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는 영어실력보다 뭘 전할지를 고민하라

by 사주영웅


영어회화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학생들이 소규모로 그룹을 지어서 프리 토킹이라는 것을 할 때가 있다. 그럴때면 다른 원어민 교사들도 그러하듯이 나도 서너개의 회화 주제를 학생들에게 주고 함께 이야기 해 보라고 한다. 단순한 취미를 물어보는 질문에서부터, 학생들이 교복을 입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 혹은 불법 다운로드는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 있겠는가와 같은 이슈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를 놓고 함께 대화를 할 때, 과연 중요한 것이 무얼까? 자신이 말하는 문장의 문법이 맞는지가 중요한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의견의 내용이 중요한가?


한국의 영어교육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없다. 물론, 이러한 내용에 해당하는 것은 영어 이외의 다른 교과목이나 다른 방식으로 얻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문학이나 영화에 대해 회화 혹은 토론을 한다고 하면, 일단 그 학생은 문학이나 영화의 콘텐츠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그런 교육이 과연 선행되는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중고등 교과과정, 혹은 심지어 대학교과과정에서도 그러한 기본적인 상식과 교양에 대한 진지한 교육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자신이 듣는 교과목의 내용보다 그 결과인 학점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학교에서건 집에서건 뉴스를 보건 라디오를 듣건 온통 경제와 취업에 관한 이야기들 뿐이다. 하다못해 대학평가에도 취업률이 상당부분 반영된다고 하니, 학교건 학생이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한다.


당연히 영어 역시 취업에 도움이 되는 영어에만 집중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발달 혹은 지구촌 시대 다양한 문화와 사고방식을 경험할 수 있는 언어, 전세계 지식의 80-90퍼센트가 통용되는 언어와 같은 다소 인문적인 접근방식으로는 학생들의 흥미를 얻을 수 없다. 오로지 토익점수, 말하기 점수, IELTS 나 TOEFL 과 같은 점수로 환산되는 영어실력에만 올인할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내용적인 측면에서 교양과 상식은 언어를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 자체가 언어교육은 아닌 것이다. 영어에 대해서도 우리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높은 수준의 영어를 추구하면서 정작 그 도구로 전달하는 컨텐츠는 매우 초보적이고 낙후된 수준의 주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식한 사람들이 많았다. 누군가가 무식하다면, 그것은 참으로 경멸과 조롱이 섞인 대단히 듣기 불쾌한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은 쉽지 않다. 전반적으로 다 무식하기 때문이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책은 읽지 않고, 읽는 책이 있어도 함께 진지하게 토론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지식은 인스턴트 커피포장지에 쓰여진 성분표 같은 것에 불과하고 사람들은 궁금한 것을 스스로 궁리하기 보다 네이버나 구글에 물어보거나 위키피디아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손안에 백과사전을 들고 있으니, 무엇을 물어보든 손쉬운 대답은 가능할 것이지만, 여전히 그 지식에는 믿음이 쉽게 가지 않는다.


영어를 거울로 놓고 보니 컨텐츠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학생들이 영어를 정말로 수준있게 잘 구사할 수 있으려면 그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잘 정리하고 삶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 영어로 무엇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는지 보다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컨텐츠 없는 영어, 영혼없는 영어회화는 결국 영어사교육 기업의 배만 부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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