 계절인 셈이다. 바로 이 파일럿 제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는 프로듀서 한 분을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이 분과의 인연은 약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프로듀서는 한류의 중심이었던 배우의 회사 CEO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분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사업과 맞물려 그분 밑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추진하던 일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당시 회사에선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자 그 분과 좀 더 맞는 일을 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셨고, 나 역시 약 일 년쯤 후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다. 비록 함께 일하진 않았지만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고, 둘 모두 이런저런 길을 거쳐 그분과 난 각각 다른 시점에 미국으로 오게 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GOTHAM> 촬영 현장


이 프로듀서께서 하는 일 중에 한국의 콘텐츠를 미국으로 가져와 리메이크를 하는 일이 있다. 몇 년 전에도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의 판권을 획득하여, 미국에서도 능력 있는 작가를 섭외, 한 방송국에 리메이크 제안을 한 일이 있었다. 이때 그 분과의 원래 있던 인연으로 Sizzle Reel을 만드는 일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국 TV 시리즈의 Showrunner들과 직접 작업할 기회를 얻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비록 이 드라마는 아쉽게 제작 오더를 받지 못하였으나, 이번에 드디어 다른 드라마의 Pilot 제작 오더를 받게 되어 다음 주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하여, 촬영장인 밴쿠버로 떠나시기 전 잠시 만나 점심을 함께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비가 내리고 흐리던 주말과 달리 다시 햇볕이 따뜻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분이 제작하는 파일럿은 의학 드라마인데, 다행스럽게 이번 시즌 해당 방송국에서 픽업한 의학 드라마가 이분 작품뿐이어서 시리즈 오더를 받을 가능성이 조금은 더 있다고 한다. 물론, 누구도 장담을 할 순 없는 일이지만, 작가도 꽤 인기 있던 드라마의 작가이기도 하니 가능성은 제법 있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되었다.


4월 말까지 방송국에 보내야 하는 스케줄. 촬영 기간은 15일, 후반 작업은 3주. 워낙에 타이트한 스케줄인 관계로 에디터는 두 명이 붙어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밴쿠버와 L.A. 를 오가며 보낼 앞으로의 약 두 달. 지금 이 시간 이 프로듀서님처럼 이렇게 똑같이 피를 말리며 파일럿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을 하고 있을 사람들이 지금 바로 이 동네 곳곳에 수두룩 할 것이란 사실이, 어쩌면 오늘 커피를 주문할 때 내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워진다. 다들 그렇게 따뜻한 봄을 맞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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