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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May 24. 2024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에 오타typo있어요


스테레오 라디오stereo radio에는 스피커가 두 개 있었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서라운드 시스템. 한쪽 귀에 꽂고 듣던 누런 빛깔 리시버의 소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입체감의 소리. 우리는 그걸 스테레오stereo라고 불렀다. 스테레오가 아닌 것은 모노mono라고 불렀는데, 모노는 하나라는 뜻 아닌가? 그래서 모노는 단면적이고 일차원적인 소리, 스테레오는 양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라서 둘이라는 뜻인줄 알았다. 실제 스피커거 양쪽에 붙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더더욱 그 말이 맞는줄 알았다. 


반전은 항상 이렇게 찾아온다. 철썩같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럴것이라고 믿었던 아주 단순한 사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때. 


스테레오stereo는 어원상 고체solid를 말한다. 딱딱한 고체의 물건, 액체나 기체와 달리 고형의 물건은 입체감이 있다. 그래서 스테레오는 입체적인 이라는 뜻도 포함한다. 아마도 입체적인 음향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스테레오라는 말이 사용된 것 같다. 마치 소리가 딱딱한 고체의 물건이 서 있는 것처럼 다차원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스테레오stereo의 앞부분에 있는 ster-는 딱딲한 고체의 물건이라는 뜻이다. 뻣뻣하다는 뜻의 영어단어 stiff에서도 볼수 있다. 더 극적인 장면은 콜레스테롤cholesterol에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콜레스테롤은 흔히 볼수 있는 사람 체내에 쌓이는 성분이다. 


콜레스테롤이라는 이름은 옛날 인간의 몸을 구성한다고 여겨지던 4체액 중, 콜chole과 고체를 의미하는 스테로스stereos, 그리고 알콜을 의미하는 -ol로 구성된 말이다. 문과생으로서 화학적인 분석은 할 수 없지만, 왠지 몸속의 어떤 성분이 좀 딱딱해진다는 의미가 추론된다. 실제 콜레스테롤은 점점 딱딱하게 쌓여 혈관을 좁게 만들어 건강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극도의 허기, 굶주림, 굶어죽는다는 뜻의 영어단어 starve도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별 관계 없는 것 같지만, starve는 어원적으로 점점 뻣뻣해진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사람이 죽고 난후 신체가 경직되는 상태를 지칭하는데 사용된 것 같다. 굶주려 죽게 되는 것에서 딱딱함으로, 그것이 다시 입체적인 의미로 분화한 것이다. 


딱딱하다는 의미를 굳건하다, 튼튼하다는 의미로까지 확장하면 관계되는 단어는 훨씬 더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서있다는 뜻의 영어단어 stand에서부터 조각상을 의미하는 statue, 안정된 상태를 의미하는 stable등 st-로 시작되면서 안정된, 굳건한 의미와 연관된 단어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특히,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처럼 stan으로 끝나는 나라들의 이름에도 보이는데, 이것은 바위와 돌이 많은 지역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위와 돌은 얼마나 딱딱한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말은 한국말처럼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형태나 방식, 모양이 전형적이라는 뜻이다. 고정관념, 상투적인 관념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특별한 변화가 없어서 단조롭고 획일적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딱딱할수록 변형은 어렵다. 게다가 type이라는 단어를 유형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서 고체처럼 형태가 변하기 어려운 유형이라는 의미로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type은 생각보다 어려운 말이다. 흔히 키보드를 두드릴때의 타이핑한다는 뜻이 생각나지만, 또 자신의 이상형을 말할 때처럼 유형이나 형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활자와 유형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뿐만 아니라, 그것보다 우선하는 의미로 때리거나 친다는 뜻이 있다. type의 어원은 치다, 때리다는 뜻의 typtein에서 왔기 때문이다. 타자기typewriter를 생각하면 그 의미가 확실해 진다. 타자기打字機는 한자어 뜻 그대로 글자를 치는 기계라는 뜻 아닌가? 그래서 영어로도 쳐서 쓰는 것typewriter이라는 의미가 된 셈이다. 


고체를 의미하는 stereo와 친다는 의미를 가진 type가 만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 되었다. 이것은 한번 금속활자판으로 때려서 인쇄를 하면 그 모양을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고정된 모양이라는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타이핑typing에 때린다는 의미가 부여된 것은 과거 인쇄술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인쇄활자는 금속판을 이용해서 찍어냈는데, 금속이나 돌등에 새겨진 모양이나 글자등은 모두 typos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것을 종이나 표면에 마치 때리듯이 충격을 주어 글자의 모양이 찍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석에 새겨진 비문이나 문자를 종이에 찍어내는 것을 탁본拓本이라고 하는데, 과거에는 타본打本이라는 명칭도 사용되었다. 타자기와 비슷하게 때리거나 두드려서 글자를 찍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새겨진 모양은 나름대로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후, type은 상징이나 이미지, 형태, 모양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한다. 종교분야에서도 typology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흔히 예표론으로 번역된다. 어떤 징조를 미리 형태나 상징으로 나타낸다는 의미다.  


비록 1714년에 영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실용화 된다. 재미있는 것은 타자기가 본격적으로 실용화될수 있도록 제작한 회사가 공교롭게도 레밍턴 총기제작회사라는 것이다. 덕분에 활자를 치는 행위가 마치 총을 쏘는 것으로 비유되기 쉬워졌다.  


활자를 다루는 인쇄공들로부터 유래한 영어단어 중에, 대문자capital letters와 소문자small letters를 의미하는 영어단어upper case와 lower case도 재미있는 기원을 갖고 있다. 당시 인쇄공들은 각각의 활자를 담아두는 통을 곁에 두고 사용했는데, 대문자로 각인된 활자를 넣어두는 통case을 손이 닿는 위쪽upper에 두고, 소문자로 각인된 활자를 넣어두는 통은 손이 닿는 아래쪽lower에 두고 사용했다. 


Upper case에는 큰 대문자, 작은 대문자, 악센트문자, 모양이나 음계같은 기호가 들어 있었고, Lower case에는 필기체나 구두점 단어사이띄우는 빈칸 등을 표기할수 있는 활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대문자를 의미하는 uppercase와 소문자를 의미하는 lowercase라는 말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면 uppercase와 lowercase에는 글자와 관련한 단어가 하나도 없다.  


흔히 활자상의 오류는 타이포typo라고 하는데, 이말은 typographical error를 줄인 말이다. 역시 활자를 넣는 식자공들에 의해서 줄여진 말이라고 한다. 


인간이 글을 쓰는 행위를 생각해보면 때리는 것과 문자를 새긴다는 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과거에는 정말로 뾰족하고 납작한 것을 때려서 점토판이나 돌에 모양을 새겼다. 덕분에 당시의 문자들은 직선으로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곡선의 문자가 등장하는 것은 그릴수 있는 도구가 등장하고 난 이후일 것이다. 펜이 발명되고 수백년간 인간은 종이위에 손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글을 써왔다. 

그러다가 타자기 발명 이후, 어쩌면 인간은 다시 옛날처럼 힘으로 문자를 때려서 글을 써야하는 경험을 다시 해야 했을 것이다. 니체를 비롯해서 많은 작가들은 타자기로 쓸때와 펜으로 쓸때 생각과 글의 흐름이 달라진다는 것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나마 타자기는 한글자 한글자에 정성을 들여서 써야만 했다. 잘못쓰면 전체를 다시 바꿔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다가 지금은 컴퓨터 키보드위에서 대부분 글을 쓴다. 잘못쓰는 것은 다반사. 하지만 문제되지 않는다. 방금 친 문자는 바로 삭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쓰는 문장에 투영된 생각도 금방 사라진다. 

흔적도 없이. 


커서가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추적하기도 어렵다. 문장을 지우는 것은 생각을 지우는 것과 같다. 지워진 생각은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는다. 그래서, 워드 문서에는 가로줄 기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옛날 종이위에 틀린 부분을 줄로 쫙쫙 그어서 삭제 표시를 할 때처럼, 최소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알아 볼 수 있게 말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쓰는가는 정말 작가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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