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연수가 영어실력을 보장해주던 시대가 있었다. 한 2-3년 높은 비용을 치르고 다녀오는 어학연수. 사회적 경제적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하고, 또 다녀오면 그만큼의 사회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아주 전형적인 과거의 스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땐 다녀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던 만큼 어학연수의 경험은 좀 희소한 가치가 있었고, 또 다녀오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아주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었다.
왜 어학연수인가? 당연히 그 언어권에서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언어능력이 좋아질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책으로 배우는 영어에는 한계가 너무 일찍 온다. 외국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기회도 많지 않고, 또 문화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여건도 매우 제한적이다. 당연히 미국으로 영국으로 뉴질랜드로 호주로 떠나 그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부딪히며 배우는 영어는 괄목할 만한 성과의 차별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최소한 10여 년전의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지금은 한국, 특히 서울에서도 연수를 간 것과 같은 비슷한 여건에서 생활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어학연수의 가장 큰 장점이 영어권의 생활에 있는 것이라면 이젠 충분히 한국에서도 영어권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일단 평범한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연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영어권 미디어를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거 접할 수 있었던 영어권 미디어 채널은 AFKN이나 단파라디오로 듣넌 “미국의 소리” 정도가 다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케이블 티비에는 영어뿐 아니라 아랍어 방송까지 온갖 수많은 미디어가 넘쳐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BBC 방송의 헤드라인을 듣고, 점심 먹으면서 NPR 뉴스를 듣고 저녁에는 영국 드라마 다운튼애비를 보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아이튠즈로 존 레전드의 노래를 가사를 보면서 감상하고, 테드에 접속해서 유발 하라리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세사미 스트릿트”의 노래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유튜브의 동화를 들려주면서 아이를 재울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뉴욕 타임즈, 가디언, 뉴요커 등의 잡지들은 언제든지 카드만 긁어주면 집에서 학교에서 지하철에서 어디서든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외국인과의 대화도 더 이상 연수를 가야만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어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모임이 있다. 언어교환이나 혹은 상호 언어를 가르쳐주고 배우고 싶어하는 많은 모임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굳이 이런 모임이라는 작위적인 방식을 통하지 않고서도 당장 이태원이나 광화문에 가면 길거리를 오가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말을 거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연수를 다녀온 많은 학생들의 경험담에는 이런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지나친 사교성이 발현했다는 공통적인 이야기가 존재한다.
서로 문화가 다른 탓에 약간의 사교성만 발휘해도 옆자리에서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들과 말을 섞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보스톤 어느 맥주집에서 맥주를 가볍게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의 미국인이 한국말을 쓰면서 말을 걸어오면 반갑지 않겠는가? 물론 상대를 잘 가려가면서 말을 걸어야 하는건, 외국인이건 한국사람이건 똑같이 신중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몇 년전 한국에 거주중인 외국인들의 수가 200만명에 육박한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아마도 지금은 훨씬 더 많아 졌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리얼리티 티비에도 심심치 않게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만큼 외국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들의 일상속에 깊이 파고 들었다. 유독 사람들의 인식의 차원은 아직도 한국이 폐쇄적인 국가에서나 있었을 법한 전통과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미 한국은 청바지의 진에 물들었고, 맥도널드 패티의 입맛에 길들여졌다. 콜라 없이는 삼겹살을 먹는게 힘들고, 운동한 후엔 게토레이를 마셔야 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에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비용보다 영어권의 프로그램을 사서 방송하는 것을 선호한다. 당연히 영어권 방송이니 자막을 통해 내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방송되는 많은 내용들은 사실상 영어권의 일상적인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점점 더 많은 영어권 방송들이 나가고 있다. 일단 티비를 중심으로 한 일상적인 미디어가 영어로 이루어지면 사실상 생활의 상당부분이 영어권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대표적인 SNS 는 영어로 사용할 때 진정한 네트워크의 면목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해 보면, 한국은 이제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영어권의 생활권을 스스로 조성할 수 있는 문화적 여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굳이 서울에서 연수를 간것과 비슷한 여건을 조성해서 생활 할 수 있다면 굳이 높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연수를 가야 할까? 가족을 떠나 친구도 남겨두고 애인도 버리고 연수를 떠나야 할까? 아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연수를 떠난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어를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굳게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정작, 영어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영어적인 환경에 접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이다. 스스로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권의 문화에 동화되고, 영어권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서 이질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장벽은 사실상 그동안 간과되어온 영어학습의 가장 큰 장애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친구가 “인터넷” 이라고 말할땐 괜찮은데, “이너넷” 이렇게 말하면 은근히 재수없는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그 느낌이 자신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우려와 걱정이 본인의 영어실력 향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마음의 벽이 먼저 허물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조건과 좋은 상대를 통해 영어를 배워도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사실 한국 영어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은 여기에 있다. 영어라는 언어가 가지는 심리적인 이질감 그 근원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절대 언어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문제이고, 전통의 문제이고, 역사의 문제이며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간과한 모든 영어교육은 말 그대로 앵무새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