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날. 집에서 쭉 쉬었고, 날씨가 너무 아까워서 오후 4시쯤 동네에 나가 미용실을 가고,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책을 한 권 사 왔다. 오늘 한 일을 조금 더 풀어서 써본다.
1. '고양이 본능사전'. 무언가 공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탐구하듯, 덕질하듯), 학문적인 것은 너무 빨리 포기해버릴 것 같았는데, 교보문고를 가니 고양이 책이 있어서 사 왔다. 냥신TV의 나응식 수의사가 추천했다는 책. 유튜브를 볼 것이 아니라, 블로그를 볼 것이 아니라, 그런 파편화된 정보를 모으기보다는 정리된 책을 읽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고양이 공부를 좀 해봐야지. 거의 첫 부분만 읽었다. 시작부터 갑자기 던져진 'Mojo'라는 표현, 그것이 고양이에게 어울리다는 것. 그것의 뜻은 대충 자기의 영역에서 안정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있는 혹은 걷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집고양이와 야생고양이는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야생 고양이의 행태를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야생 고양이의 행태를 아주 조금 이해했다. 조금씩 시간을 내어 읽어야겠다.
2.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일본 드라마, 어디에서 알게 되었는지는 까먹었지만 나의 to-do list에 적혀있었고, 이제야 보게 되었다. 첫 편. 인물을 인터뷰하듯 시작하는 드라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공분야에 맞는 취직에 계속 실패하고 계약직 업무보조를 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 대충 어떤 드라마였는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계약직도 종료되고, 어쩌다가 어느 개발자의 가사도우미가 되고, 그러다 계약결혼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 드라마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어도, 그때그때의 표현은 현실적인 것들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아, 이런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고 있었구나, 떠올렸고 이런 걸 봐야지 (일상적인) 인간세상에 어울릴 수 있지 바보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드라마에서 얼마나 비중 있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주인공이 개발자로 일하는 회사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개발 도중 갑자기 무언가 바뀌어 며칠 안에 엄청난 작업을 해서 끝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모두가 행복해하는 상황. 나는 일하며 그런 기분을 느껴본 것이 언제 적인가..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작은 매듭이라도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나도 좀 챙겨야겠다 생각하고. 너무 아무것도 아닌 채 지내서 더 열의도 없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었던 것 같다.
3. '브런치 피드'. 인스타도 페북도 브런치도, 사실 잘 들어가 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의 글을 한 번쯤 읽고 마음에 들어서 구독을 하고 있는 브런치는 꽤나 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글을 읽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제 자주 읽어보려고 한다. 요즘엔 모바일로 글도 잘 읽지 않아서, 글을 봐도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머릿속에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좀 읽다 보니 다시 또 읽기가 편해졌다. 오늘은 고양이와 놀아주며, 미용실에서 펌이 되기를 기다리며 꽤나 읽었다. 역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들, 이런저런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 문학적인 글들을 읽으니 머리가 환기되었다. 다시 좀 깨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4.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 날씨가 너무 좋은 한낮에 나가볼까 말까 괜히 아쉬워하거나 우물쭈물하기보다는, 집에서 이 한낮을 만끽해보기로 했다. 그리고서는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했다. inbox에 대충 넣어두었던 음악들을 기존의 플레이리스트들에 차곡차곡 옮기고, 또 음악을 듣다가 다른 음악이 생각나서 새로 찾아 넣었다. 정리되지 않은 창고처럼 이런저런 음악들이 가득 쌓여있던 '90년대 가요'는 댄스와 댄스가 아닌 것, 그리고 그중에서 더 좋아하는 것들로 구분해서 넣었다. 좋아하는 것이라 해도 다 좋아 보여서 너무 많은데, 생각나는 것을 꼽자면.... 아래와 같다.
일과 이분의 일-투투;좋아좋아-일기예보;그대와 함께-더블루;걸어서 하늘까지-장현철;희망사항-변진섭;여름안에서-듀스;출국-하림;선생님 사랑해요-한스밴드;별이 되어-임창정;달의 몰락-김현철;슬픈 언약식-김정민;헤어진 다음날-이현우;어떤가요-이정봉;천일동안-이승환;안녕하세요-삐삐밴드;이별공식-R.ef;이 밤의 끝을 잡고-솔리드;오래전 그날-윤종신
이런 노래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들과 함께 엮여있는데, 아마 각자가 그런 노래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래 제목만 봐도 멜로디가 떠오르고, 어떤 향기가 떠오르고,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 CRT 모니터로 삼국지3 게임을 한다거나, 고등학교 축제의 장면이라던가, 어렸을 적 맞이했던 (삶에 대한 아무 걱정이 없던)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같은 것 말이다.
오늘은 늦게 일어났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 앞으로 휴일을 이렇게만 보낸다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더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