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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닛과 오웰과 장미

by 현현

레베카 솔닛을 처음 알게 되었던 건, "멀고도 가까운" 을 읽었을 때였다. 학술적인 느낌과 솔직한 에세이라는 진심이 교차하는 즐거운 독서였다. 이후로 가끔씩 레베카 솔닛의 번역된 책들을 신간목록에서 볼 수 있었다.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가 북트럭 위에 놓여진 "오웰의 장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오웰이 그 오웰인가 싶었는데, 역시 바로 그 조지 오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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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지 오웰과 장미가 왜?


역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오웰의 장미라는 제목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고, 나는 이미 포화된 양손에 초록색이 두드러진 "오웰의 장미" 한권을 더 얹었다. 오웰은 어쩌다가 장미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을까.


솔닛은 평소에도 오웰의 열렬한 독자였다. 특히, 솔닛은 오웰 독본이라는 책을 통해, 오웰이 사람이 후세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일은 나무심기라고 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웰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다섯그루의 과일나무를 심은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동료에게 해주게 된다. 이야기가 오고가면서 두 사람은 갑자기 오웰이 심은 나무가 아직도 온전할지를 궁금해하면서 그 사실을 열정적으로 확인하고 싶어하게 된다.


구글맵과 인공위성 지도를 통해서 오웰이 나무를 심었던 장소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사진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솔닛과 동료는 그 주소지의 주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신들의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그 집에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당연히 두 사람은 답장을 받기도 전에 런던으로 떠난다.


그리고, 오웰이 나무를 심었던 그 장소에 도착한다. 솔닛의 일행에게 답장을 보내기 위해 자료를 찾는 중이었다던 집주인은 친절하게 두 사람을 맞이한다. 집주인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오웰이 거주했었고, 또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웰이 심었던 나무는 남아있지 않았다.


실망도 잠시, 집주인은 오웰이 심었던 장미들은 그대로 있을 거라고 알려준다. 솔닛의 허탈함은 여기서 극적인 흥분으로 바뀐다. 일행은 다시 정원으로 발길을 돌려, 오웰이 심었던 장미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으로 치면 여든은 넘었을 장미들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 솔닛의 글은 일종의 오웰 평전처럼 진행된다. 살짝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는 오웰의 행적과 글과 그의 사상은 마치 겹겹이 포개진 장미 꽃잎같다. 잎 하나가 펼쳐질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부드럽게 펼쳐진다.


오웰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장미에 대한 솔닛의 사유와 병치되어 서술된다. 장미자체에 대한 솔닛의 생태학적 상상력도 놀랍다. 대규모로 재배되는 장미의 유통현실은 물론, 문학과 예술에서 장미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대한 솔닛의 심미안은 섬세하고 차분하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읽으면서 오웰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충분히 재미있었다. 특히, 언어와 인간의 사고에 대한 오웰의 이야기는 "1984" 에서 보여진것 이상으로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장미에 대한 솔닛의 생태학적인 사유는, 이 책, “오웰의 장미”가 그 자체로 훌륭한 생태문학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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