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과 영어공부
신경써서 읽지 않았다면, 당신은 이 장의 제목을 ‘성경과 영어공부’라고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성경은 영어공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성격과 영어공부’는 다소 생뚱맞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개인의 성격은 자신의 영어실력과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당신의 영어실력은 이미 당신의 성격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신의 성격이 적극적이고 외향적이라면 성격이 내향적이거나 소극적일때보다 영어를 공부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말하는 태도, 말하는 습관, 말하는 수준과 같은 객관적 특성들은 이미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말을 빨리 하는지, 느리게 하는지, 더듬는지, 유창한지, 적극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하는지, 자기표현에 인색한지등은 그 사람의 성격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아웃라인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소개팅 자리, 스타벅스에서 톨사이즈 아메리카노를 한잔 다 마시는 동안만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이 사람과 다시 만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충분히 결정하고도 남는다. 그만큼의 시간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함께 나눈 대화를 통해서이다. 그만큼 말과 성격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영어를 공부하는 것과 성격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많은 학생들은 사춘기에나 했을 법한 자기 성격에 대한 고민을 영어와 관련짓지 않는다. 성격의 문제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인생의 문제이고, 영어의 문제는 순전히 학습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 좀처럼 늘지 않는 회화실력의 부분적인 원인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어 회화는 말하는 훈련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그렇지, 우리가 평상시에 대화할 때 한국말을 사용하는 그 말하기의 훈련이다. 더 많이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말하는 것을 훈련해야 하고, 더 많이 말하려면 그 만큼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가의 여부는 상당부분 그 사람의 성격에 의해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라면 대화의 참여율은 좀처럼 높지 않을 것이고,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할 것이다.
만약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슷하게 내성적인 사람은 덜 이야기 할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더 이야기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능숙하지 않은 외국어인 만큼 더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은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다. 완벽한 영어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만연하는 한국의 분위기에서 문법적인 오류, 한국식 발음, 맞지 않는 표현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그 사회적인 수치심을 극복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넉살좋은 적극적인 성격으로 극복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실 그런 사소한 실수들은 전체 대화를 이루어나가는데 큰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작은 실수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일으키는 후폭풍이 더 큰 문제다. 특히 내성적이고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더욱 그렇다. 잘못 말한 단어, 발음이 어색한 문장, 맞지 않는 표현을 말했다는 일종의 자책감 같은 좌절감은 이후의 대화를 연결하는데 점점 더 큰 장애가 된다. “아,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건데..” “아 이 단어가 아니라, 저 단어인데...” “아이고 내 발음이 왜 이러냐...” 이런 부류의 자괴감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흔한 만큼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자괴감은 이후의 영어공부에 점점 더 무거워지는 부담이 되고, 급기야 영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칸막이 쳐져 있는 도서관에서 혼자 하는 공부로서의 영어에 몰입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런 실수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토익 참고서나 옥스퍼드 영어사전 혹은 원어민과의 기계적인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영어실력과는 거의 무관한 자신의 성격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러한 성격은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상당부분 결정된다. 자기안에 뭔가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은 컨텐츠가 있고, 그 컨텐츠가 상대방의 관심을 충분히 이끌 수 있을만한 것이라면, 상대는 굳이 당신의 부족한 영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사람들은 영어의 실력을 평가하는 다소 왜곡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은 영어실력을 내용보다는 형식에 근거해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한 방송사에서 실시한 실험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를 소리로만 들었을 때 매우 저조한 퀄리티의 언어능력이라고 평가했고, 반대로 내용은 별로 없지만 원어민과 같은 발음으로 구성된 내용에 대해서는 내용의 이해여부와 상관없이 높은 실력의 영어사용자라고 평가했다. 반면, 영어권 모국어 사용자들은 발음이 전혀 원어민스럽지 않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영어가 매우 수준 있는 영어라고 평가하며 원어민 발음의 내용 없는 영어에(um...you know, I think... well..I mean...등등의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의 허사들) 대해서는 별로 높은 평가를 주지 않았다. (이 사례는 유튜브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 사람들은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영어를 평가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한 획일적인 방식의 영어교육 및 평가 체계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을 더욱 더 수동적으로 만들고 폐쇄적으로 만든다. 언어를 배우는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에는 마구 틀리고, 이상한 표현도 만들어보고, 새로운 표현도 마음껏 사용하는 것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할수 있을때, 비로소 한 언어에 대해 자신의 실력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대다수의 영어교육방식하에서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의 성격이 어지간히 굳건하고 신념이 있지 않는 한, 결국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틀에 갇힌 채, 앵무새와 같은 영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이 좁은 새장에서 탈출하려면 당신은 먼저 자신의 성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어를 공부하는 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성격을 고칠 수 있다면, 분명 인생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가능하겠지만 매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영어공부와 관련해서 자신의 성격과 관련해서 취해야 하는 조치는 매우 간단하다. 작은 습관을 만들면 된다.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말 말을 해보려고 하는 태도, 한마디만 해도 되는 상황에서 굳이 두 마디를 해보려는 태도, 한 줄만 써도 되는데, 굳이 두 세줄 더 써보려고 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녀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될 때, 굳이 말문을 여는 사람과, 말해야 할 때인데도,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것은 영어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이다. 그걸 먼저 고쳐놓지 않고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깨진 항아리에 계속 물을 들이 붓는것과 같다. 먼저 깨진 곳을 메우고 물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먼저 자신의 성격을 좀 유리하게 잠정적으로나마 바꿔봐야 하지 않을까? 냉소적인 사람들이야 굳이 영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성격까지 개조해야 하는지 의심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바꾸지 않으면 된다. 나도 굳이 그런 냉소적인 사람들에게 나의 생각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격을, 태도를 조금 바꾸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분명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독재자는 자신의 국민들이 똑똑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영리를 추구하는 의사들도 사람들이 쉽게 건강해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은 그렇다. 그와 같이 한국의 영어교육은 당신의 영어실력이 쉽게 향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럼,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아무도 당신에게 당신의 성격이 영어공부의 열쇠라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