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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14. 2023

내 그럴줄은 몰랐네, 유주얼 서스펙트럼 스펙타클

알고리즘영단어:suspect, spectrum, spectacle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유주얼 서스펙트Usual Suspects>는 범죄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범죄혐의자를 말한다. suspect는 sus-와 본다는 뜻의 spect로 구성된 말이다. sus는 sub와 비슷하게 아래를 의미한다. 잠수함submarine, 지하철subway에서처럼 sub-는 주로 아래를 의미한다. 

하지만 suspect는 원래 위를 올려보다, 삐딱하게 쳐다보다는 뜻도 있다. 누군가를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것은 신뢰의 눈빛이라고 하기 어렵다. 아마도 의구와 의심의 눈초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sus-는 아래라는 의미로 많이 활용되지만, 원래 의미는 아래에서 위로 향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래서 suspect는 흘끗 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쭈욱-본다는 뉘앙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형사들의 날카로운 눈썰미처럼 뭔가를 차근차근 꼼꼼히 보는 의미라고 할까. 


아래라는 뜻의 접두어sus는 뒤에 따라오는 스펠링에 따라서, sub- su- sus- 등 다양한 형태로 실현된다. 과목, 주제를 의미하는 단어 subject 에도 sub-가 사용된다. ject는 던진다는 의미를 어원으로 한다. subject는 사람, 주체, 신하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신하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 자신을 누군가의 아래에 위치시킨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누군가의 발아래 자신을 던진다는 의미로 읽으면 신하라는 의미의 꽤 드라마틱한 어원이 된다. 그래서 종종 복종적이거나 순종적submissive인 것을 의미할 때에도 subject는 사용된다.  


souvenir는 기념품, 기억할 만한 물건을 의미한다. sou-는 sub-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역시 아래에서부터 ~까지의 의미가 있다. venir-는 어떤 장소에 오다, 가다의 의미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행사의 장소를 말할 때place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베뉴venue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place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장소를 말하지만, venue는 행사를 위해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좀 더 역동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애초에 “장소”라고 말해도 될 것이지만. 


venue는 souvenir의 -venir와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말이다. 온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국가나 기업의 수입을 의미하는 revenue에도 venue가 사용된다. 개인적인 차원의 수입을 income이라고 하는데, 결국 돈이 온다는 기본적인 의미를 함께 공유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환영한다는 뜻의 welcome은 will 과 come으로 구성된 말이다. will은 사람의 뜻과 의지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즐거움과 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come은 cuma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는데, 원래는 손님guest을 의미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cuma가 cuman이 되고 다시  come으로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손님cuma과 온다come는 뜻의 동사가 어원상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것이 흥미롭다. 웰컴은welcome말 그대로 보면, 오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손님이라는 말은 늘 방문하는 행위, 오는 것과 관련해서 연상되는 말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는 것을 손님guest로 생각한 것은 문명사회가 갖고 있는 보편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흔히 어디까지 라는 말로 운동의 변화량을 표현할 때, 기본적인 운동의 방향성은 위 아니면 앞이 된다. 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래에서 시작해야 한다. up은 그래서 ~까지를 의미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up이 hype로 변형되면서 아래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Hypo가 아래를 의미하는 접두어로 사용되는 사례는 다양하다. 저체온증은 hypothermia다. 열, 온도를 의미하는 thermia 아래hypo에 있다는 뜻이다. 사람의 뇌에서 시상하부라는 부분이 있다. hypothalamus라고 하는데, 침대를 의미하는 thalamos와 아래를 의미하는 hypo의 결합이다. 시상하부는 신경계와 내분비계를 연결하는 기능을 비롯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증명된 사실이 아닌, 가정, 추측, 가설을 의미할 때에는 hypothesi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hypo는 아래, 바닥, 전제를 의미하고, thesis는 흔히 명제라는 의미로 쓰인다. 일종의 바탕이 되는 명제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suspect에서 spect는 본다는 뜻이다. 고맙게도 spect는 다른 단어와 결합할때도 spect그대로의 형태를 유지할 때가 대부분이다. 존경한다는 뜻의 respect는 re-라고 하는 접두어를 다시라는 의미로 해도, 혹은 뒤라는 의미로 해도 존경한다는 의미를 구성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평소 존경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한번 다시re 한번 보려고spect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를 존경한다면, 어느 정도 뒤에서re- 거리를 두고 보지 않겠는가? 양쪽의 경우 모두 그럴듯한 설명이 된다. 


무지개의 빛깔이나, 크리스탈을 투과하는 빛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의 빛깔은 스펙트럼spectrum이라고 한다. 육안으로 빛의 파장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펙트럼은 유령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령을 의미하는 specter라는 단어가 따로 사용되면서 스펙트럼이 갖고 있는 유령의 의미는 도태되었다. 뭔가 특별한 것, 눈에 띈다는 의미에서 special에도 역시 spect는 포함되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사하는 것은 대부분 안쪽을 들여다 봐야 한다. 그래서 look into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숙어의 의미가 그대로 실현된 단어가 inspect다. 안in –을 본다spect는 말이다. 내부를 조사해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관점에서 살펴본다고 할 때, 그 한 측면은 말 그대로 한a-면을 보는것spect 이어서, aspect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갖고 있는 기대감 혹은 기대한다는 뜻의 동사는 expect이다. 안으로부터 바깥까지ex-철저하게 보고spect 난 후에 기대해야 실망하지 않는다. 본다는 뜻을 가장 과장되게 실현한 말은 아마도 스펙터클spectable이 될 것이다. 스펙터클은 볼거리, 광경, 구경거리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는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종종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랑스의 상황주의자였던 기 드 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The Society of Spectacle>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펙터클이 어떻게 신화화 되고 자본주의 사회를 작동하게 하는지를 명민하게 분석한 바 있다. 


문명사회는 기본적으로 시각중심이다. 사람의 신체기관인 눈은 종종 밖으로 드러난 뇌라고 표현되는데, 이것은 눈이, 보이는 것이, 시각적인 것이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을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때로는 종교처럼, 때로는 자본처럼 작동하는 메카니즘을 아주 극적이며 역동적인 서사로 분석했다. 

“현대적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에서, 삶 전체는 스펙타클들의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삶에 속했던 모든 것은 표상으로 물러난다” - 기 드보르



삶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경험하던 것들은 점점 돈을 내고 경험해야 하는 것들로 되어 간다. 아이들은 줄넘기를 학원에서 배우고, 사람들은 걷기 위해 트레드 밀이 있는 체육관에 간다. 심지어 결혼상대도 메뉴에서 음식을 고르듯 선택되는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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