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리드하라

과학과 명리의 관계

by 사주영웅

명리와 과학의 관계


추명이라는 행위는 그것의 맞고 틀림을 떠나 인간과 자연의 통합된 인식을 바탕으로 삶의 숭고함과 그 범접할 수 없는 경외감을 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을 예측하려고 했던 노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 천 년간 인류가 행해온 삶의 근본적인 양식이다. 자연의 순환이라는 발상에서 인간에게 닥치는 운명과 미래 역시도 예측가능하며 그 길흉을 먼저 알아 자기 삶의 고난과 역경을 대비하려는 시도로 발전하였다.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들은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할 것이다. 명리는 그것을 알려고 하는 사람에겐, 귀한 팔자든, 천한 팔자든, 귀격이든, 천격이든 모두 인간의 삶에 대한 경외감과 숙연한 태도를 갖게 한다. 명리가 과학적인가 라고 묻는 질문은 매우 기만적이다.


과학적인 것이 모든 합리성의 근거인 것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과학의 오만은 사실 우리들 삶의 정신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별로 이치에 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과학의 지위는 마치 봉건주의 시대의 절대주의 군주와 같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


현대는 과학만능주의로 병들어 있다. 엄밀히 말해서 합리적인 모든 것이 과학적인 것은 아니며 이성적인 모든 판단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과학적”이다 라는 서술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언가가 과학적이라면 그것은 진리의 체계에 더욱 근접해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과학의 맹신과 과학의 비과학성, 그리고 과학의 범주를 초월하는 초과학 등에 대해서는 루퍼트 셀드레이크, 프리초프 카프라를 비롯 많은 과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다.


인류가 쌓아올린 과학이라는 학문은 일종의 약속된 임의적 체계에 불과하다. 현대의 과학은 아스팔트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자라는 잡초 한줄기도 만들 수 없으며, 하루살이 만큼의 비행능력을 가진 로봇을 만들지도 못했다. 과학은 사실상 관찰할 수 있는 능력만 지나치게 발달했을 뿐, 실제로는 손에 닿을 수 없는 거리의 대상을 마치 자신이 정복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못난 습관을 가졌다.


명리가 과학적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명리는 과학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근간으로 삼고 있는 자연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리는 과학으로 검증받아야 하는 과학의 하위체계가 아니라, 과학과 동등한 세계에 대한 인식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명리에 과학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똑같이 과학의 체계를 명리적인 관점에서 비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학은 명백히 자신의 한계가 있다. 그리고 명리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명리가 과학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은 명리의 한계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과 질적으로 다른 세계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이다. 천문학, 물리학, 의학등의 분야에서 과학이 성취한 업적은 실로 경험적인 차원에서 경이롭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분히 인간의 상상력이 부여되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명리는 그것을 경험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인간의 신체와 자연의 계절 사이의 교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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