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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0. 2023

크리티컬 피리어드와 한국의 영어교육

     언어습득에 있어서 크리티컬 피리어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제 일반적인 상식이 되었다. 크리티컬 피리어드(Critical Period)라는 말은 신경언어학자였던 펜필드와 로버츠(1959), 그리고 레네버그(1967)의 연구에 의해 제시된 후 아주 광범위하게 널리 퍼져나갔다. 크리티컬 피리어드라는 말은 인간이 언어를 배울 때, 언어를 모국어로 습득하는 일정한 시기가 있다는 이론이다. 보통 7-9세 정도의 기간에 모국어가 형성된다는 것인데, 이 시기를 지나서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결국 끝내 모국어까지의 성취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른이 되어서 언어를 배우는 것은 아이였을 때 배우는 것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이론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특히 조기언어교육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영어유치원이 이렇게 성업중인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도 바로 이 크리티컬 피리어드와 관계가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이 크리티컬 피리어드에 해당될 때 영어를 해야만 장차 영어를 잘 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아영어교육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할 수 밖에 없는 이론이다. 더 어릴 때부터 배울수록 원어민과 같은 발음을 할 수 있게 되고, 영어식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쉽게 말해 영어에 대한 경쟁력이 탁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크리티컬 피리어드와 반대되는 사례들이 없는것도 아니다. 로르드 오르테가는 이집트 인과 결혼하면서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3년 남짓한 현지생활이후 원어민과 똑같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 영국인 여성 쥴리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쥴리의 경우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일반적으로 성인이 된 후 학습하게되는 외국어는 절대 모국어와 같은 유창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쥴리의 경우 이전에 아랍어를 배운적이 없었는데도,  2년 반정도의 현지 생활후에 언어적으로는 완벽한 이집트인으로 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이 말소리를 듣고 아랍인과 비아랍인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한국에서도 크게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공부하지 않았지만 원어민 못지 않은 영어실력을 구사한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쥴리의 경우처럼 실제 학문적으로 검증해 본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원어민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드문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어를 과연 정말 어려서부터 배우는 것이 효과적인가? 그래, 효과적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직할까, 라고 묻는다면 회의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모국어의 확립이 선행되지 않은 외국어 교육은 사실 기둥없이 집을 세우려는 것과 같고, 집은 없는데 가구를 들여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비교적으로 말한다면, 영어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것처럼, 한국어의 문법을 강조하거나, 영작문처럼 한국어 글쓰기에 열심히거나, 영어회화의 능숙함을 갈망하는 것처럼 한국어로 좋은 대화의 기술을 익히려고 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들다. 하지만 누구나 경험한적이 있을 것이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상황이 아닌, 한국어 중심의 생활에서도 누군가는 정말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쓴다. 대화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나 화술이 훌륭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런 바탕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외국어를 배운다면 분명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지금 한국의 많은 부모들은 사실상 아이에게 영어를 모국어로 심어주고 싶어한다. 


말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부모들이 아이에게 강권하는 대부분의 학습목표는 모국어와자와 같은 언어능력을 성취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한국어만 잘 한다는 사실이 그의 교육과 상식의 수준을 높여주지 않는 것처럼, 단순한 영어교육이 훌륭한 영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많은 학부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영어의 수준은 절대 영어만으로 얻어질 수 없다. 한국어도 마찬가지이고, 세상 어느 언어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높은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능력은 사실 기본적인 것만 갖추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그의 교양과 상식의 수준, 그리고 비유할 수 있는 창의적인 능력, 위트와 유머, 그리고 적절한 말소리와 제스쳐,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과 분명한 음성이라고 할 수있다. 


     한곳에 투자하지 말라는 조언은 주식시장에서만 유효한게 아니다. 영어에만 매달리는 부모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영어는 기본정도 하면 된다. 아이의 의식수준을 높이고 교양과 상식을 가르치고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사실상 높은 수준의 언어생활을 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높은 수준의 영어는 영어실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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