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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an 28. 2024

한낮의 검은 태양

현대사회에서 우울증은 일상적인 것이 되어간다. 우울증이란 말은 예전엔 이렇게까지 흔하지 않았다. 현대문명의 과도한 도시화가 만들어내는 질병이기 때문일까. 우울증은 멜랑콜리melancholy라고 하는데, 멜랑콜리라는 단어는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병리적 증상으로 우울증은 디프레션depression이 더 적합하다. 


멜랑콜리의 기원은 거의 서구 문명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거엔 사람의 특성을 나타내는 멜랑콜리는 정신적 특성을 표시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플라톤이 광기는 천재나 영웅의 징표라고 말한 이후로, 광기는 천재성에 자주 따라다니는 꼬리표처럼 되어 버렸다. 


“광기”가 자신을 묘사하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을 억울하게 생각할 정상적인 천재들도 많겠지만,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이 극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기록된 많은 천재들은 광기와 연관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서였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재와 광기의 깊은 관련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했는데, 이 언급은 이후 멜랑콜리 연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전적인 문구가 되었다. 


“철학, 정치학, 시학등에서 명성을 떨쳤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멜랑콜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오래전부터 멜랑콜리는 “영웅들의 질병”으로 여겨졌다. 병으로서의 기원을 가지고 있는 만큼, 멜랑콜리는 그 문화적 기원과 병리학적 기원이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 서구 역사에서 두각을 드러낸 많은 사람들은 멜랑콜리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스시대의 철학자들, 엠페도클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헤라클레이토스, 데모크리토스는 물론, 버튼보다 늦게 태어나서 언급하지 못했던 혹은 여하한 이유로 열거하지 못했던 버튼 이후의 세대에 속하는 밀턴과 젊은 나이에 요절했던 바이런, 셸리, 키츠와 같은 낭만주의 시인들을 비롯하여 19세기의 구스타브 플로베르, 나타니엘 호손, 허먼 멜빌뿐만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쟝 폴 샤르트르, 윌리엄 포크너, 사무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와 철학자, 예술가들은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멜랑콜리의 진원지를 가지고 있었다. 서구의 문화사 전반이 멜랑콜리라는 키워드로 설명이 가능할 것도 같은 이유다. 


우울의 색깔이 어두운 검은색인 것은 이미 단어 자체에 검정색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멜란Melan-이라는 말은 검다는 의미를, -콜리choly는 인간의 몸속에 있는 담즙, 액체등을 의미한다. 멜라닌melanin이라는 말은 검다는 의미로 여러 단어에서 사용된다. 동양 사람들의 눈동자나 머리카락이 검은 것은 멜라닌melanin 색소 때문이다. 서태평양에 있는 한 섬의 이름이기도 한 멜라네시아Melanesia섬는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여성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멜라니Melanie도 관계가 있다. 


멜라니 사프카의 옛날 노래가 생각난다. The Saddest Thing. 


https://www.youtube.com/watch?v=UEiJnhB7ZMY

이름이 멜라니여서 였을까. 어떻게 이름과 노래가 이렇게 잘 공명할수 있을까.


사람의 신체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melatonin은 햇빛에 노출되어야 생성되고 밤에 분비가 된다. 저녁부터 10시 사이에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멜라토닌은 생체활동의 주기와 깊은 관계가 있다. 멜라토닌은 졸음을 유발하고 수면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잠과 관계가 깊다보니, 신체의 활동력을 떨어뜨리고, 심리적으로도 약간 위축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시간대별로 사람의 감정의 기복이 달라지는 것은 이러한 생리적인 호르몬의 생성과 분비와 관계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멜라토닌이 감소한다고 하니, 늙으면 잠이 적어진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멜라토닌의 기능은 고스란히 멜랑콜리적 증상과 직결된다.


인간의 몸속에 있는 담즙등에 의해서 병이 생긴다고 믿었던 시대, 콜레라cholera라는 이름이 생겼다. 콜레라는 말 그대로, 담즙, 액체를 의미한다.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여겨지는 물질이 곧장 병의 이름이 되었다. 담즙의 색깔은 초록에서 노란색으로 변한다. 색깔이 변하면서 살짝 빛나기도 한다. 영어이름의 클로에Chloe는 초록의 어린 나뭇가지를 의미한다. 


클로에chloe의 앞단어 소리는, gl-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빛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빛나는 것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들과도 어원적으로는 관계를 맺는다. 유리glass나 반짝이다는 뜻의 glitter, 빛은 보는것과 관계가 있어서 얼핏보다는 뜻의 glimpse에 이르기까지 gl-은 많은 단어에 포진해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반가워하는 glad는 물론, 노랗게 빛나는 황금gold가지 관계가 있다. 


멜랑콜리melancholy는 말은 서양의 중세시대 인간에게 존재한다는 4가지 체액중 하나였다. melancholy는 검은체액이다. 이것이 인간의 몸속 어딘가에 흐르고 있다고 옛날 사람들은 믿었다. 현대에 이르러서 그러한 생물학적 주장은 사라졌지만, 그 체액으로 인해 생겨났다고 믿었던 정신적, 심리적 증상들은 그대로 전해졌다.


동서를 막론하고 우주론의 근본에는 4라는 숫자가 있었다. 숫자 4의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경험은 아마도 계절에 해당될 것이다. 물론, 한국을 비롯 중국과 일본에는 24절기가 존재하지만, 4계절은 훨씬 더 보편적인 구분이다. 4가지 계절 각각의 특성은 물론, 그것이 4가지 형태로 변화한다는 일종의 인식론적 프레임은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달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연인지, 정말 어떤 자연과학적인 원리가 있는 것인지, 인간의 혈액형도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DNA는 네 가지 A, G, C, T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한의학에서도 사람의 체질을 4가지로 구분한다. 명리학에서 살피는 사주팔자도 년, 월, 일, 시 라는 4개의 변수로 구성되어 사람들이 타고난 운명을 추리하는 근간을 이룬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4라는 숫자를 매우 신성하게 여겼으며, 그것을 영원한 자연의 원천이자 뿌리라고 믿었다. 


수비학적으로 4는 완벽한 숫자로서 숭배되었고, 이것은 우주의 근본적인 원소에 대한 철학으로 옮겨갔다. 우주를 구성하는 본질적 원소에 대한 생각은 만물의 네 가지 뿌리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었고, 이것은 다시 태양, 지구, 하늘과 바다의 실체로 나타난다. 우주를 포괄하는 거시적인 범주는 인간을 포괄하는 미시적인 범주로도 축소되었고, 이러한 4요소에 대한 미시적인 관점은 인간의 기질을 설명하는데 그대로 차용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원소에 대한 고대 서양의 이론을 4체액설 (Four Humouralism)이라고 부른다.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그리고 아랍의 학자들은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거의 18세기까지 이어졌다. 


서양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인도와 중국의 고대의학체계역시 이러한 4체액설이 한창 번성하던 때에 이론의 비유체계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인도의 경우 기원전 1-2세기에 존재했던 아유르베다(Ayurveda, 장수에 관한 지식)철학은 독자적인 5원소이론(흙, 물, 불, 공기, 그리고 에테르)과 3체액설(바람, 즙(bile), 담(phlegm)이 있었다. 


고대 중국의 의학역시 그리스와 아라비아에서 중요시했던 것과 같은 몸 속 요소들 간의 “균형”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라비아 학자들에 의해 그리스와 중국의 문화가 상호 문화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던 것의 결과라고 추정된다. 

서양의 4체액설은 “기”의 균형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동양의학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것에 따르면 인간의 기질은 몸속에 흐르는 4가지 체액, 즉, 피, 황담즙, 흑담즙 그리고 플렘이 어떤 비중으로 구성되었느냐에 따라 4가지 범주로 구분된다. 이것은 기독교적 우주론과도 관계가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기독교적 우주론은 4체액 중 황담즙이 많으면 사자, 멜랑콜리가 많으면 황소나 나귀, 플렘이 많으면 돼지가 된다고 주장했었다. 


플렘은 가래와 같은 점액질의 체액이다. 고대 사람들이 특별한 관찰도구나 과학의 도움 없이 생각해 냈던 이러한 4가지 요소들은 현대의학에서 호르몬, 효모, 신경전달물질, 분자와 같은 수 백 여 가지 종류의 더욱 세분화된 요소들로 분화되었다. 


최근에는 고대신화의 상징적 의미 특히 신화속 인물들인 아폴로(Apollo), 디오니소스 (Dionysus), 에피메테우스 (Epimetheus) 그리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상징적 의미를 이용하여 사람의 유형을 파악하는 심리테스트 방식이 유행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태양과 이성의 신 아폴로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술의 신 바쿠스의 그리스식 이름인 디오니소스는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다. 에피메테우스는 인식론이라는 단어 에피스테몰로지(Epistemology)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처럼 어떤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신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경험하기 이전에 뭔가를 미리 이해하고 알 수 있다는 선지자, 예언자로서의 의미가 있다. 프로(Pro-)라는 말은 “앞” 이라는 라는 뜻의 접두사로 쓰인다. 앞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선지적이고, 예언자적이며, 선험적으로 무엇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는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문명과 지혜와 지식을 관장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검은 태양』은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철학가인 쥴리아 크리스테바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서 우울과 우울증이 차지하는 현상을 분석하기도 했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검은태양"은 프랑스 시인 네르발의 싯구절에서 따왔다. 한낮이라는 시간이 종종 우울증과 직결되는 현상을 염두에 둔 제목일 것이다. 앤드류 솔로몬은 이를 바탕으로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가장 환한 시간이 가장 어두운 심리와 연결되는 것은 흰색blan-과 검은색black의 어원이 같은 뿌리에서 기원하는것과도 비슷하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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