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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Feb 01. 2024

오컬트의 비의와 칼립소의 묵시록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과 기하학적인 도형들. 주문과 기도, 그리고 수없이 많은 촛불. 인간 너머의 존재 혹은 인간적 능력 이상과 소통하는 비의적인 의식과 종교는 흔히 오컬트the occult 혹은 오컬티즘occultism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 핵심은 신비주의와 영성 혹은 종교적 제식과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컬트에 대한 정의는 보통 이성과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의미하고, 오컬티즘은 그러한 현상 배후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힘을 추구하고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오컬트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이외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우리가 의식하고 살아가는 실재의 세계, 그리고 꿈과 같은 비현실의 가상세계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화예술의 소재로 이용되었다. 두 개의 세계는 때로 어떤 특별한 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연금술의 의식, 부적이나, 특별한 도형, 무늬와 주문, 그리고 강신술이나 빙의 와 같은 방식으로 연결된다. 


서양의 오컬트에 대응하는 한국어는 기복신앙 혹은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해야할까. 약간 무식한 단순화이긴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컬트적인 사고방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서 과거의 오컬트적 유산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는다. 


과학은 단지 새로운 오컬트일 뿐이다. 


오컬트Occult라는 말은 ~위라는 뜻의 ob- 와 ~을 덮다, 감춘다는 뜻의 celare-가 결합된 말이다. 발음으로 k-소리가 나기 때문에, kel-의 소리가 핵심이다. c-의 소리는 종종 k-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발음상kel-은 스펠링으로 cel-로 나타난다. 뭔가를 감추고 숨기는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지하실이나 천정이 아닐까? 지하실이나 작은 독방을 셀cell 이라고 하고, 천정은 시일링ceiling이라고 한다. 모두 cel-로 같은 어원을 공유하는 말이다. 


아주 직접적으로 은폐하다, 감추다는 뜻으로 conceal이 사용되기도 한다. 함께con 감춘다ceal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이것으로 덮혀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색이다. 컬러color라는 말의 col-은 역시 덮다는 뜻의 kel-의 어원을 갖고 있다. 유색인종을 colored라고 할 때 색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컬러color라는 단어는 덮혀있다는 뜻으로 애초에 피부, 찰색과 같은 의미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은 「요한계시록」, 혹은 「요한묵시록」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The Revelation이라고 한다. reveal은 누설하다, 발설한다는 뜻이 있다. 맥락상 뭔가 감춰져 있거나 숨겨져 있는 사실을 드러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 뜻은 고스란히 apocalypse가 담고 있다. apo-는 분리, 제거를 의미하는 접두사다. 그리고 calypse는 숨긴다는 뜻의 kel-의 변형된 형태다. 결국, apocalypse는 숨겨진 것을 벗겨내다, 분리한다는 뜻이고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계시한다는 뜻으로 연결된다. 

국어사전의 정확한 의미로, 계시는 사람이 알수 없는 지혜를 신이 깨우쳐 알려준다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다. 묵시록은 숨겨 알려준 내용을 적은 글이라는 의미로 풀이되어 있다. 계시라는 말에 사용된 계啓는 열다는 의미가 있다. 


신약성경의 마지막 장의 이름으로 사용되면서 일종의 종교적 종말의 상징성이 확장되어 어떤 상태나 상황이 극한의 끝으로 치닫는 상황을 말할 때 묵시록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1979년 영화 〈Apocalypse Now〉는 한국에서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었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제목이지만 의미는 좀 생뚱맞다. 원제목엔 지옥이 없는데, 개봉하면서 지옥을 첨가했다. 지옥같은 전쟁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려했겠지만, 대신 원래 영어제목이 갖고 있는 종교적인 성찰의 여지는 사라지게 만들었다.


영화는 영미문학의 고전으로 인정되는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19세기 폴란드 출신의 영국작가 조셉 콘라드가 쓴 『어둠의 속』이라는 작품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19세기 콩고를 배경으로 식민지를 강탈하는 서구문명의 모습이 냉소적으로 비판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베트남 전쟁으로 배경이 바뀌었다. 서양이 침략하는 장소가 아프리카에서 베트남으로 바뀐 것이다. 


영화는 윌라드 대위(마틴 쉰)가 커츠대령(말론 브란도)을 찾아가는 길고 위험한 여정속에서 전쟁의 속이 어떤것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매트릭스〉와 〈존윅〉으로 널리 알려진 로렌스 피시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수도 있다.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칼립소Calypso의 이름도 오컬트occult와 관계가 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7년동안이나 자신의 섬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던 님프nymph의 이름이다. 칼립소의 이름에 있는 cal-은 kel-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어원의 의미처럼 숨겨져 있고, 드러나지 않은 섬에 은둔하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세상과 동떨어진 섬에서 오직 오디세우스와 함께 살고 싶어했다. 자신과 결혼하면 오디세우스에게 불멸immortality을 줄수 있다고도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mania로 끝나는 여러 단어중에 kleptomania라는 말이 있다. 절도광, 도벽 정도의 의미로 해석한다. -mania로 끝난 단어는 그 앞에 있는 것을 병적으로 좋아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서는 klepto-가 된다. kel-은 숨긴다는 의미였으니, 숨기는 것을 좋아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절도나 도둑질을 자주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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