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에게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외국어 교육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론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은 정규교육과정에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생활에서의 대화를 연습하고 배운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외국어의 경우 이러한 “생활에 쓰이는 회화”를 배우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법, 공항에서 짐부칠 때 쓰는 말, 우체국에서 사용하는 표현등등...일상적인 생활속에서 어떠어떠한 표현들이 사용되고 또 필요한지를 익히는 것은 수십년동안 한국의 영어교육이 세뇌해온 허구적인 영어교육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아주 기본적인 언어활동을 규칙과 패턴을 익힘으로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아주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가상적인 믿음이다. 과연 실제로 쓰이는 표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누군가의 실제 대화능력을 향상시켜줄까?
오랫동안 대학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쳐왔다. 하지만 영어회화를 가르친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영어회화의 표현을 익히고 단어를 배우는 과정이었지 언어생활로서의 자연스러운 “회화”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교재들이 선택하고 있는 내용들은 간단한 자기소개에서 시작하여, 취미와 가족, 여가생활, 운동, 건강, 음식, 여행 등과 같은 아주 일상적인 소재들로 구성된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신이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하고,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억지로 어떤 영화를 생각해 내고 그 내용을 이야기 해주어야 하는 것이 보통의 수업내용이다. 문제는 실제 영어회화 수업의 주제가 학생 개개인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기호에 맞지 않는 경우, 학생이 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 어떤 난이도가 되었던 간에 학생이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를 매개로 수업이 이루어질 때 훨씬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많은 대학교 영어교재들은 외국어학습에 있어서의 “초보”라는 개념을 “유치”한 것과 혼동하고 있다. 비록 영어로 배우는 표현들은 아주 기초적인 것이어서 쉬운 단어와 쉬운 표현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기초적인 표현을 배우는 사람들이 정신연령조차 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초적인 표현을 아이들의 수준과 동일시하여 많은 교재들이 제시하는 수업중 활동은 마치 유치원에서나 할 것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성인이 된 대학생들은 성인으로서의 자신과 어학공부의 내용으로서의 기초를 동일시하며 자신이 배우는 기초적인 표현이 마치 유치한 것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게 된다. 함께 수업을 진행했던 많은 선생들은 내용의 난이도를 좀 높이면 학생들이 어려워하고 또 그로인해 수업의 능률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수업의 내용이 유치해서 안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성인에게 적합한 수업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이 그나마 학생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보다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일단 그런 식으로 회화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대화의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것처럼 많은 회화교재에서는 여행이나 영화, 책, 스포츠, 건강 등과 같은 어찌 보면 일상적인 주제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름 전문적인 지식과 의견이 필요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경우 만약 학생들이 해당 주제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대화는 적절하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뭔가 해야할 이야기꺼리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할 것 아닌가? 하지만 많은 한국 학생들의 경우, 이런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고, 또 어려워한다. 그것은 단순한 영어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영어 이전에 자신이 보았던 영화를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능력, 자신이 읽었던 책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과 그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과 관계된 일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영어교재에서 늘상 물어보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과연 한국어로라도 대화를 자주 나눈적이 있을까?
“What is your favorite film?“ “Who is your favorite actor“ “What is the most impressive books you‘ve ever read, and why?“ .... 이런 종류의 대화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건데,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영어회화시간에 많은 학생들이 ”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영어때문이 아니라, 바로 영어 이전에 한국어생활에서도 별로 익숙한 활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영어회화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영어회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영어회화는 단순한 말하는 표현을 익히기보다 콘텐츠에 해당하는 내용의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 측면도 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인 교육이 되겠지만, 역시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고려해볼 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대다수의 영어교육은 사실상 영어문화교육으로 전환되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