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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있는 영어단어 이야기

by 현현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에는 색이 있다.


외모, 외양, 외피.

바깥으로 드러난 모든 것들은 색깔이 있다. 사물의 겉을 덮고있는 가장 최전방은 바로 색깔color이다. 그래서 색깔color이라는 말의 어원이 덮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cover와 연관이 있는것은 꽤 즐거운 착상이다. 덮고 감추는 뜻은 본래의 색을 감추고 가리는 행위와 연관이 있다. 하지만, 덮는다고 색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다른 색으로 대체되는 것 뿐이다.


요한묵시록은 영어로 The Book of Revelation이라고 하는데, Book of the Apocalypse라도도 한다. 묵시록적이다apocalyptic이라는 말은 세기말적, 종말론적인 꽤 음울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말이다. 역시 덥다는 뜻의 color와 어원상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apocalypse의 cal-부분이 color의 col-과 소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묵시록을 의미하는 apocalypse는 감춰지고, 덮혀있던-calypse를 제거apo- 한다는 뜻이다. apo-는 어디로부터 멀어지는away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감춰진 어떤 비밀이 드러나는 것이 원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색은 눈으로 직접 지각되지만 항상 정확한것은 아니다. 색은 사실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로 유명한 괴테는 자신의 유명한 색채론에서 이미 색을 인식하는 것은 과학적 현상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눈은 외부의 정보를 잘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가장 많은 지각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마야maya는 눈으로 보는 환상을 의미한다. ”보이는 것은 절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It is not what it seems.“


옛날의 화가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색이 있었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거의 즉석에서 만들어 색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동이 간편한 튜브형 물감이 상품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노란색은 고흐의 노란색과 다르고 다빈치의 다른색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같은 색의 이름이긴 했지만, 화가들은 서로 지향하고 만들고 채색했던 색깔은 사실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말과 의미는 어떤 의미에서 이런 색깔의 속성과 가장 닮아있다. 일단 말과 의미는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정의내리기 어렵다. 의미는 과학적으로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단어를 과학적으로 정의내리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의미는 항상 근사치로 정의되기 때문에 그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작가들은 저마다 사용하는 단어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보바리 부인에서 플로베르가 말하려고 했던 사랑은 안나 카레리나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사랑과 다르다. 푸쉬킨이 오네긴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사랑은 세익스피어가 한여름밤의 꿈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사랑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비록 똑같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사랑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의 스펙트럼은 드라마틱할 정도로 넓게 양극단을 향해 뻗어 있다. 때로 정 반대되는 의미가 하나의 단어에 둥지를 틀고 있기도 한다. 사랑해서 영원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사랑해서 헤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민들레 꽃을 보면서 행복을 느끼지만, 누군가는 그 민들레를 뽑아낼 때 행복을 느낀다.


같은 단어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은 정말 색깔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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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2015년에 온라인 상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누군가 흰색과 금색이라고 소개한 원피스를 다른 사람들은 푸른색과 검은색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는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이미지를 보는 상태에 따라서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어떤 조명하에서 보았는지, 어떤 모니터를 통해서 보았는지, 그리고 그 사진을 본 사람이 아침형인지 저녁형 인간인지에 따라서도 달르게 보았다는 것이다. 일단, 그 원피스는 만든 회사에서 검증해주었는데, 실제 색은 푸른색과 검은색이었다고 한다(폴 심프슨 18).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 논쟁을 벌인 수백만 명의 3분의 2 이상이 되는 사람들은 흰색과 금색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은 과연 색깔은 객관적일 수 있는가 하는데 의심을 갖게 한다.


늦은 시각.

스타벅스에서 두 남녀가 격한 어조로 대화한다.

“그게 사랑이니? “어떻게 그게 사랑이야?”

“너에겐 그게 사랑일지 몰라도, 난 그런 사랑은 필요없어. 헤어져!”


간단히 만들어본 대화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같은 단어를 두고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 뿐 아니라 온갖 단어에 대해서도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사건은 로맨틱하게만 벌어지는 것도 아니다.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지는 법률과 계약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은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언어생활이 카오스로 전락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가전매장에 가면 4K 8K 16K등의 어마어마한 화소를 과시하는 티비가 가득하다. 자연에 존재하는 색의 수는 얼마나 될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색을 지각하는 것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인 경우, 인간은 세가지 유형의 추상체가 있어서 3원색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3원색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 색의 조합은 100만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4원색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4개의 추상체를 갖고 있다고 하며, 이들이 볼 수 있는 색은 1억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라고 한다(폴 심프슨 13). 색깔을 구분하고 다루는 일에 있어서 여성이 탁월한 것은 매우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아마도 여성의 생존능력에 있어서 색을 구분하는 것이 어느정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자연의 세계에서 색은 생존과 직결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색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번성시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자 전술이다. 카멜레온을 생각해보자. 주변 환경에 따라서 카멜레온은 순식간에 피부의 색을 변화시킨다. 바다에서는 문어가 그렇고, 여러 곤충과 식물에 이르기까지 색을 변화시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존속하는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생명을 유지하는것은 에너지와 열이 있다. 색깔을 이용해서 생명을 유지하는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명체에게서 에너지는 열로 표출된다. 정식 어원의 근거는 아니지만, 세비야의 이시도루스는 컬러color라는 말이 calor라는 말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생명유기체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의 양을 칼로리calorie라고 하는데, 칼로리의 어근에 해당하는 calor가 흥미롭게도 color라는 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색깔은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비록 이러한 어원적 관계가 정식으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지만, 에너지의 정도를 직관적으로 표시할때는 색깔로 표시하는 것은 정말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심정적으로는 컬러와 칼로리 사이에 정말 어원적인 관계가 있으면 좋겠다.


어원적인 관계와는 별개로, 에너지가 활동적일수록 빨강으로, 그리고 정적인것으로 갈수록 파랑계통으로 가게 된다. 이것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see red는 흥분한 상태다. 우울하면 feel blue, 그리고 아주 건강한 상태에 있다면 in the pink라고 할 수 있다.


색깔이 포함된 영어표현은 정말 다양하다.


빨강이 들어간 표현을 살펴보자.

“caught red handed”라는 표현은 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에서 붙잡히는 것을 의미한다. 빨간 손은 곧 피가 묻은 손이다. 맥배드가 그렇게 씻어내려고 했던 붉은 피가 생각난다.

“seeing red”라는 말은 아주 화가났다는 뜻이다. 붉은 색은 정열과 분노를 의미한다. 투우사의 깃발도 빨간색이다. 물론, 소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red tape”은 아주 지나치게 관료적이고 형식적이라는 말이다.

“paint the town red”는 밖에 나가서 아주 쾌활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뜻. 놀랍게도 실제 건물들을 빨갛게 페인트칠하면서 진탕 놀던 사람들의 에피소드에서 유래한다.


파랑이 들어간 표현을 살펴보자.

"Feeling blue"는 우울하고, 기분이 차분하다는 뜻이다.

"Out of the blue" 갑자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파란은 아마도 하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푸른하늘에 갑자기 뭔가가 나타나듯, 갑작스럽다는 뜻. 한국에도 청천벽력이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Once in a blue moon"은 아주 오래간만이라는 뜻이다.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을 의미한다. “blue moon”은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인데, 아주 드문 현상이다.


초록은 어떨까?

"Green with envy"는 아주 질투심을 강렬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세익스피어가 오델로에서 질투를 초록눈의 괴물이라고 묘사한 것은 아주 유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의 정원이 더 푸르러 보인다는 영어의 속담에도 Gree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이 뿐만 아니라, "Yellow-bellied"는 겁쟁이를 의미하고, "Mellow yellow"는 차분하고 긴장이 풀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In the black"은 이윤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Black sheep"은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웃사이더를 의미한다. 널리 알려진 암시장도 "Black market"이다. 반대로 "White lie"는 누군가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하얀색은 순수와 진실함을 상징한다. "Raise a white flag" 백기를 드는 것은 항복의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White elephant"하얀 코끼리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에 중국에서는 왕이 어떤 신하를 미워하면 하얀 코끼리를 하사했다고도 한다.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막대하게 들기 때문이다. 하얀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결국 금방 파산하게 된다. "Heart of gold"금의 마음, 곧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Purple prose"보랏빛 산문이라는 표현은 아주 유려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글을 의미한다."Gray area" 경계가 애매한 것은 회색지대라고 한다.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이라서. "Brownie points"는 아첨을 통해서 얻게 된 것을 말한다. 아첨하기 위해 엉덩이에 얼굴을 문질러서 갈색이라는 설도 있다. "Silver lining" 다른 상황에서라면 안좋았을 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의미한다. lining은 옷의 안감을 말한다.


색깔에 대한 표현만 살펴봐도, 색깔에 대해 갖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 직관은 어느정도 비슷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색깔에 대한 직관적 철학적 심리학적 고찰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괴테를 거쳐 비트켄슈타인까지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빛과 색에 대해 사색하고 관찰해 왔다. 그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색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이스토텔레스와 뉴튼과 어린아이는 무지개속에서 서로 다른 색깔을 본다. 뉴턴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무지개의 스펙트럼을 7 개로 확정지으면서 색깔에 대한 자연스러운 상상력의 여지를 봉쇄해버렸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츠가 말했듯이 뉴턴은 ”무지개의 시적 정취를 파괴” 한 것이다(폴 심프슨 8)


무지개에는 몇 개의 색깔이 있고, 하늘에는 몇 개의 파랑이 있을까? 저녁 노을을 물들이는 석양에는 몇 개의 시암선셋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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