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썼어요
글은 언제나 '쓸 수 있겠어'라는 마음이 생길 때만 쓸 수 있다. 쓸 꺼리가 생겨도 그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안써지더라. 요 얼마간 계속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라는 생각만 들고, '쓸 수 있겠어' 마음은 생기지를 않는다. 그래도 써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은 자꾸 들어서, 이렇게 낙서라도 먼저 해본다. 그래야 빨리 이 글을 갈아엎기 위해 쓸 것 같아서. '쓸 수 있겠어' 마음도 더 빨리 생기지 않을까.
페이스북, 브런치, 그리고 즐겨찾는 사이트, 일터, 사람들... 이렇게 접하는 모든 것은 모두 나의 '어쩔 수 없는 관심사'와 연관되어 있다. 일터와 일터에서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는 하루종일 스타트업에서의 기획/디자인과 연관되어 있고, 페이스북, 브런치, 사이트... 모든 것들이 나의 '관심사'를 추적하여 컨텐트를 뿌려준다. 이러다보니 사실 나는 더 좁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통령만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의도치 않게 '더 몰입하도록 유도되는 상황'안에서 '통제'받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11월에 몇 번 찾아다녔던 딴동네 세미나들은 오랜만에 머릿속을 환기시켜주었다.
아마도 나는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럴 것이다.
아마도 많은 스타트업 기획자/디자이너들이 그럴 것이다.
- 구글의 디자인 스프린트는 이렇더라
- 토스는 이런 일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더라
- 새로운 프로토타이핑 툴이 나왔다더라
- 에어비엔비는 이런 디자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더라
- 프러덕트 디자이너라는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모습이더라
- 데이터분석을 하고 A/B test를 해야만 성공으로 간다더라
- 이런사람, 저런사람은 여러 발표를 하고, 소셜미디어 안에서 빛나더라
- 워라밸을 유지하면서도 다들 성공하더라
- 이런 것 저런 것 다 습득하고 빨리 성장해야 된다더라
--- 모든 것에 비판적이게 된 내 시각은 이렇다 ---
- 디자인이라는 것과 전통적인 디자인프로세스는 알고 있는가
- 지금 내가 속한 회사의 일하는 방식은 잘 따르고 있는가
- 디자인은 잘 하는가. 왜 프로토타이핑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는가
- 디자인 가이드라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언제 생기게 되는 것인지 아는가
- 지금 맡은 일은 무엇인가. 프러덕트 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인가? 디자이너란 무엇인가?
- A/B test를 어느 때 사용하고, 어떻게 설계해야하는지는 정확히 파악했는가
- 얼마전 '한국의 (잘나가는)젊은 디자이너' 비슷한 뉘앙스의 wiki링크를 본 적 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나도 wiki 만들고 아는 사람 이름 적을 수 있다.
- 맡은 일을 잘 수행하고 라이프 밸런스를 가능한 찾으면 된다. 아니면 사장을 하면 된다.
-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직업'의 기둥을 살찌우고, 높이고, 가지들을 추가하는 것이다. 난쟁이 나무에 잔가지만 무성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고 열심히 일하는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저런 것들을 언급하고, 자기 것인양 포장하고, 어색한 문어체와 번역된 전문 서적에서나 쓰일 법한 단어들로 감싼 몇 문장의 글로 link의 후광 앞에 서서 트렌드세터를 자처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온 보따리를 펼쳐보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한탄을 하고 있을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말이다. 그리고 그런 보따리를 펼쳐보며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채 맹목적으로 따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며 하는 말이다. 디자인의 기본적인 토대 위에 자기 것으로 만든 가지들을 채우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디자인을 아주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부족하지만, 다들 조급함을 가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허술한 개념과 논리 위에서 공유된 ‘누군가가 이룩한 업적'을 당장 나도 해야 할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디지털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의 디자이너라면 차라리 개발의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는 것이 나을 것이다.
얼마 전 만난 분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프러덕트 디자인이라고 하면 제품(손에 잡히는 물건) 디자이너를 뜻했던 것이었고, 제품디자이너들은 실제로 양산품을 만들지는 못해도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디자인해야하는지 알고 있었는데, 지금의 프러덕트/UI/인터랙션.. 디자이너들은 아직 거기까지는 못간 것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글을 써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위의 비판*비판적인 내 시각이, 그건 옳을까? 옳지 않더라도 토론을 하려면,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려면 스스로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살짝 '쓸 수 있겠어' 마음이 들었다가, 이 글을 쓰는데 오늘의 마음은 끝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인용구를 적고 (조만간 꼭 글을 쓰자 하며)마무리. 첫 회사의 자기소개서에도 적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적었을까... 부끄럽긴 하지만.
세네카의 말 중.
우리는 곰곰이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믿으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늘 남의 말을 믿는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 오류는 우리를 조종하여 우리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다.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일수록 잘못된 인상을 주기 쉽다.
가축 떼처럼 우리는 선두에 선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않는가.
우리는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남이 간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소문만 듣고 움직이거나 세상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최고로 여기거나
이성에 따라 살지 않고 본보기에 따라 산다면, 크나큰 재앙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했을 때에는 절대로 따라하지 않았을 일을 여러 사람이 그 일을 시작하면 우리는 곧바로 흉내 낸다.마치 어떤 일이 자주 일어나기만 하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어떤 것이 틀렸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반화되면 바른 것 대신에 그른 것이 우리사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