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에 환장하는 한국의 영어교육-인종차별은멀지않다

by 사주영웅

언제부터인가 원어민이라는 말은 대단히 복잡한 사회문화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정확히는 한국에서 영어권 백인들이 영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게 되면서 부터라고 해야겠다. 앞 문장에는 분명 방점이 있다. “영어”권 “백인”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영어를 영어권 백인 원어민으로부터 배우면 훨씬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막연한 것이지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인 문제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명백하다. 국내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적은것도 아니고, 또 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능력이 없는것도 아닌데,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자리는 점점 “원어민”이라 불리는 새로운 계층에 의해 독점되다 시피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영어관련 과목을 가르쳐온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이러한 원어민 독점현상은 아주 분명하다. 서울시내는 물론 지방의 많은 대학들에서 이제 영어관련과목은 대부분 “영어권” 원어민 출신들에게 할당되고 있다.


새로 강사를 뽑을 때도 원어민을 우선한다는 조항이 눈에 띄지만 최근들어서는 영어관련 과목에는 아예 한국국적의 지원자는 지원할 수 없게 해 놓았다. 그동안 많은 한국인 강사들이 담당하던 영어과목들은 어시스턴트 프로페서라는 직함을 거머쥔 원어민들의 차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강사로만 지내던 수많은 대학의 영어강사들은 하루아침에 대부분의 수업시수를 잃고 대학에서 방출되었고, 그 자리는 소수의 원어민 “교수”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박사를 마치고 논문을 쓰고 나름대로 전공연구도 함께 하면서 영어를 가르쳐야 했던 영어강사들은 끝까지 시간강사로 일을 해야 했지만, 대부분의 원어민 교수들은 안정된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는다. 영어를 전공으로 공부했지만 정작 자신이 공부한 나라에서 그 교육의 퀄리티를 신용하지 않는 웃기는 현상이 벌어진다.


한국사람으로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또 십 수 년간 영어를 가르쳐온 영문학 박사로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원어민 중심의 영어교수 채용경향은 심각하게 인종차별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 원어미과 한국인 영어강사의 비율은 이미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원어민의 숫자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정작 채용된 원어민들의 자격조건을 살펴보면 사실 한국강사들의 경력이나 자격보다 특별히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고용을 주관하는 대학들은 무조건 원어민 우선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영어를 배운다면 그 언어와 문화권 출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상식이 근본이유이긴 하겠지만 교양영어를 배우는데 굳이 외국인 혹은 외국학위자가 반드시 필요할까? 많은 대학들은 이미 교양영어에서 교양을 포기한지 오래고, 오로지 학생들의 취업률에 학교의 존폐가 달려있다는 아주 구차한 형국에 놓인 경우가 허다하다. 취업과 관련한 영어라는 것도 다면적인 언어능력이라기 보다는 사교육 기업과 결탁한 시험중심, 점수 중심, 테스트 위주의 아주 단편적인 영어시험능력에만 집중한다. 결과적으로 협상이나 토론, 비평 같은 활동에서 필요한 심층적인 언어능력으로서의 영어가 아닌 그저 문법과 단어 스펠링이나 뉘앙스의 차이 같은 아주 일차원적인 수준의 영어를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한다. 전치사 in을 써야 한다는 등, on 을 써야 한다는등, a 가 맞고 the 가 틀린다는 것과 같은 사소한 문제들을 놓고 마치 대단한 문제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모습은 매우 기만적이다. 어찌보면 상식적인 판단으로도 분별할 수 있는 일인데, 한 국가의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그만큼의 식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영문과가 있는 대학의 경우, 영어교육과 관련한 강사채용을 영문학을 전공한 교수가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그런 경우는 더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10년 유학. 벙어리 영어. 자신들이 그 언어습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원어민의 고용주가 되어 해소하려고 하는것인지, 많은 영어담당 교수들이 영어강사를 고용하는 행태는 정말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실무를 담당하는 교직원들의 무식한 결정에 의한 것일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무자가 영문과 교수들의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까? 상식적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식한 실무자의 어이없는 정책이라 한들, 영어강사에 대한 대학일반의 정책적인 경향에는 영문학 혹은 영어교육을 전공한 현직 교수들의 입김이 도사리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것은 명백한 신식민주의적인 굴종이다. 내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들에겐 일말의 민족적 자존심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교양영어라는 말의 의미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채, 그저 있는 자리에서 벙어리 영어와 효율적이지 않은 수업일수만 채울 거면서 밖으로는 거창하게 원어민채용을 앞세운다. 그 결과 영어를 전공한 많은 사람들은 영어권에서나 겪었을 법한 인종차별을 한국에서 겪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했다. 자신들이 가르쳐서 박사를 만들어놓고, 그 박사들을 바로 자신들이 져버리고 뽑지 않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대학도 정부도 교육부도 학생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강사들의 자질도 문제가 있다. 스무살. 대학에 대한 꿈과 낭만 그리고 원대한 뜻을 품고 온 학생들에게 준비되지 않은 영어수업은 사실 괴로울 만큼 지루하다. 선생들은 학생들이 영어를 못한다고 몽땅 싸잡아서 이야기 하거나, 개중에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 하는 학생이라도 있으면 뭘 가르쳐야 할지 몰라서 쩔쩔맨다.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저 자신이 더 좋은 자리로 가기 전에 잠시 거쳐야 하는 곳이라는 무책임한 의식은 수업의 질을 무한대의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그러다 임용이 되어 정교수가 되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강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어쩌다 대학의 영어교육은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원어민 교수들은 믿을 수 있을까? 최소한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단지 영어를 모국어로 한다는 의미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내가 만난 원어민 교수들은 대부분 교수법에 기초한 교육을 하고 있었다. 한국인 영어강사의 경우 이러한 교수법에 대한 고민은 거의 제로다. 오히려 학원에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교수법에 관한한 훨씬 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객관적인 현상의 차이를 앞에 두고 원어민강사와 한국인 영어강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편파적인 차별을 그저 부당하다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영문학을 전공한 한국인 박사들의 경우, 단순한 토익이나 영문법, 독해를 가르치기에는 지나치게 스펙이 높은 경우가 많다. 자격조건이 넘치는 강사들은 강사대로 수업이 시시하다고 느낄 것이고, 이것은 곧장 학생들이 받게 되는 수업의 질과 직결된다. 아주 간단하게 도식적으로 말해본다면 학교는 뉴욕에서 공부한 영문학 박사를 강사로 고용해서 문장의 5형식을 가르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사회가 고용과 수요의 법칙을 제멋대로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대학원생을 양산하려고 했던 양심도 없고 대책도 없고 비젼도 없는 대학원 과정의 개설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점점 줄어들고 있는 대학원생의 수를 어떻게든 맞추려고 대학은 지나치게 관대한 수준으로 대학원생을 받아들인다. 빡빡한 대학원 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은 공부하기 힘들어하면서 겨우겨우 졸업한다. 그런 대학원생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교수들은 자기들이 가르친 제자들의 실력을 믿지 못한다. 당연히 유학이라도 다녀온 사람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결국 대학의 교양영어 한 과목을 가르치는데 영문학이나 영어교육 혹은 화용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자격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영어관련 분야의 박사들은 실제 언어교육에서의 교수법의 문제에 대해서 그닥 관심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문학을 혹은 언어학을 전공했지 영어를 전공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쪽 전공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전공 자리가 생길때까지 영어를 호구지책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러한 호구지책이 거의 평생동안 계속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일단의 상황이 이렇다면, 이제 소위 “원어민 영어강사”들의 침공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대부분의 강사들은 대학을 떠날 때까지 시간강사의 지위로 머물게 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지만 원어민 강사로 고용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앞에 붙는 타이틀이야 어찌되었든 “교수”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국내 대학의 마인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부의 대학평가 기준에 몇 명의 원어민들이 외국어를 담당하고 있는지를 채점하는 항목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에서 힘들게 박사과정 까지 마친 영어 관련 강사들은 끝까지 시간강사의 자리에서 맴돌게 하면서 단지 “원어민” 이라는 이유로 선뜻 안정된 “전임” “교수” 의 타이틀을 부여한다는 것은 단지 강사의 스펙을 검증한다는 이유 이상의 문화적 사대주의 혹은 언어적 사대주의, 혹은 영미권에 대한 식민주의적 근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봤자, 결국 생활영어 회화이고, 토익 시험 준비이며 간단한 자기소개 수준의 글쓰기를 가르칠 것인데, 굳이 “원어민”을 선호하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만약 “원어민”들이 가르치는 것이 영미권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이라면 백퍼센트 이해하겠다. 그건 언어를 외국어로 공부한 강사들이 가르치기 어렵다. 심지어 그 부분을 세부적으로 전공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대학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인문학적 맥락에서의 영어가 아니다. 오로지 실용성만 강조하며, 토익 점수와 연계된, 그래서 궁극적으로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영어에만 관심이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는데, 한국의 대학은 당장 4년 후의 미래만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누가 그런 정책을 세우는지 참 한심한 일이다. 당장 국내 사교육 시장의 1타 강사들이 누구인지 보면 알지 않을까? 학생들의 영어실력을 3개월 만에 고개가 아플정도로 올려야 할 정도로 높이 올려준다는 강사들은 대부분 국내파들이다. 그 학원에서 수업듣는 학생들, 아마도 낮에는 원어민이 진행하는 대학수업을 듣고 있을 수도 있다. 상황이 그런데도 원어민 강사들을 고용해서 시험영어 실용영어를 제대로 가르쳐 보겠다는 것은 착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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