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엔 의외로 혼자 밥먹기 싫어하는/어려워하는/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자기 계발서는 제목이 “혼자 점심 먹지 마라”였다. 항상 주변 사람들과 관계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부단히 자기를 계발할 수 있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정작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왜 같이 밥을 먹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7-8명의 일행이 한 식당에 들어간다. 굳이 떨어져 있는 식탁을 우당탕 끌어 당겨서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8명이 주루룩 앉는다. 그리고 대부분은 바로 옆의 사람하고만 이야기를 하고 정작 함께 앉아야 하는 이유가 될만한 공통적인 이야기는 없다. 함께 먹자고 주도한 누군가도 말없이 혼자 밥을 먹는다.
일행중에 수다스러운 똘끼형 푼수가 끼어있지 않으면 밥먹는 동안 말소리 보다 쩝쩝소리 그리고 숟가락 딸그락 거리는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별 의미없이 밥을 “같이” 먹고 나오면 또 커피도 “같이” 마시러 가잔다. 참 이해할 수 없다. 함께 하지만 왜 함께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자리들. 공교롭게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빈말 중의 하나가, “언제 밥한번 먹자”다. “언제 밥한번 같이 먹는”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오랜 만에 만나서 반가웠으면 “지금” 먹으러 가야지. 하지만 도시의 대부분 사람들에겐 “지금” 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혹은 한달 전부터 스케쥴을 확인하고 일정을 예약해야 한다니. 물론 나도 부정할 수 없는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늘 “지금”을 저당잡히고 살아가는 인생에 “내일”은 혹은 “언젠가의 미래”는 과연 괜찮을까?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사람들은 사람들을 떠날 수 없다. 떠날 수 없기도 하지만, 또 떠나려고 하지도 않는다. 잠시라도 떠나있으면 알 수 없는 뒤처짐의 느낌이 항상 자신을 군중들 속으로 떠밀기 때문이다. 점심때가 되면 늘누군가와라도 함께 밥을 먹으려 한다. 분명 이메일을 보려고 인터넷을 열었는데 정신차려보면 네이버와 다음의 포탈속을 헤매고 있다. 몇 번이나 같은 링크를 클릭하는지 어떤 때는 집게 손가락 끝에 독자적인 브레인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말초신경 중심으로 발달한 브레인이겠지. 정말 도시의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말장난이다.
사실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혼자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리스만이 고독한 군중이라는 말을 처음 썼던 것이 1950년이다. 이미 도시인들은 충분히 오래전부터 고독했다. 안타깝지만 함께 있어도 결국 혼자인 것이 도시인이다. 셰리 터클은 Together Alone이라는 책에서 많은 현대인들이 결국 혼자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증거는 찾기 쉽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대화 중간에 카톡메세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는가? 이메일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낼 때도 스마트폰을 떠나지 못한다. 삼성의 갤럭시 7 광고를 보았는가? 아이랑 목욕할때까지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라고? 광고 수준하고는. 가장 분명한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 누구와 지속적으로 함께 있는 것보다 스마트폰과 더 오래 함께 있다. 그렇지 않은 대상이 있다면 아직 부모님이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은 언더틴에이져 정도? 말장난 같지만 현대인은 고독하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역설적이지만 혼자 밥먹고, 혼자 술마시는 시간은 고독하지 않을 수 있다. 혼자 밥먹는 그 얼마 안되는 시간동안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과는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함께 있는 대부분의 그 시간동 현대인은 그 누구와도 진정 함께 하기 어렵다. 심지어 자신과도 함께 있지 못한다. 자신과 함께 있지 못한다는 말은 쉽게 말해 영혼없이 산다는 말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아주 종종 좀비에 비유된다. 최소한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보게 된다. 홍채인식이 앞으로 대세일거라는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홍채를 한번 들여다보자. 무슨 색인지, 어떤 무늬인지. 그리고 새까만 동공 그 깊은 곳을 들여다 본적 있는가. 내가 본 가장 깊은 암흑은 내 눈동자 속에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이런 깊은 암흑을 눈에 묻고 사는구나 생각했다. 그 깊이를 알게 되면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혼자 밥먹는 그대, 혼자 술마시는 그대,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다. 하지만 오래도록 자주 혼자서만 마시면 진짜 고독해질 수 있으니까, 전화해라.
그래서, 혼자 밥먹고 술도 먹는데, 까짓거 영어공부도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학원에 가지 않고 선생도 없이 혼자서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오만가지 방법이 “지금은” 많다. 80년대에만 하더라도 외국인은 우리에게 낯선 존재였다. 서울 한복판이라 하더라도 금발, 파란눈의 전형적인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10-20년 사이 세계는 급속도록 가까워졌고, 외국인들과의 교류는 전례없이 많아졌다. 여기에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 그리고 각종 SNS에 힘입은 바가 크다. 뿐만 아니다. 이전에는 영어로 된 매체를 경험하는게 쉽지 않았다. 전문적인 종사자가 아니라면 큰 비용을 들여야만 영자신문을 보고, 영문잡지를 구독하고, 또 해외 방송을 시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것처럼,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영어권 매체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영어권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언어로도 접근이 가능해졌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이에 호응하는것처럼 영어권의 많은 방송, 인터넷, 어플리케이션들은 이렇게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비영어권 학습자들을 대상으로 매일매일 새로운 프로그램, 웹사이트, 어플리케이션은 물론 인터넷 방송인 팟캐스트를 만들어낸다.
외국인을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하는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고, 영어방송을 듣거나, 영어로 된 신문을 읽는것도 클릭만 하면 해결되는 환경에 있다면, 사실상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영어권 문화에서 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닌 셈이다. 실제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선택만 한다면,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언어적인 환경을 마치 영어권으로 연수를 떠났을 때 겪을 수 있는것과 대동소이한 환경으로 만들 수 있다. 어학 연수의 가장 큰 효과가 영어학습이 아니라 영어권의 일상적인 문화적 체험과 일상적 영어노출에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굳이 연수를 떠날 필요가 없다. 서울에서 연수를 온것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데, 힘들여 돈과 비용을 써가면서 떠날 이유가 있겠는가?
연수의 환경이 학습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말해야 하고, 영어를 들어야 하고, 영어방송을 봐야만 하는 강제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일상속에서 영어에 노출되어야 자연스럽게 영어가 습득되고, 영어실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한 비율로 나타나는 어학연수 실패의 사례를 본다면, 그러한 강제성 역시도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서 무마되는 경우가 많다. 이국의 땅에서 집과 모국의 음식을 그리워 하며 함께 연수를 떠나온 친구와 어울린다거나, 현재 교민을 사귀면서 여전히 한국어와 한국음식 한국문화에 젖어 생활한다면, 애써 돈과 시간을 들여 떠난 연수에서 여전히 한국에서와 같은 생활을 하게될 가능성이 많다. 반대로, 연수를 떠나지 않았어도, 이젠 서울에서 연수와 비슷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서 연수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먼저 인터넷 시작 페이지를 바꿔라.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은 인터넷 시작페이지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장 무심한 선택, 즉 네이버나 다음을 시작페이지로 설정해서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시작페이지의 설정 자체에 대해서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네이버나 다음은 한국을 대표하는 포털 사이트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서 제공하는 수많은 신변잡기같은 정보들은 때로 공해 이상의 폐해를 가져온다. 흔히 “낚인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많은 기사들은 과장되고, 왜곡되고 부풀려져서 접속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그렇게 원래 웹사이트를 찾았던 목적과는 무관하게 몇 번 클릭을 하다보면 30분 혹은 1시간이 금방 지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연수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굳이 네이버를 시작페이지로 설정해서 사용한다. 당연히 고국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절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당신이 만약 시작페이지를 BBC CNN Guardian TED PBS 와 같은 사이트로 바꾸어 놓는다면 최소한 인터넷을 실행할때마다 영어권의 뉴스와 헤드라인을 보게 될 것이고, 거기서 조금더 나아간다면 그나마 뉴스 하나, 테드 렉쳐 하나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영어권의 매체를 접하는 경험이 일상속으로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늘 접하게 되는 영어권의 뉴스들은 어느순간 이질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정보러쉬에서 조금씩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최신의 뉴스채널이 되는 것이다.
둘째, 팟캐스트를 활용하라. 아이폰은 기본 메뉴에 팟캐스트가 있어서 아주 쉽게 팟캐스트를 검색해 볼 수 있다. 한국 팟캐스트도 아주 다양하고 많지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는 팟캐스트는 대개 유료인 경우가 많고, 또 그러한 팟캐스트의 진행은 한국어가 병행된다. 하지만 영어권의 팟캐스트는 내용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또 기본적으로 그 방송을 듣다보면 어느순간 자신이 영어권 국가에 와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영어를 기초부터 설명해주는 교육용 팟캐스트도 많지만, 자신이 관심있는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으로 구성된 팟캐스트를 찾아서 꾸준히 들어보는 것은 정말 최상의 방법이다. 역사, 문화, 심리, 언어, 스포츠, 영화, 예술은 물론 수없이 다양한 팟캐스트를 통해서 자신만의 방송환경을 부여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엄격하게 지켜간다면 외국에서와 같은 환경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이태원을 찾아라. 지금도 이태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썩 좋지 않다. 특히 이태원에 자주 가지 않거나 혹은 가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렇다. 과거 뉴스에서 이태원과 연관된 범죄가 보도된 기억이 집단적으로 증폭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알 수 없는 국적의 외국인들이 매우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들과의 접촉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한국사람들에겐 약간의 외국인공포증과 같은 증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순수하게 문화적인 관점에서만 살펴본다면, 이태원은 정말 다양한 이국적인 문화들이 혼재해 있다. 술집과 음식점으로 대표되는 문화이긴 하지만, 거리에서 들리는 말소리, 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모습은 어느 순간 자신이 뉴욕이나 보스톤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과장되긴 했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간접적으로나마 외국의 환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영어마을에서 어설프게 조성한 인위적인 영어환경과는 다르다. 실제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을 실생활속에서 만나고 대화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이태원 말고도 외국인을 조우할 수 있는 장소는 많다. 그리고 그 외국인들은 반드시 영어권 외국인들만도 아니다. 은연중에 한국은 외국=영어권, 외국인=영어권백인 과 같은 아주 혐오스러운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어를 접하고 배우는 궁극적인 이유는 글로벌한 것에 있지 영어권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당신이 영어권과 비영어권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경험에 오픈되어 있다면 궁극적으로 당신의 영어실력은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영어 자체가 바로 그러한 다양한 문화의 혼종적인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자신의 책에서 2000년을 전후로 뉴욕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의 가짓수가 400여가지에 이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영어권의 심장과 같은 도시에서 그렇게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그 언어적 문화적 다양성은 고스란히 영어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문화적 창출의 힘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한국인인 당신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지식또한 궁극적으로 당신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더없이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국어를 잘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식상한 상식과는 다른 의미이다.
영어의 범주를 떠나서 살펴보면 인천엔 차이나 타운도 있고, 안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리도 있다. 거제에는 북유럽 출신의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마을도 있고, 남해에는 이미 유명한 독일인 마을도 있다(물론, 거기서 독일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미 한국에도 당신이 의미심장하게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이국의 문화들이 배양되어 번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경험들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영어를 아주 훌륭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어능력과 콘텐츠에 대한 관계를 생각해 볼 때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다섯째, 케이블 채널을 활용한다.
불과 십수년전만 하더라도 티비가 이렇게 까지 진화하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흑백에서 컬러로 온것만 해도 대단한 변화였는데, 이제 티비는 단순한 티비가 아니다. 예전처럼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전해지는 획일적인 통로도 아니고, 사람들은 티비에서 뉴스를 보고 엔터테인먼트만 즐길뿐 아니라, 인터넷 검색은 물론 심지어 물건도 사고 있다. 채널의 수는 예전에는 기껏해야 5-6개 였다면, 이제는 수백개가 넘는다.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말은 채널을 고정하기 힘든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와도 맞아 떨어진다. 한군데 지긋이 오랫동안 보면서 내용을 즐기는 시절은 이미 오랜 과거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