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리드하라-사주명리와 MBTI

by 사주영웅

명리학은 일종의 거울이다. 거울은 램프와 달리, 보이는 것을 그대로 비춰서 그것이 거울 속의 허상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 어두운 곳을 밝혀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명리학에 쏟아지는 많은 비난들은 사실 다른 많은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학, 교육, 미디어, 도덕과, 가치체계 모두에도 명리가 짊어지고 있는 엄격하고 혹독한 비판적 기준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명리가 사람들의 삶의 체계를 호도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성도덕과 윤리관 역시 그러한 면이 있을 것이고, 명리학이 어떤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이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이라면 역시 이 사회의 교육과 미디어와 가치관의 체계역시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사실상 MBTI의 체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심리학자들이 임의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성격을 유형화하고 범주화 시켜놓은 것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MBTI의 어떤 범주적 특성을 객관화하여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병원에서 수혈을 하거나 수혈을 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혈액형이라는 분류의 체계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병원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속에서 혈액형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슈퍼맨이 아닌 바에야 칼에 베이면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른다. 그것으로 좀비가 아니고,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충분한 것이다.


혈액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인 의의는 오직 의학적 체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세상에는 의학적 체계와 유사한 수없이 많은 질서와 체계들이 존재한다. 많은 경우, 다양한 질서와 체계 속에서 이용하는 기본정보는 동일하다. 이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공존할 때에만 필요하다. 온 우주에 오로지 자신만 존재한다면 그래도 여전히 이름이 필요할까? 그땐 이름보다는 자신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명사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는 그 명칭을 왜 굳이 대명사라고 부르는가? ) 그렇기 때문에 이름은 나와 타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설정된 많은 제도적 질서나 체계속에서 사용된다. 그것은 학교이기도 하고, 직장이기도 하고, 병원이기도 하며 교회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질서와 체계를 가진 집단이지만 동일하게 “이름”이라는 기능을 공유하는 것이다. 시험성적을 보자. 기업이건 학교건 서로 자신의 체계가 다름에도 그들은 점수를 공통적으로 이용한다. “점수”라는 일종의 객관적 실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러한 질서와 체제속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점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떤 체계와 질서는 반드시 그 안에서 통용되는 범용적인 지표가 필요하다. 병원은 환자의 혈액형을 알아야 하고, 학교는 학생의 점수가 필요하며, 직장에서는 이름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표를 어떤 단체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러한 지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장이라는 계급은 군대에서나 통하지 유치원 아이들에게 먹히는 것은 아니다. 목사는 교회에서나 종교적인 수장이 될 수 있지 태국의 사원에 가면 일개 관광객이 되는 것이다.


사주 팔자는 믿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사람이 굳이 자신의 혈액형을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의미가 없다는 말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혈액형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발견된 것이다. 그것은 원래부터 모든 인간의 몸속에 존재해 왔다. 하지만 그것을 읽고 구분하고 분별한 것은 인간의 의학적 지식과 체계가 발달하고 난 뒤부터이다. 사주팔자도 어느정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주팔자의 체계속에 모든 인간을 적용한다면 단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람의 사주를 추명할 수 있다. 일단 그 체계속에 적용되면 사주가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혈액형을 모르는 사람은 있겠지만 혈액형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과 같다. 사주 팔자는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인정된 적이 그리 많지 않은 상징적 질서체계라고 할 수 있다. 덕분에 현재까지를 포함해서 상당기간 사주팔자는 미신 따위의 잡술로 치부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기업가가 직원을 채용할 때 혹은 국가에서 누군가를 공직에 추천할 때 그의 사주를 고려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사주의 격국과 부귀빈천 성격과 파격의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겠는가? 사주는 마치 사람의 혈액형이나 학생들의 토익점수처럼 특정 집단에서 사람을 선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주 팔자에 대한 양측 모두의 공적인 신뢰가 있을 때 비로소 순조롭게 가능할 것이다. 고용주가 믿지 않거나, 혹은 피고용인이 믿지 않을 때 이것은 심각한 불공정과 부정의의 온상이 될 것이다. 다른 많은 지표들, 예를 들어, 성적, 대학, 고향, 성별,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사용하는 데에 사람들의 거부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것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러한 과정의 정당함을 사회적으로 재프로그램해 왔기 때문이며 사실상 그러한 기준들은 사주팔자가 받을 수 있는 비판으로부터 단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세속적인 기준으로 성립된 그러한 질서는 더 편협하고 조작적이며 기만적이다. 절대 사주팔자보다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주 팔자는 그 자체로 미신이라고 혹은 사기성 짙은 혹세무민의 도구라고 치부할 수 없다. 흔한 말처럼 믿으면 과학이고 믿지 않으면 미신인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른 것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과학 자체 역시 우리가 믿을 때에만 비로소 과학이 아닌가?

세상의 많은 일들과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에 혈액형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사주팔자를 알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사주팔자는 미신이 아니고 아주 오래전부터, 정확히는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당신의 삶과 함께해온 운명의 발자취 같은 것이다.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과 몰라도 상관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은 평생 병원갈 일이 없어서 혈액형을 아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병원에서 수혈을 받기 전에 자신의 혈액형을 확인하려고 하는 환자의 절박함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사주팔자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와 상황은 다르겠지만, 일단 그들이 그 질서의 체계속에 들어간다면 그땐 사주팔자 역시 다른 모든 상징적 질서체계, 의학, 과학, 교육, 종교, 철학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주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의 질서와 체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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